부실채권 시장 작년 2배...아파트·상가·빌딩 쏟아져
“올해 국내 은행의 부실채권(NPL) 매각 규모는 작년의 2배, 재작년의 4배나 되는 8조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할 전망입니다. 투자자들은 필요하다면 경매·공매 시장과 부실채권 관리회사에서 정보를 얻어, 아파트·상가·빌딩·공장 등 부동산이 담보로 딸린 부실채권을 살 수 있습니다.”
이영준 하나은행 여신관리본부장은 지난 10일 인터뷰에서 “최근 부실채권 매각 물량이 급증한 반면, 부실채권을 매입하는 투자자들은 고금리 등으로 자금조달이 어려워 부실채권 매매 가격이 하락하고 있는 추세”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 본부장은 외환위기 이전인 1995년에 하나은행에 입사해 20여년 넘게 SK글로벌, 대한전선 등 기업구조조정과 부실채권 회수·매각 업무를 담당해왔다.
―부실채권이 뭔가?
“금융기관 대출 가운데 보통 원리금 상환이 3개월 이상 연체되어 정상 상환이 불가능한 대출채권을 말한다. 금융기관들은 법원 경매나 자산관리공사의 공매 웹사이트를 통해 부실채권의 담보물건인 주택·상가·사무실·오피스텔·빌딩·공장·토지를 매각해 채권을 회수한다. 이 기간이 1년 정도 걸리는데, 금융기관들은 대체로 그 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채권들을 500억~1000억원 단위로 묶어 부실채권 전문 기관투자자들에게 매각한다.”
―부실채권시장 동향은?
“코로나 사태 이전인 2015~2019년에는 국내 시중은행들이 큰 폭의 증감 없이 연간 4조~5조원어치의 부실채권을 매각했다. 2020~2022년 코로나 사태 기간에는 정부가 자영업자나 소상공인 대출의 만기 연장, 자금 지원 등 금융 지원을 한 덕에 부실채권 매각 물량이 연간 2조원대로 떨어졌다. 2023년에는 코로나 사태가 끝났지만 고금리와 경기 하락의 여파가 겹치면서 매각 물량이 4조~5조원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올해에는 상반기 4조4000억원, 연간 8조원 이상의 사상 최대 물량이 시장에 나올 전망이다. 부동산 종류별로 보면 대략 주택 24%, 상가 45%, 공장 29%, 기타 부동산 2% 정도이다. 논·밭 같은 토지는 비중이 작다.”
―부실채권 가격은?
“부실채권 물량은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지만, 고금리와 부동산 경기 침체로 투자자들은 보수적인 성향을 보이고 있다. 투자자가 시장을 주도하면서 부실채권 가격은 떨어지는 추세이다. 작년만해도 채권가격(대출원리금)의 80% 후반~90%대 초반에서 매각됐는데, 지금은 70% 후반~80% 초중반에 팔리고 있다.”
―어느 부분에서 부실채권이 증가하고 있나?
“모든 부문에서 증가하고 있다. 특히 상가·지식산업센터·오피스텔 등 상업용 부동산의 부실 증가세가 두드러진다. 경기 침체 및 고금리의 영향으로 자영업자 폐업이 늘어난 반면, 수도권 신도시의 상가 공급이 늘어났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1997년 외환위기 때와 비교하면?
“외환위기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비교해 보면 코로나 사태의 영향으로 전체 대출 중 부실채권의 비율은 더 늘어난 것 같다. 다만 한국 경제의 몸집이 예전보다 더 커졌고, 금융기관들의 재무건전성 관리 상황도 좋아 외환위기 때처럼 경제시스템이 감당 못할 수준은 아니다.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공장·빌딩·사무실 등 기업 부실채권이 많았다. 지금은 주택·상가·오피스텔·지식산업센터 같은 가계와 특히 개인사업자 부실채권이 많다. 비대면 활성화와 배달문화 확산으로 상가 공실률이 높아진 영향이 큰 것 같다.”
―은행은 부실채권을 어떻게 매각하나?
“먼저 부실채권 묶음을 만든 뒤 회계법인의 현장 실사를 거쳐 가격을 산정한다. 그리고 연합자산관리(UAMCO), 하나F&I, 우리금융F&I, 키움F&I, 대신F&I 등 전문 기관투자자를 상대로 1년에 4차례 정도 공개경쟁 입찰을 해 가장 높은 가격을 써 낸 곳에 판다. 부실채권을 사가는 기관투자자들은 자산관리회사(AMC)나 신용정보회사에 채권 관리와 경매·공매 과정을 위탁한다. 채권이 은행에서 기관투자자에게 넘어가면서 담보 부동산 처리 권한도 따라 이전된다.”
―개인투자자에게도 부실채권이 매력적인가?
“부실채권에 투자하고 싶은 개인투자자들은 연체된 대출금 회수보다는 담보물인 부동산에 관심이 많을 것이다. 따라서 부동산 소유권을 이전 받으려면 경매와 공매에 참여해 낙찰을 받아야 한다. 다만 낙찰 전에 부실채권을 사두면, 낙찰 확률을 높일 수 있다. 예를 들어 감정가격이 20억원인 아파트에 10억원의 대출채권이 설정되어 있고, 투자자가 이 부실채권을 8억원에 샀다고 하자. 그러면 남들보다 2억원 정도 높은 가격에 응찰할 여력이 생긴다. 경매 낙찰 후 대금을 지급할 때 자신의 채권 매입액 8억원이 아니라 대출채권 금액인 10억원으로 대금을 상계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 낙찰을 받으면?
“경매가 순조로울 경우 8억원에 매입한 부실채권에 대해 10억원의 배당을 받을 수 있다. 반면, 낙찰가가 예상보다 낮으면 배당 금액이 작아 손실을 볼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그래서 LTV(담보인정비율)가 낮은 대출채권을 사는 것이 안전하다.”
―개인투자가가 부실채권 관련 정보를 어떻게 얻나?
“주요 기관투자자들과 부실채권을 관리하는 자산관리회사가 홈페이지에 매각을 희망하는 부실채권과 담보 부동산의 목록을 게시하고 있다. 관심 있는 부실채권이 있으면 홈페이지에 있는 담당자 연락처로 연락해 협의가 가능하고 투자 정보도 알 수 있다. 다만 기관투자자들의 중간 수익을 고려하면 부실채권 매수가격이 예상보다 낮지 않을 수 있다.”
―개인투자자들이 부실채권을 직접 매수할 수 있나?
“법률상의 제한 때문에 개인 명의로 부실채권을 직접 매입하기는 어렵다. 다만 부실채권을 실제로 보유하는 기관투자자나 자산관리회사와 협의하여 간접 매수하는 방법이 통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 10억원짜리 대출채권을 8억원에 산 자산관리회사가 9억원만 회수하면 된다고 가정하자. 경매절차는 자산관리회사에게 10억원을 배당하도록 진행되지만 자산관리회사는 9억원만 배당 받으면 되기 때문에 개인투자자가 경매에 참여하면서 자산관리회사와 상의해 원하는 부동산을 보다 저렴하게 얻을 수 있는 방식이다. 자산관리회사는 예정한 수익률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부실채권의 투자 수익률은?
“부실채권의 가격과 종류가 천차만별이라 일률적으로 말하기 어렵다. 보통 부실채권이라고 하면 고위험 고수익 상품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기관투자자 입장에서는 여러 종류의 부동산 담보물이 혼합되어 있기 때문에 대체로 안정적인 수익률이 나온다. 개별 채권이 아니라 여러 채권을 함께 묶어 매각하면서 개별 채권의 위험을 분산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부동산 담보가 없는 신용대출 부실채권 시장에 개인들이 투자해 설립한 신생회사들이 등장하고 있다. 담보가 없기 때문에 고위험 고수익 시장이다.”
―부실채권 투자의 장점을 요약하면?
“첫째, 매입을 희망하는 부동산을 경매에서 낙찰받을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둘째, 부동산에 직접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부동산을 담보로 하는 채권을 싸게 사는 것이기 때문에 부동산의 가격 변동 리스크(불확실성)를 일부 회피할 수 있다. 셋째, 진입 장벽이 높고 다른 시장에 비해 참여자가 적기 때문에 경쟁이 덜 치열하다.”
―투자할 때 주의점은?
“적정한 부실채권 가격을 산정하기 위해서는 부동산 전문 지식이 있어야 하고 시장 동향도 잘 알아야 한다. 부동산 권리 관계가 복잡할 수 있기 때문에 위험 회피 능력도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일반적으로 부실 채권을 매입하면 경매를 통해 배당을 받는 형태로 채권이 회수되는데, 복잡한 권리 관계 때문에 경매가 지연되면서 비용이 늘어날 수 있다. 또 부동산 가격이 하락해 낙찰 가격이 낮아지면 배당 금액이 줄어들 수 있다. 법인 물건인 경우 법인이 회생 절차를 신청하면 경매 절차가 중단돼 2년 정도 자금이 묶이기도 한다.
관심이 있다면 부실채권을 취급하는 전문적인 자산관리회사나 신용정보회사에 문의해 보는 것이 좋다. 사모펀드 참여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도 있다. 다만 확정적 고수익률로 유혹하는 사례는 주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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