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푼에서도 시작해 봤다… ‘전설’ 추신수가 깨문 입술, 은퇴 시즌은 지금부터 시작

김태우 기자 2024. 6. 12.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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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깨 부상에서 돌아온 이후 맹타를 휘두르며 은퇴 시즌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린 추신수 ⓒSSG랜더스
▲ 시즌 초반 부상 악재에 울었던 추신수는 ABS존 적응을 이어 가며 4할 출루율을 다시 조준하고 있다 ⓒSSG랜더스

[스포티비뉴스=김태우 기자] “진짜 부상이라는 녀석이 이렇게 마지막까지…”

한국 야구가 낳은 최고 야수로 뽑히는 추신수(42·SSG)는 시즌 초반 손가락 부상으로 이탈한 이후 ‘부상’이라는 단어를 꺼내며 한탄했다. 경력 내내 몸을 사리지 않는 플레이로 유명했던 추신수는 그것에서 얻는 것도 많았지만 그 반대급부로 부상도 많았던 편에 속한다. 자기 관리를 못해 생긴 부상보다는 돌발적인 부상이 많았다. 홈에서 충돌하다 다치기도 했고, 상대 투수의 공에 맞아 장기 결장한 적도 있다.

올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한 추신수는 시즌 준비부터 마음가짐이 남달랐다. 팀의 우승과 함께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었고, 이를 위해서 어떤 것도 할 수 있다고 사실상의 ‘백의종군’을 선언했다. 타순도 2번으로 옮기자는 이숭용 감독의 제안에 흔쾌히 따랐다. 선발 라인업에서 빠질 수도 있다는 것도 동의했다. 그런데 시작부터 부상이 발목을 잡았다. 추신수는 “마지막까지 나를 괴롭힌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어쩌면 목소리에는 울분이 차 있었다.

대만 전지훈련 중 장염을 심하게 앓아 시범경기 합류가 늦었다. 올해부터 도입된 자동 볼-스트라이크 판정 시스템(ABS) 적응의 시간이 부족했다. 간신히 컨디션을 끌어올렸는데 개막전부터 불의의 부상을 당했다. 2루 주자로 견제 때 돌아가는 과정에서 손가락에 견제구를 맞아 딱 한 경기를 뛰고 3월 26일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됐다. 다시 돌아왔지만 이번에는 어깨가 아파 또 한 달을 쉬어야 했다. 갈 길이 바쁜데, 부상이 마지막까지 추신수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당연히 타격감이 들쭉날쭉할 수밖에 없었다. 출루율은 명성대로 유지가 됐는데 ABS존 적응에 어깨까지 아프니 자신의 스윙이 나오지 않았다. 장타가 실종됐다. 5월까지 20경기에서 타율 0.228, 출루율 0.382, OPS(출루율+장타율) 0.680에 머물렀다. 그러나 추신수는 긴 시즌이 주는 이점을 잊지 않았다. 차분하게 준비하면 만회할 수 있다고 봤다. 추신수는 “9푼에서도 시작해 본 시즌이 있다”고 떠올리며 만회를 다짐했다.

2015년이었다. 당시 추신수는 시즌 초반 극심한 슬럼프를 겪으며 저조한 출발을 보였다. 4월 일정이 마무리될 때까지 타율은 0.096로 1할이 채 안 됐다. 추신수가 1할대 타율에서 벗어난 것은 5월 12일(한국시간)의 일이었다. 이후 계속 2할대 초·중반의 타율에 머물던 추신수는 8월 이후 페이스를 바짝 끌어올리면서 힘을 냈다. 그리고 9월에 대활약하며 결국은 타율 0.276, 출루율 0.375의 성적으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아프지만 않으면 자신의 준비만큼 성적이 따라올 것이라고 믿는다. 어깨 부상 복귀 후 그런 조짐이 보인다. 추신수는 복귀 후 4경기에서 타율 0.389, 출루율 0.421, 장타율 0.556, OPS 0.977로 살아나는 감을 알리고 있다. 복귀전이었던 6월 7일 롯데전부터 2안타를 기록했고 11일 인천 KIA전에서는 4안타를 몰아치면서 타율과 출루율을 바짝 끌어올렸다. 올 시즌 타율은 0.267로 아직 성에는 안 차지만, 출루율은 0.389로 4할을 목전에 두고 있다. 복귀 후 3경기에서나 장타를 터뜨렸다는 점도 고무적이다.

▲ 2015년 최악의 시즌 초반 속에서도 끝내 자기 성적을 되찾았던 추신수는 아직 만회할 시간이 충분히 남아있다 ⓒSSG랜더스

ABS존 적응이 여전히 쉽지는 않다. 추신수는 지금껏 높은 쪽 코스에는 방망이가 잘 나가지 않았던 스타일의 선수다. 삼진을 먹는 한이 있어도 높은 쪽은 골라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올해 ABS존은 높은 쪽이 후하다. 30년이 넘는 야구 경력에서 쌓이고 쌓인 자신의 스타일을 한 번에 바꾼다는 건 제아무리 전설적인 선수라고 해도 쉽지 않은 일이다. 추신수가 ABS존을 확인하고 크게 당황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추신수도 이를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다소 걸렸지만, 결국 높은 쪽 공도 건드릴 수 있는 훈련을 계속해서 진행했다. 그 사이 어깨 부상으로 흐름이 한 템포 끊긴 것은 아쉽지만 이제는 점차 존에 적응하고 있다. 스타일을 한 번에 바꾸지는 못하겠지만 점차 나아질 것으로 기대할 수 있는 이유다. 마흔을 훌쩍 넘은 나이에도 4할 출루율을 조준하고 있는 추신수는 여전히 팀 공격에서 존재가치가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전설의 마지막 시즌은 어쩌면 지금부터 시작됐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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