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지금 '문화 현상'"…미국이 한인 슈퍼마켓에 주목한 이유 [스프]

김수현 문화전문기자 2024. 6. 12.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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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스프링] NYT "아시아계 식료품점, 더 이상 틈새 사업 아니다"


"더 이상 틈새 사업이 아니라 문화 현상이다."

H마트를 비롯한 아시아계 식료품점에 대해 뉴욕타임스가 이렇게 썼습니다. 뉴욕타임스는 왜 이런 이야기를 했을까요.
 

무슨 상황인데?

뉴욕타임스는 현지시각 11일 아시아계 식료품점의 인기에 대한 특집기사 'Don't Call it an Ethnic Grocery Store'를 실었습니다. 이 기사는 H마트를 비롯한 아시아계 식료품점이 대형 유통체인으로 성장하면서, 과거와 같은 틈새 사업(niche business)이 아니라, 미국 대중문화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문화 현상'이 되었다고 분석했습니다.
[ https://www.nytimes.com/2024/06/11/dining/asian-grocery-stores-america.html ]

기사에서 언급한 아시아계 식료품점은 H마트와 파텔 브라더스, 99랜치마켓 등이 있습니다. 미국 내 아시아계 이민자들이 급증했던 1970년대~80년대 작은 슈퍼마켓으로 시작해, 고향 음식과 식재료를 판매하면서 이민자 지역사회의 구심점 역할을 해왔는데, 이제는 모바일 주문 앱과 전국 단위 매장을 갖춘 세련된 디자인의 유통체인으로 탈바꿈하고 있습니다.

한아름마트로도 알려졌던 H마트는 1982년 뉴욕시 퀸스 우드사이드의 작은 한인 슈퍼마켓으로 문을 열었습니다. 현재는 기업 가치가 20억 달러(2조 7천억 원)에 달하며 미국 내 96개 점포를 운영 중입니다. 지난달에는 샌프란시스코의 한 쇼핑센터를 3,700만 달러(510억 원)에 통째로 사들이기도 했습니다.

파텔 브라더스는 시카고에서 시작한 인도 식료품점입니다. 현재 미국 내 52개의 점포를 운영 중이고 앞으로 2년 안에 6개 점포가 추가될 예정입니다. 캘리포니아에 본거지를 둔 중국 식료품점 99랜치마켓은 현재 미국 내 62개 점포를 운영 중입니다. 기사에는 온라인 아시안 식품 스토어인 'Wee!'도 언급됐습니다.
 
'파텔 브라더스' 식료품점. 사진 : 뉴욕타임스 기사에서 발췌
 

좀 더 설명하면

아시아계 식료품 체인의 급성장은 미국 내 아시아 인구 비중이 많이 늘어났을 뿐 아니라, 수많은 비아시아계 미국인들도 신라면과 같은 새로운 맛을 갈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뉴욕타임스는 썼습니다. H마트 고객 중 30%가 비아시아계 미국인이고, 꼭 아시아계 식료품점에 가지 않더라도 신라면이나 김치, 미소된장, 두부 등 아시아 식재료를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실 아시아 식료품 체인들이 미국 내 식품 유통업계 전체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아직 1% 미만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실제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은 훨씬 막강합니다. 최근 한식을 비롯한 아시아 음식이 미국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고, 메이저 유통업체의 제품 구비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으니까요. 기사에 등장한 시장조사업체 서카나에 따르면 미국 내 슈퍼마켓에서 '아시아·전통음식' 코너 매출은 지난해 4월부터 올해 4월까지 1년간 약 4배 수준으로 급증한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한 걸음 더

아시아 식료품점은 단순한 가게에 그치지 않고, 사람들이 모이고 교류하는 커뮤니티 센터의 역할을 해왔고, 아시아계 이민자들에게는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뉴욕타임스 기사에서도 언급한 베스트셀러 'H마트에서 울다'에 H마트라는 상호가 등장했을 정도이니까요.
 
 
'H마트에서 울다'는 2021년 뉴욕타임스와 타임, 아마존이 올해의 책으로 선정한 화제의 책인데요, 인디 팝밴드 보컬이자 한국계 미국인인 미셸 자우너의 뭉클한 성장기가 담겼습니다. 이 책은 '엄마가 돌아가신 뒤로 나는 H마트에만 가면 운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자우너는 'H마트', 곧 '한아름마트'는 '두 팔로 감싸안을 만큼'이라는 의미처럼, 갖가지 한국 먹거리가 가득하고, 한국계 미국인에게 '고향의 맛'을 찾게 해주는 보물창고와도 같다고 썼습니다.

'겉보기엔 지독한 잔소리꾼'이었던 자우너의 엄마는 말 대신 음식으로 딸에게 사랑을 표현했습니다. 생일날 미역국을 끓여주고, 철판 위에 두툼한 삼겹살을 구워 삼겹살 쌈을 만들어줬고, 자우너가 간장게장이나 산낙지를 먹을 때면 "넌 진짜 한국 사람이야" 감탄하며 기뻐했습니다.

이렇게 어렸을 때부터 딸에게 한국 문화를 알려주려고 애썼던 엄마는 자우너가 25살 때 암으로 세상을 떠납니다. 아시아계 혼혈 여성 예술가라는 겹겹의 소수자로 좌절과 혼란을 겪던 자우너는 엄마에 대한 기억도,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도 희미해져 가던 어느 날, H마트에서 식재료를 사서 직접 요리해 먹으면서, 엄마와 함께 했던 기억을 떠올리고, 회복하고, 자신만의 고유한 정체성을 찾아 나갑니다.
 
"(H마트의) 이 식당가는 아름답고 신성한 곳이다. 세계 각지에서 지내다가 저마다의 사연을 품고 어쩌다가 외국으로 와서 살게 된 사람들이 가득한 곳이다. 다들 어디에서 왔을까? 얼마나 멀리서 왔을까? 무엇 때문에 여기에 온 걸까?... 모두가 고향의 한 조각을, 우리 자신의 한 조각을 찾고 있다. 우리가 주문하는 음식과 우리가 구입하는 재료에서 그걸 맛보고 싶어 한다."

미셸 자우너 'H마트에서 울다' 20-21P 중에서, 정혜윤 옮김, 문학동네
 

당신이 알아야 할 것

자우너가 이렇게 썼듯이, H마트를 비롯한 아시아 식료품점은 아시아계 미국인들에게는 고향을 떠올리게 하는 특별한 장소입니다. 또 비아시아계 미국인들에게는 새로운 맛과 문화를 접하고 즐길 수 있는 트렌디한 장소이기도 합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김수현 문화전문기자 shkim@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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