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덕운동장 재개발, 훗날 아이들 소망까지 지켜낼까[초점]

김민지 기자 2024. 6. 12.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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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발로 체육공원 철거, 수백가구 아파트 들어설 판
시민·시의회·시민단체 반발…시, 사업 추진 강행 의지
[부산=뉴시스] 6일 오후 부산 서구 구덕운동장 광장 앞에서 '구덕운동장 아파트 건립 반대 주민협의회' 집회가 진행되고 있다.사진은 집회에 참석한 아이들의 모습. (사진=구덕운동장아파트건립반대주민협의회 제공) 2024.06.06.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부산=뉴시스]김민지 기자 = "그러면 이제 친구들이랑 공놀이는 못하는 거예요?"

부산 서구 서대신동에 살고 있는 열세 살 초등학교 6학년인 김모군이 던진 질문이다. 최근 김군에게는 걱정이 하나 생겼다. 집 근처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공을 차는 즐거움이 사라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그가 자주 가서 공을 차곤 했던 운동장에 아파트가 들어선다는 소문이 들리고 있다.

부산 서구에 자리한 구덕운동장은 1928년 개장한 부산 최초의 공설운동장이다. 1985년 사직운동장이 건립되기 전까지 부산 지역 유일한 시민종합운동장이었다.

이곳은 또 부산항일학생운동의 발원지이자 윤봉길 의사 추도식이 거행된 역사적 장소이기도 하다. 한국 전쟁 당시에는 이곳에 미군 수송부대가 주둔하기도 했다.

이렇듯 구덕운동장은 오랫동안 부산의 가치를 담아온 장소다. 이러한 보존 가치를 인정받아 구덕운동장은 2020년 부산미래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영광은 오래가지 못했다. 미래 유산 지정 이후 불과 5년도 채 안 돼 구덕운동장은 일대 철거와 아파트 재개발이 '공공 주도'로 추진되고 있다.

[부산=뉴시스] 6일 오후 부산 서구 구덕운동장 광장 앞에서 '구덕운동장 아파트 건립 반대 주민협의회' 집회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구덕운동장아파트건립반대주민협의회 제공) 2024.06.06.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구덕운동장의 재개발 논의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앞서 2015년 민간의 상업 개발 제안이 있기도 했지만 여론 수렴 결과 시민을 위한 공원을 조성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이를 토대로 시는 사업비 110억원을 들여 2019년 노후화된 구덕운동장과 실내체육관을 철거한 뒤 테니스장과 풋살장, 게이트볼장, 다목적 구장 등이 갖춰진 '구덕생활체육공원'을 조성했다. 이로써 구덕운동장은 다시금 시민의 품으로 돌아오게 됐다.

조성된 공원 주변으로는 산책로와 파고라, 벤치 등 여러 시설이 갖춰져 있어 많은 주민이 이곳을 찾았다. 녹색의 자연을 느끼면서도 같은 동네에 사는 이웃의 정을 느낄 수 있는 귀한 공간이었다.

그러나 시는 2년이 지난 2021년 '구덕운동장 스포츠복합타운' 조성 계획을 발표했다. 이때만 해도 이 공간의 주목적은 체육과 문화, 휴양이었다.

이 계획이 사업성과 예산 부족 등으로 잠정 연기되자 시는 구덕운동장 일원을 도시재생혁신지구로 지정받아 재원을 마련하고, 운동장 일대에 복합 재개발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문제는 시가 발표한 재개발 사업 내용이다. 시는 총사업비 7900억여원을 들여 축구전용 경기장을 조성하고, 사업비 마련을 위해 부동산 리츠 사업과 연계한 수백 가구의 아파트와 상업 시설을 짓고 체육공원을 철거하겠다고 했다.

[부산=뉴시스] 23일 구덕운동장 일원 도시재생혁신지구 계획 주민공청회에서 발표된 구덕운동장 재개발안.해당 재개발안에는 전용축구장, 총 4개동 850세대의 아파트 건립 등의 내용이 포함돼 있다. (사진=구덕운동장아파트건립반대주민협의회 제공) 2024.05.23.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주민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시유지인 구덕생활체육공원에 수백 가구의 아파트가 들어서는 것은 명백한 '공공의 사유화'라고 지적하며 의견수렴이 결여된 시의 독단적인 행정방식을 비판했다. 주민들은 또 생활체육 공간이 축소되는 것에 우려를 표했다.

하지만 시는 계획을 강행했다. 국토부의 '혁신지구 국가시범지구' 공모 신청 마지막 날이었던 지난 7일 시는 재개발 사업안을 원안대로 제출했다.

이러한 행정을 두고 시의회와 시민단체의 비판이 일었다. 지난 10일 시의회는 거버넌스 구축과 의견 수렴이 부족했다며 국토부 공모 신청 과정에서의 절차상 법 위반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시는 절차상 법 위반은 없었다는 입장이다. 시는 12일 설명자료를 통해 '공모신청서 제출은 법령을 위반한 것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사업 추진 계획에 변화가 없음을 내비쳤다. '시의회와 시민의 의견을 최대한 수렴해 사업 추진에 최선을 다할 예정'이라고 덧붙이긴 했다.

국토부의 공모 신청 결과는 오는 8~9월 나올 예정이다. 구덕운동장 일대가 혁신지구로 지정된다면 운동장 일대에 체육공원은 사라지며 아파트가 들어서게 된다. 시는 시민 반발 의견을 고려해 아파트 규모 조정을 '검토'하겠다고는 하지만 아파트 건립 자체를 물리진 않을 모양새다.

과연 오래도록 시민의 희로애락을 담아온 구덕운동장은 훗날까지 시민의 공간으로 남을 수 있을까. 그저 집 근처 공원에서 계속 공을 찰 수 있길 원하는 아이의 소망은 훗날에도 실현될 수 있을까.

☞공감언론 뉴시스 mingya@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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