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방통위 만드는 野 저의와 폐해[포럼]

2024. 6. 12.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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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언론학자 샤론 스트로버 교수는 미디어 정책을 '정신분열적(schizophrenic)'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미디어 정책이 정치 논리에 휘둘려 방향성을 잃고 오락가락하는 경우가 많다는 주장이다.

정치·사회적 영향력을 지닌 미디어 정책에 정치적 이해득실이 개입되고 갈등이 발생하는 것은 당연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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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근 선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미국의 언론학자 샤론 스트로버 교수는 미디어 정책을 ‘정신분열적(schizophrenic)’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미디어 정책이 정치 논리에 휘둘려 방향성을 잃고 오락가락하는 경우가 많다는 주장이다. 정치·사회적 영향력을 지닌 미디어 정책에 정치적 이해득실이 개입되고 갈등이 발생하는 것은 당연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정치적 갈등으로 정책 자체가 원천적 불가능 상태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더구나, 집권 여당이나 특정 정파가 미디어 정책을 전유하지 못하도록 만든 기구가 그렇다면 더 큰 문제다.

방송·통신 정책을 주관하는 현 방송통신위원회가 그렇다. 방통위는 2008년 방송위원회와 독임제 부처인 정보통신부를 통합해 만든 합의제 위원회 기구다. 독임제냐 위원회냐를 놓고 논란이 많았지만, 결국 여야 추천 위원으로 구성되는 방통위로 출범했다. 의사결정의 비효율성 같은 단점에도 불구하고 위원회 기구로 결정된 이유는 ‘방송의 정치적 독립’이었다. 독임제 정부 부처가 방송을 정치적 통제 수단으로 악용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었다.

그동안 정치적 안배로 구성된 방통위가 전혀 성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방송을 둘러싼 정쟁 때문에 훨씬 규모가 큰 통신 정책이 완전히 실종됐다는 비판을 적잖게 받아 왔다. 여기에 여야 모두 전문성보다 전투력을 우선해 위원을 추천하는 현상이 노골화하면서, 방통위는 합의를 통한 정책 결정이라는 거룩한 취지와 달리 극심한 정쟁의 장으로 변질돼 버렸다. 특히, 야당 단독으로 언제든지 국무위원을 해임 건의할 수 있는 극단적 여소야대 상황에서 방통위는 기능 자체가 사실상 마비된 상태다. 지난해에 이미 한 차례 야당의 탄핵 공세로 위원장이 중도 사퇴한 바 있다. 지금도 192석이라는 압도적 의석수로 방통위의 정책 관련 행위들을 원천 마비시켜 식물 기구로 만들고 있다.

최근에 거대 야당이 공영방송 이사회 구성 방식을 바꾸는 방송법 개정안을 밀어붙이면서, 방통위의 차기 공영방송 이사 선임 절차를 시작조차 못 하게 막고 있다. 요즘 많이 회자 되는 ‘의회 독재’라는 말을 실감 나게 한다. 이처럼 방송의 정치적 독립을 내걸고 설립된 방통위 의사결정 자체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것은 도리어 방송을 더욱 정치에 예속시키는 반민주적 행태라 할 수 있다.

원래 취지가 무색하게 방통위는 심각한 정치적 통제 구조에 포획돼 있다 해도 과하지 않다. 합의제 기구가 내재한 본질적 단점들 때문일 수도 있지만, 토론과 합의라는 성숙한 민주적 정치 문화가 뒷받침되지 못하는 게 더 큰 원인이라 할 수 있다. 방통위의 모델이 됐던 미국의 연방통신위원회(FCC)가 여야 갈등에도 불구하고, 한 세기 이상 유지돼 오는 배경에는 양보와 합의라는 민주적 정치 문화가 있기 때문이다.

이제 위원회 형태의 방송 규제 기구가 한국 정치 문화에 적합한 제도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검토가 필요해 보인다. 더구나 최근 한국 정치가 점점 더 극단적 증오와 대립이라는 야만적 상황으로 변질되면서 민주주의 제도 자체가 위협받고 있다. 정치적 독립이나 공정성 같은 추상적 명분에 함몰된 무기력한 위원회 기구보다 효율성과 책임성을 담보할 수 있는 독임제 기구로 회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황근 선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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