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디어 내라 해놓고 아이디어 비난하면…[허태균의 한국인의 心淵]

허태균 고려대 심리학부 교수 2024. 6. 12.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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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인 상식과 일치하지 않는 심리학 연구결과는 너무 많다.

그래서 기존의 전통적이고 일반적인 뻔한 아이디어만 얘기하다가 브레인스토밍은 허망하게 끝나는 경우가 많다.

이때 굳이 어떤 아이디어의 황당함을 비난해서 우린 무엇을 얻을까? 그렇게 자기검열을 부추기면 전혀 황당하지 않으면서 매우 창의적인 아이디어만 딱 나오게 될까황당하고 부적절한 아이디어는 결국 채택하지 않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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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인 상식과 일치하지 않는 심리학 연구결과는 너무 많다. 그중에 하나가 브레인스토밍(brainstorming)에 관한 연구들이다. 경험해보지 않은 새로운 문제에 직면해서 이미 알고 있는 일반적인 방법으로 해결이 힘들 때, 창의적인 해결방법을 찾고자 더 많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이끌어 내는 방법이다. ‘더 좋은‘ 아이디어가 아니라 ‘더 많은’ 아이디어를 서로 제시하다 보면, 그중에 완전히 새로운 창의적인 해결방법이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각자 지식이나 생각이 다를 수 있기에 서로의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하다 보면, 그것들에 새로운 생각이 서로 자극받고 원래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생각들이 막 일어나서 결과적으로 더 창의적인 아이디어들이 생산되는 과정을 예상했다.
허태균 고려대 심리학부 교수
하지만, 사회심리학 연구결과들에 따르면, 정반대의 결과가 더 흔하다. 서로의 아이디어가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더 다양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비슷해지고 결국 덜 창의적인 생각들로 수렴하는 것이다. 이러한 역기능적 현상을 더욱 악화시켜 최악의 결과로 이끄는 요인은 바로 타인의 아이디어를 평가하고 자신의 아이디어에 대한 비난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래서 브레인스토밍의 첫 번째 원칙이 ‘타인의 아이디어를 절대 평가하지 않기’이다.

하지만 아무리 평가하지 말자고 열심히 약속하고 다짐해도, 인간은 본능적으로 타인에게 이상해 보일 거 같은 ‘진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얘기하기를 주저한다. 게다가 누군가가 타인의 생각에 비웃거나 상을 찌푸리거나 고개만 살짝 흔들어도 번개같이 눈치채고 모두 자기검열을 통해 조금이라도 이상할 거 같은 생각은 감추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기존의 전통적이고 일반적인 뻔한 아이디어만 얘기하다가 브레인스토밍은 허망하게 끝나는 경우가 많다.

얼마 전 조세재정연구원의 저출산 대책에 관한 한 보고서에 난리가 났다. 그 보고서에 포함된 ‘여성 조기입학’ ‘노인 은퇴이민’ 등의 내용이 너무 황당해서 국책연구원의 보고서에 걸맞지 않다는 비판이 거세게 일어났다. 실제로 그 내용은 쉽게 동의하기도 힘들고, 더구나 한 국가의 정책으로 실현 가능성은 힘들어 보인다.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의 초저출산 현상은 그 어떠한 노력에도 심각해지고 있다. 예산도 퍼부었고 웬만한 것은 다해봤는데도 출산율은 올라가기는커녕 점점 더 빠르게 떨어지고 있다. 기존의 전통적이고 일반적인 방법, 황당하지 않은 방법은 다해봐도 아무런 효과가 없는 상황이다.

우리 사회 전체에 좀 더 창의적이고 획기적인 아이디어가 필요한 상황이다. 아마 정부와 모든 관련 기관, 더 나아가 우리 사회 전체가 브레인스토밍을 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이때 굳이 어떤 아이디어의 황당함을 비난해서 우린 무엇을 얻을까? 그렇게 자기검열을 부추기면 전혀 황당하지 않으면서 매우 창의적인 아이디어만 딱 나오게 될까…황당하고 부적절한 아이디어는 결국 채택하지 않으면 된다. 우리에게 그 정도 합리성은 있다. 우리 사회에서 창의성이 부족한 것은 우리의 머릿속에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말할 수 없기 때문은 아닐까?

허태균 고려대 심리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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