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호 “거야 단독 처리 반복땐… 중도층은 ‘막 밀어붙여도 돼?’ 멀어질 것”[현안 인터뷰]

나윤석 기자 2024. 6. 12.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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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안 인터뷰 - ‘민주당 1999 - 2024’ 펴낸 우상호 전 비대위원장
중도층은 개혁세력 태도 중시
17대 총선 152석 열린우리당
여론 못살펴서 개혁입법 실패
내가 李 참모라면 연임 말리고
싱크탱크서 어젠다 발굴 제안
집단으로서 86은 성공 못한것
계파 질서에 기여한 과오 커
새천년민주당부터 더불어민주당까지 격동의 25년을 정리한 ‘민주당 1999-2024’를 출간한 우상호 전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10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동 더미래연구소에서 문화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곽성호 기자

“내가 이재명 대표의 참모라면 차기 대선에 도움이 안 될 대표 연임을 하지 말라고 조언하겠다.”

우상호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10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동 더미래연구소에서 진행된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강조했다. 대표를 한 차례 더 맡아 ‘여의도 이슈’에 얽매이는 대신 민생 현장을 돌면서 중도층 공략을 위한 새로운 정책의제를 발굴해야 차기 대선에서 승리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우 전 위원장은 최근 펴낸 ‘민주당 1999-2024’(메디치)에서 김대중 정부 시절 당내 개혁파 주도로 확립된 당권·대권 분리 규정을 존중해야 한다는 소신을 밝히기도 했다. 또 열린우리당 시절 이른바 4대 개혁입법에 실패했던 경험을 돌아보며 “개혁의 내용보다 개혁을 추진하는 세력의 태도를 중시하는 중도층은 ‘아무리 옳은 일이라도 막 밀어붙여도 돼?’라고 반문한다”고 지적했다. 모든 역사가 그렇듯, 25년에 걸친 민주당의 흥망성쇠를 기록한 이 책은 과거를 통해 오늘의 민주당이 나아가야 할 길과 반복해서는 안 될 실패의 기억을 동시에 보여준다. 우 전 위원장은 약 1시간 20분 동안 이뤄진 인터뷰에서 당 대표 연임부터 원 구성 협상까지 다양한 현안에 대한 의견을 가감 없이 들려줬다. 다음은 일문일답.

―민주당사를 정리해야겠다고 결심한 계기는.

“민주당의 역사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25년 동안 여덟 번 대변인직을 수행하면서 늘 ‘이너 서클’과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스스로 ‘무(無) 계파’이자 ‘전(全) 계파’라고 소개하는 이유도 다양한 계파의 대표 체제에서 대변인을 맡았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과 서거, 박근혜 대통령 탄핵 등 중요한 역사적 현장의 한복판에 있었던 경험을 전수할 적임자라고 생각했다.”

우 전 위원장은 책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과 이낙연 전 국무총리, 이재명 대표 등 대권 후보의 당권 도전을 일관되게 반대했다”며 “유력 대권 후보가 당 대표가 되면 공천 갈등을 피할 수 없고, 그 갈등이 심해져 분당에 이르는 경험도 했기 때문”이라고 적었다. 공교롭게도 이 책이 출간된 10일, 민주당 최고위원회의는 대선에 출마하려는 당 대표의 ‘1년 전 사퇴’ 규정에 예외를 두는 당헌·당규 개정안을 의결했다. 친명(친이재명)계 내부에서조차 “(이 대표 연임을 위한 포석이라고) 오해 살 일을 왜 하는가”(김영진 의원)라는 비판이 나왔다.

―이 대표 연임에 대한 생각은.

“대표 연임은 초유의 일이지만, 민주주의 원리로 보면 잘못된 일이 아니다. 대통령도 연임할 수 있도록 중임제로 개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가. 정세균 전 국회의장처럼 연임은 아니라도 당 대표를 세 번 역임한 경우도 있다. 다만 ‘정무적 판단’을 하자면, 권력 독점을 막기 위해 연임하지 않았던 과거 선배들의 지혜를 돌아봐야 한다고 조언하고 싶다.”

―이 대표의 최측근이나 참모라면 연임을 말릴 것인가.

“그렇다. 이 대표가 연임하면 당의 리더십 안정에는 도움이 될 것이다. 과거 열린우리당은 사당화를 막기 위해 당 대표 권한을 너무 약화한 나머지 6개월마다 새로운 비상대책위원회가 들어서면서 당 리더십이 무너졌다. 하지만 이 대표 연임이 이 대표의 차기 대선 경쟁력에도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다. 연임을 통해 ‘특정 진영의 대표자’ 이미지가 굳어지면 지난 대선처럼 결정적인 순간에 중도층이 도와주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내가 참모라면 연임 대신 싱크탱크를 만들어 새 어젠다를 발굴하고, 영남·충청 등의 민심을 얻기 위해 노력하라고 제안할 것 같다.”

―최근 1심 법원이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의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에 대해 유죄를 선고했다.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대선 가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4·10 총선 결과는 정치 검찰의 ‘이재명 사법 리스크’ 씌우기가 실패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이 전 부지사의 재판 받는 태도나 오락가락한 진술은 문제가 있다. 이런 점이 판결에 불리하게 작용한 듯한데 아직 객관적 실체가 다 드러난 것은 아니라고 본다. 검찰이 이재명을 괴롭혀서 정치적 이득을 보려고 하는 짓은 더 이상 하면 안 된다.”

원 구성 협상 파행으로 민주당이 범야권 단독으로 11개 상임위원장 선출을 강행하면서 22대 국회 개원과 함께 정국이 급속히 얼어붙고 있다. 우 전 위원장은 이번 책에서 20대 국회 전반기에 민주당 원내대표로 원 구성 협상에 참여한 경험을 회고한다. 그는 “저놈의 국회는 매일 밥그릇 싸움만 한다는 욕을 안 듣기 위해 유연한 태도로 협상했다”며 “그 덕분에 당시 기준으로 역대 최단 기간에 원 구성을 끝냈다”고 돌아봤다. 당시 민주당은 국회의장과 예산결산특별위원회를 차지하는 대신 법제사법위원회를 새누리당에 내줬다.

―이대로면 민주당이 18개 상임위를 독식할 가능성도 있다. 추경호·박찬대 원내대표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추 원내대표가 총선 민의로 나타난 의석을 고려해 압도적 다수당의 ‘이니셔티브(주도권)’는 보장해야 한다. 어렵더라도 의원들에게 ‘거대 야당의 의견을 무조건 반대만 할 수 없다’고 고백해야 한다. ‘차라리 다 가져가라. 너희들의 일방 독주를 부각하겠다’는 태도로 협상하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 박 원내대표는 ‘소수 여당’이지만 국정의 주체인 국민의힘을 인정하고 배려해야 한다. 내심 ‘18개를 다 차지하자’고 마음먹는 것은 타협의 정신에 어긋난다.”

우 전 위원장은 ‘민주당 1999-2024’에서 과거 열린우리당이 17대 총선에서 152석을 얻었음에도 4대 개혁입법을 성공시키지 못한 것은 “중도층 여론을 살피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돌이킨다. 그는 “(법안을) 단독 처리하면 지지자들은 통쾌하겠지만, 반복되면 ‘일방적’이라는 이미지가 만들어진다”며 “개혁의 내용보다 개혁을 추진하는 세력의 태도를 중시하는 중도층은 ‘아무리 옳은 일이라도 막 밀어붙여도 돼?’라고 반문한다”고 지적했다.

―각종 특별검사법과 방송 3법 등 강행 처리를 예고한 민주당이 귀담아들어야 할 얘기 같은데.

“그렇다. ‘우리는 선하고, 저쪽은 악하다’라는 이분법을 경계해야 한다. 선민의식이 드러나는 정치 언어는 절대 금물이다. 협상은 ‘내가 원하는 법안’과 ‘상대가 원하는 법안’을 함께 놓고 조율하는 과정이다. ‘원안에서 문구 하나 고칠 수 없다’는 태도는 좋지 않다. 우리의 중점 법안 중에서 ‘이 조항만큼은 빼달라’는 여당 요청을 열린 마음으로 수용하고, 대신 우리도 여당의 주요 법안에 대해 비슷한 요구를 하면 양측이 내세운 법안을 모두 통과시킬 수 있다. 현재 민주당 지도부는 집권을 강하게 꿈꾸고, 그 바람을 실현할 역량이 있기에 어떤 법안이든 무작정 밀어붙이지는 않을 것으로 믿는다.”

―박 원내대표와 고민정 최고위원 등이 종합부동산세 완화 얘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가 부동산 가격 폭등을 막지 못해 정권을 내준 것은 뼈아픈 기억이다. 정치개혁에 대한 대중의 지지가 아무리 높아도 민생 문제에서 실망을 안기면 심판의 대상이 된다는 교훈을 남겼다. 하지만 그렇다고 부동산 정책을 ‘땜질 처방’으로 해결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다음 대선에서 이기려면 ‘부동산 종합대책’을 가진 정당으로 거듭나야 한다. 부동산 관련 세제·규제·산업 진흥책·공급 등을 포괄적으로 논의할 당 특별기구를 만들어 한 1년 동안 연구해야 한다. 기구에서 얻은 결론을 토대로 세부 정책을 제시해야 한다. 이런 과정 없이 지역구민이 반발한다고 해서 지도부 인사가 무턱대고 ‘1가구 1주택자 종부세 폐지’를 주장하면 조세정의를 훼손한다는 진보 진영의 반발을 부를 수밖에 없다.”

―민주당이 중도층 공략으로 대권을 잡기 위해 선점해야 할 정책은.

“그건 내가 얘기할 수 없다. 당이 고민해야 할 사안이다. 지도부도 아닌데 이러쿵저러쿵 얘기하면 ‘네가 당 대표냐’라는 문자가 바로 날아온다(웃음). 다만 지지층만으로는 정권을 되찾아올 수 없으니 몇 개의 정책 중에서는 우리 당을 열렬히 사랑해주는 분들이 약간 불만스러워해도 ‘이해해 주십시오’라고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는 충고를 건넬 뿐이다.”

우 전 위원장에게는 늘 ‘86그룹(1980년대 학번·1960년대 출생)의 맏형’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김민석·이인영·송영길·윤호중·임종석 등이 범야권의 대표적인 86세대로 분류된다. 86그룹은 1987년 체제의 주역으로 민주화를 이끌었으나 기득권으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인 요즘은 선거철마다 ‘용퇴론’의 대상으로 지목되고는 한다. 우 전 위원장에게 “86그룹에 대한 정치적 평가를 내려달라”고 하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집단으로서의 86은 성공하지 못했다. 선배 정치인들의 계파에 들어가 활동하면서 계파적 질서에 기여한 점이 첫 번째 과오다. 격차 해소라는 시대정신을 구현하기 위해 더 철저히 싸우지 못한 점도 한계다. 하지만 여전히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86 정치인들이 사회적 약자와 함께할 수 있는 감수성을 지니고 있다고 평가한다. 이들이 새로운 시대정신으로 무장해 더 치열하게 활동하길 기대한다.”

“진보정책 발굴 힘쓸 것… 2026년 지방선거 출마는 그 이후에 생각”

■ ‘야인’ 우상호 다음 행보는…

“지금은 이한열 사업회 업무전력”

“요즘은 이한열 기념사업회의 재정 정상화를 위해 열심히 뛰어다니고 있다. 재정난이 어느 정도 해소되면 ‘진보 담론’을 재구성하는 작업을 하고 싶다. 2026년 지방선거 출마는 그 이후에 생각해보려 한다.”

우상호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2021년 4월 서울시장 보선에 도전하면서 22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야인’으로 돌아온 그는 지난 총선 이후 이한열 기념사업회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1987년 6월 항쟁 당시 연세대 총학생회장이었던 우상호의 ‘젊은 시절’은 고 이한열 열사의 영정 사진을 든 모습으로 세상에 남아있다. 우 전 위원장은 “37년 전 하늘로 떠난 이한열은 나 대신 유명을 달리한 후배”라며 “사업회를 재정비하는 것은 나의 책임이자 사명”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연말까지 사업회 업무에 전력을 기울인 뒤 자신이 이사를 맡고 있는 더미래연구소와 함께 진보정책 발굴에 나설 계획이다. 우 전 위원장은 “참여정부와 문재인 정부 시절 부동산 정책의 실패로 덧씌워진 ‘무능 프레임’을 극복해 정권 교체에 성공하려면 ‘혁신 성장’ 담론을 구체화하고 ‘불평등 해소’라는 과제에 집중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어 “심판론은 총선과 지방선거에서는 먹힐 수 있을지 몰라도 대선에서는 큰 효과가 없다”며 “윤석열 정부의 ‘대파 문제’를 그토록 비판했던 민주당이 민생정책 대안을 치열하게 고민해야 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정치권에서는 여전히 우 전 위원장의 차기 서울시장 출마 여부를 주목하고 있다. 우 전 위원장은 지난해 사석에서 문화일보와 만나 “서울시장이 1순위이지만, 당 일부에서 강원지사 선거에 출마해달라는 요청도 있어서 고민 중”이라고 전한 바 있다. “지금은 오히려 그때보다 (지방선거 도전 의지가) 후퇴한 상황이다. 1년여 시간을 두고 내가 왜 단체장을 맡아야 하는가를 성찰할 것이다.”

△1962년 강원 철원군 △연세대 국문과 △17·19·20·21대 국회의원(서울 서대문갑) △민주통합당 최고위원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20대 대선 이재명 후보 중앙선거대책위 총괄선거대책본부장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

나윤석 기자 nagij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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