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걸린 고모, 조카들 "통장관리 해줄게"…'검은 속내' 미리 막는 법

김남이 기자, 김도엽 기자, 인천=이병권 기자 2024. 6. 12.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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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오팔세대, 금융 사용설명서(下)
[편집자주] 1958년생을 비롯해 베이비부머 세대가 노인의 기준인 '만 65세'에 대거 합류했다. 산업화 시대를 겪으며 자산을 급격히 늘린 이들의 은퇴, 상속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은퇴 없이 활동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은행으로 대표되는 금융회사들의 실버(銀)세대 공략 전략과 실버세대의 은행(銀行) 이용 방법을 알아본다.
"늙고 병드니 조카가 재산 노리더라"...상속서비스 찾는 사람들
서울 강남구 소재 하나은행 리빙트러스트센터. 이재철 하나은행 부행장이 머니투데이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본인이 가진 모든 힘을 쏟아 평생을 바쳐서 일군 돈을 무책임하게 두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재산을 어떻게 활용하고 또 누구에게 어떻게 이전해줄 것인지를 미리 설계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유언대용신탁과 유산정리서비스는 평생 일군 재산을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플랜을 짜는 방법입니다. 건강하실 때, 계약이 유효하게 성립하게 있을 때 빨리 재산관리와 이전을 준비를 시작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재철 하나은행 신탁사업본부 부행장은 상속 서비스를 이렇게 설명했다. 베이비부머 세대에게 한국의 자산이 집중되고 있다. 베이비부머 세대는 곧 65세 이상의 고령층으로 접어든다. 변화를 느낀 하나은행은 2010년 '리빙트러스트 센터'를 중심으로 금융권 최초로 유언대용신탁을 출시했다. 이어 지난 4월에는 유언장의 작성과 보관, 집행까지 맡는 유산정리서비스까지 내놓았다.

하나은행 리빙트러스트의 수탁잔액은 올해 3월말 기준 2조9781억원으로 3년 전(7224억원)에 비해 4배 이상 증가했다. 특히 맞춤형 리빙트러스트 가입손님의 약 50%는 80대 이상이다. 이 부행장은 최근 젊은 고객들도 늘어났다며 더 많은 이들이 더 일찍 재산을 보호할 준비를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하나은행 유언대용신탁 수탁 잔액/그래픽=김다나

-유언대용신탁이란 무엇인가
▶신탁은 내가 가진 재산을 믿을 만한 사람에게 맡기는 거다. 유언대용신탁은 생전에는 재산을 운용·관리해주고 사후에는 미리 지정한 수익자에게 재산이 이전되도록 상속을 돕는 제도다. 고객이 생전에 설계한 대로 그대로 집행하는 방식이다.

-어떤 사람들이 유언대용신탁을 많이 찾나
▶유언대용신탁을 보통 상속과 관련되거나 자산이 많은 고객만 이용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재산을 기부하려는 손님, 치매걸린 부모의 재산 혹은 미성년이나 장애인의 재산을 보호하려는 고객들도 찾는다. 특정한 분들에게 필요한 게 아니라 내 뜻대로 재산이 보호되고 쓰이도록 하는 관리가 필요한 모든 분들에게 필요하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손님이 있나
▶손님 한 분이 소개해 준 70대 초반 A씨의 재산을 못 지켜드려 아쉬움이 남는다. A씨는 배우자가 먼저 사망하고 자녀가 없이 홀로 살았는데 어느 순간 치매가 생기며 의사능력이 감퇴했다. 손님이 이를 알아채고 A씨를 소개했다. 명문대를 나와 전문직으로 살면서 재산도 상당히 많았다. 하지만 우리가 만났을 때는 이미 치매가 많이 진행된 상태여서 의사능력이 없어 신탁 계약을 할 수 없었다. 이후에 들어보니 조카들이 통장관리를 해준다며 통장을 가져갔다고 들었다. 조금만 더 빨리 만났다면 A씨의 재산을 지켜드렸을 것이다.

-독거노인이 늘면서 신탁의 형태도 다양화하고 있다던데
▶기부신탁을 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자식이나 친인척에게 보살핌을 못 받았다고 생각하면 재산을 유족 등에 남기지 않고 병원, 학교 등에 기부하도록 계약을 설정하는 것이다.

80대 초반이던 손님 B씨는 형제·자매가 세상을 떠나고 미혼인 상태로 혼자 살다가 치매가 발병했다. 그는 옆집 사람과 인사는 했으나 잘 아는 사이는 아니었다. 그런데 옆집 지인은 치매 증상을 보이는 B씨가 가족이 없다는 사실을 안 뒤로 적극적으로 B씨를 챙겼다. 고모에게 연락 한 통 없던 조카들도 자신들이 사는 지역으로 내려와 함께 살자고 제안했다. B씨는 조카와 지인이 괘씸해 재산을 남겨주지 않고 기부를 원했다. 그래서 조카들에게 최소한의 법적 유류분만 남기고 나머지 금액을 병원에다가 기부하도록 기부신탁을 체결했다.

-유언대용신탁이 있는데 유산정리서비스까지 출시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신탁을 '이질적'으로 생각하는 손님들이 있다. 재산이 '넘어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신 유언장을 은행에서 써달라는 손님의 요청이 많았다. 작성한 공증 유언장을 은행 금고에 보관하고 집행까지 해드린다. 신뢰도 높은 금융기관이 유언장을 맡아준다는 점에서 찾는 손님들이 늘고 있다.

-신탁과 유언장까지 이처럼 고객의 성격과 사례가 천차만별인데 어떻게 대응하나
▶일일이 맞춤 컨설팅을 한다. 22명의 직원이 1년에 약 3000건의 상담을 진행한다. 직원들의 경쟁력이 필수이기 때문에 일본 미쓰이스미토모 신탁은행, 법무법인 가온·김앤장·율촌 등과 협업한다. 미쓰이스미토모 도쿄 본사에서 직접 선진 신탁을 경험하는 연수를 매년 진행하고 있다. 또 특수한 상황이 발생하면 법무법인의 크로스체킹 과정도 거친다.

-1인 가구나 아이가 없는 부부가 늘어나고 있다. 관련해서 상속 분야에서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는 부분이 있나
▶반려동물 '펫신탁'이다. 일본이나 영국 등 신탁 선진국에서는 펫신탁이 운영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1인 가구나 부부만 같이 사는 손님들이 '자식과 같은' 반려동물 앞으로 재산을 남기겠다고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관련해서 내부적으로는 준비가 돼있으나 실질적으로는 운영이 어렵다. 현재 국내 법적·제도적으로 기관이나 부양자 앞으로 재산을 남기고 반려동물을 보살피는 방식만 가능한데 고객들이 기관을 통하는 방식을 꺼리기 때문이다. 다만 지속적으로 수요가 있기 때문에 반려동물에게 제대로 돈이 쓰이는지 감독할 기관이 부재하다는 제도적 문제 등이 해결되면 시장이 클 수 있다.

-최근에는 젊은 고객도 늘어났다는데
▶얼마 전 40대의 100억원대 자산가가 찾아왔다. 혹여나 자신이 잘못되면 젊은 부인이 중학생 아들 2명을 제대로 보살필 수 있을 지를 걱정했다. 그래서 재산의 일부분만 부인에게 상속하고 남은 재산은 미성년인 아들 2명이 성년이 된 후 받을 수 있도록 신탁을 설계했다.

옛날에는 상속 업무가 아프거나 나이 많은 사람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코인 부자', '상속 부자' 등 젊은 자산가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실제 올해 1분기 가입손님의 약 29%가 50·60대였다. 2021~2023년까지만 해도 15~17%에 그쳤다.

-고객들에게 상속 서비스와 관련해 강조하고 싶은 점이 있다면
▶아픈 사람만 상속 서비스를 찾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건강하실 때, 미리 이용하시라는 뜻이다. 고령화 속도가 매우 빠르고 기대수명이 늘면서 치매가 급증하고 있다. 자신들이 평생을 바쳐 일군 자산과 재산을 활용해보지도 못하고 돌아가시고 고객이 많다. 미리 상담하고 설계한다면 내가 정신이나 육체가 아프더라도 보살핌을 받을 수 있다. 또 자식들 간의 분쟁과 불안도 대부분 해결할 수 있다.

하나은행 리빙트러스트 연령별 가입자 비중/그래픽=김다나
키오스크서 카드 발급도 '척척' "할만하네"...'은행사용법' 배우는 시니어
지난달 28일 인천 남동구 신한은행 인천영업부센터 4층 신한 '학이재'는 시니어 수강생들의 학구열으로 가득했다. 인근 행정복지센터에서 10명 안팎의 시니어들이 디지털금융 교육을 받기 위해 모였다. /사진=이병권 기자

"앱(애플리케이션) 써보니까 해볼 만하네요? 배운다는 마음가짐에 달렸나 봐요."

지난달 28일 인천 남동구 신한은행 인천영업부센터 '학이재'에서 태블릿PC로 은행 앱 사용법을 배운 70대 여성 A씨는 "반복해보니 어색했던 사용법이 익숙해졌다"며 "날 더울 때 은행 나갈 필요 없겠다"고 미소를 지었다. 학이재에 모인 시니어 10여명은 서툰 손동작으로 화면에 뜬 버튼을 눌렀다. 처음에는 갈팡질팡하던 손가락 끝에서 이내 자신감이 묻어났다.

신한은행이 운영하는 '학이재'는 대표적인 시니어 디지털금융 교육센터다. 논어 학이편 제1장의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라는 문장 속 배움의 의미를 담아 이름 지었다. 점포가 줄면서 대면 거래가 익숙한 시니어들이 금융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지적이 나오자 은행권은 디지털교육에 직접 나섰다.

시니어들도 새로운 배움에 적극적이다. 무인 금융기기 앞에서 서성대다가 주변 젊은이에게 묻거나 도움을 받는 민망함을 피할 수 있다. 인천영업부센터 '학이재'에는 영업점과 똑같은 비대면 화상 상담 창구·스마트 키오스크(STM)가 설치돼 있다. 번호표를 뽑는 것부터 비대면 거래로 카드발급을 받는 과정을 영업점처럼 구현했다.

실습을 위해 교육용 서버를 따로 구축할 정도로 공들였다. 강사 1명과 학이재 어시스턴트 1명, 대학생 홍보대사 5명 등이 시니어 곁에서 밀착 교육을 진행했다.

창구에서 AI은행원과 방문 목적을 묻고 대답하면 은행원이 화상 연결된다. 화상 연결된 행원이 화면에 모습을 드러내자 일부 시니어들은 손을 흔들며 '잘 들리느냐'고 인사를 주고받았다. /사진=이병권 기자

이날 무인기기를 통한 카드발급 실습도 진행됐다. 무인 화상 상담 창구에서 AI(인공지능) 은행원과 방문 목적을 묻고 대답하면 실제 은행원이 화상으로 연결된다. 연결된 은행원이 화면에 나타나자 일부 시니어들은 손을 흔들며 '잘 들리느냐'고 인사를 주고받기도 했다.

하지만 반가움은 잠시 스마트 키오스크를 통해 실물 카드를 발급 받아야하는 단계에 오자 시니어들은 서로 '먼저하라'고 순서를 미루기도 했다. 이때 학습을 보조하던 신한 대학생 홍보대사와 학이재 어시스턴트들이 나서 시범을 보였다. 시범을 눈여겨 본 시니어들은 모두 카드를 발급 받았다.

키오스크에서 발급 받은 카드를 손에 쥔 60대 남성 B씨는 "밀어주고 끌어주니까 할 수 있었다"며 "큰 아들도 이거 잘 모를텐데 내가 알려줘야겠다"며 뿌듯함을 나타냈다.

한쪽에선 태블릿PC를 활용해 보이스피싱 여부를 가려내는 실습이 진행됐다. 시니어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다가도 개인정보를 요구하는 등 확실한 징후가 나오면 바로 보이스피싱임을 알아챘다. 실습을 마친 70대 남성 C씨는 "대뜸 돈을 입금하라거나 개인정보를 달라고 하면 일단 의심부터 하라고 배웠다"며 "지인들한테도 주의를 꼭 당부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한은행 소비자보호부 관계자는 "폐점포를 활용할 방안을 구상하다가 사회 환원의 의미로 학이재가 탄생했다"며 "체험하는 교육의 필요성이 높아지면서 오는 8월 수원에 추가로 열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한쪽에선 태블릿PC를 활용한 교육이 한창이었다. 녹음된 통화를 들으면서 보이스피싱 여부를 가려내는 실습이다. 시니어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다가도 확실한 징후가 나오면 지체없이 보이스피싱이라고 확정했다. /사진=이병권 기자

교육뿐만 아니라 시니어 '특화점포'도 다양한 형태로 운영 중이다. 시니어의 접근성을 높이면서 지역민과의 상생을 확대하는 전략이다. KB국민은행은 대형 밴을 개조한 'KB시니어라운지'를 운영하면서 노인복지관 등을 직접 찾아가는 금융 서비스를 제공한다. 올해 인천까지 그 범위를 넓혔다.

최근엔 특화점포에 '휴게·문화 공간'을 만드는 게 트렌드다. 우리은행은 화곡동 지점에 사랑채와 우리마루 등 휴게공간을 마련했다. 인근에 전통시장이 있기 때문에 '소상공인 지원센터'도 운영한다. 경영컨설팅으로 노하우를 전수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하나은행 대전지점과 광주지점 등은 시니어를 위한 '컬처뱅크'로 꾸며졌다. 시니어들은 LP음반·카세트테이프 등이 설치된 '음악감상실'과 영화를 감상하는 '시네마룸'이 있어 취미·여가를 즐길 수 있다. 문화 공간으로서 교육·원데이클래스 등도 수시로 열린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은행업무만이 아니라 언제든 쉬고 싶을 때 와도 되는 공간으로 꾸몄다"며 "시니어가 은행을 더 편하게 생각하도록 하는 게 중요해지면서 특화점포도 경쟁 요소가 됐다"고 말했다.

하나은행 대전지점의 컬처뱅크 내부 모습. 맞춤형 음악감상실 전경 /사진제공=하나은행
사는 곳은 실버타운, 집은 주택연금에…연금지급 10조 넘었다
주택연금, 연금지급 누적 잔액/그래픽=윤선정

주택연금 가입자에게 지급된 연금 규모가 10조원을 넘어섰다. 주택연금은 부동산 자산 비중이 높은 시니어가 안정적 노후 소득을 올릴 수 있는 상품으로 꼽힌다. 최근에는 실버타운에 거주하면서 주택연금을 받고, 기존 주택에서는 임대소득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11일 주택금융공사에 따르면 지난 4월 말 주택연금 가입자에게 지급된 연금지급 잔액은 10조5717억원(누적 기준)으로 집계됐다.

주택연금은 주택 소유자가 집을 담보로 제공하고, 집에 살면서 평생 매월 연금을 받을 수 있도록 국가가 보증하는 제도로 2007년 도입됐다. 일종의 '역모기지 상품'이다. 연금지급액은 가입자에게 지급된 월지급금, 개별인출금, 대출이자, 보증료 등이 포함된 금액이다.

노후 소득을 얻을 수 있는 대표적인 상품으로 자리 잡으면서 가입자가 늘고 있다. 올해 1~4월 주택연금에 가입한 건수는 5240건으로 누적 기준 9만8424건의 주택연금 보증이 운영 중이다.

부부 중 한 명이라도 만 55세 이상이고, 공시가격 12억원 이하인 주택 또는 주거용 오피스텔을 갖고 있으면 가입할 수 있다. 가입자에게 100세까지 공급이 예상되는 연금 보증 총액만 약 130조원에 이른다.

특히 한국은 시니어가 보유한 자산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 주택연금의 수요가 더 늘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65세 이상 시니어의 평균 자산은 5억714만원으로 이중 부동산이 81.3%를 차지한다.

정부는 시니어의 주택연금 활성화를 위해 지난달 20일부터 가입자가 실버타운(노인주거복지시설)으로 이주해도 주택연금을 계속 받을 수 있게 규정을 바꿨다. 기존 주택에는 세입자를 구해 추가 임대소득도 받을 수 있다.

또 지난 3일부터 우대형 주택연금에 가입할 수 있는 주택가격을 2억원 미만에서 2억5000만원 미만으로 높였다. 우대형 주택연금은 부부 중 1명이 기초연금 수급권자이면서 1주택을 보유한 경우 월 지급금을 최대 20% 더 받을 수 있다.

주금공 관계자는 " 2억5000만원 미만 1주택 보유자가 주택연금에 가입할 때 한국부동산원과 KB인터넷 시세정보가 없으면 감정평가수수료를 공사가 부담한다"며 "인터넷 시세정보 없는 2억원 주택 소유자가 가입할 경우 감정평가수수료 약 40만9000원을 아낄 수 있다"고 말했다.

김남이 기자 kimnami@mt.co.kr 김도엽 기자 usone@mt.co.kr 인천=이병권 기자 bk223@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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