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건축] 온돌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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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간 광화문 근처의 호텔에 업무차 머물며 아침저녁으로 거의 같은 시간대에 경복궁과 서촌, 북촌 일대를 지나다닐 기회가 있었다.
내국인들과 함께 다양한 방식으로 전통한복을 꾸며 입은 외국인들이 무리 지어 다니는 모습은 여러 가지 생각을 떠올리게 했다.
우리는 불행하게도 일제의 식민 지배와 함께 일본화된 서양 문물이 무분별하게 유입되면서 우리의 전통적인 한복과 한옥을 자생적으로 현대화시킬 시간과 기회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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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간 광화문 근처의 호텔에 업무차 머물며 아침저녁으로 거의 같은 시간대에 경복궁과 서촌, 북촌 일대를 지나다닐 기회가 있었다. 내국인들과 함께 다양한 방식으로 전통한복을 꾸며 입은 외국인들이 무리 지어 다니는 모습은 여러 가지 생각을 떠올리게 했다. 한류의 세계적인 확산과 함께 한국 옷에 한국 음식을 먹으며 한국의 건축과 도시를 구경하는 외국인들이 늘어나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황금색 곤룡포에 갓을 쓰고 선글라스를 끼는 등 기묘한 모습의 외국인들이 거대한 세트장처럼 관광자원으로 전락한 조선의 정궁 주변을 오가는 모습은 보기에 편하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우리가 외국 여행을 가면 각 나라의 고유한 특성을 간직한 건축과 도시를 만나기에 매력적으로 느낀다. 반대로 그 나라나 도시만의 특성이 없는 곳을 방문하고 나면 후에 이름도 잘 기억나지 않기도 한다. 이와 같은 배경에서 고층빌딩이 즐비하고 현대화된 서울의 중심부에 도보로 걸을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있는 경복궁과 창덕궁, 서촌과 북촌의 한옥과 골목길은 외국인들뿐 아니라 한국인들에게도 분명 매력적이다. 어느 곳에서나 인터넷 접속이 가능한 디지털강국 한국의 수도 서울에서 600여 년의 시간과 역사가 축적된 건축과 도시는 물론 그 안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삶을 함께 경험하고 할 수 있다는 것은 흔치 않은 경험이다.
우리 문화를 대표하는 의식주 가운데 음식을 제외한 나머지는 이미 서구화로 인해 일상생활에서 멀어졌다. 이제 한복은 결혼식과 팔순 잔치에나 입고 전통건축에서의 생활은 '템플스테이'나 '한옥스테이' 체험으로 대신하고 있다. 우리는 불행하게도 일제의 식민 지배와 함께 일본화된 서양 문물이 무분별하게 유입되면서 우리의 전통적인 한복과 한옥을 자생적으로 현대화시킬 시간과 기회가 없었다. 해방 후 서양의 아류가 아닌 한국만의 고유한 현대건축을 만들기 위한 여러 방안을 모색했었고, 동양의 정신(무형의 것)을 서양의 그릇(유형의 것)에 담는다는 의미의 동도서기(東道西器)라는 단어가 대안처럼 거론된 적이 있다. 과거에 우리 삶의 그릇이었던 한옥으로 돌아가기는 힘든 현실에서 기존에 형성된 서양 건축과 도시의 틀에서 정신적이고 무형적인 부분의 계승을 꾀하자는 타협적인 대안이었다.
이에 비해 최근에는 여러 분야에서 매우 과감하고 실험적인 방식으로 전통의 계승과 현대화 시도들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케이팝의 세계적인 확산과 함께 국악 분야에서 다양한 시도들이 돋보인다. 결과 또한 매우 좋게 나타나고 있다. 국악에 대한 젊은이들의 관심이 늘었다는 자체가 대성공이다.
건축 분야에서 과거부터 현재까지 거의 유일하게 살아남아 진화를 거듭하고 있는 사례는 온돌 난방방식이다. 전통 한옥의 온돌 난방은 구들장 돌을 깔고 진흙으로 덮은 방바닥을 장작불로 덥혔다. 근대화 과정에서 철근콘크리트 구조에 온수 파이프를 깔고 몰탈로 마감한 바닥을 연탄보일러로 덥히는 방식으로 변했고, 현재 대부분의 주택이나 아파트는 기름이나 가스보일러로 온수파이프를 덥히고 있다. 최근에는 바닥 마감재 밑에 얇은 단열재와 난방필름을 깔고 태양광발전 전기로 바닥을 덥히는 방식으로까지 발전했다. 먼 미래에도 우리의 주거 문화에서 온돌은 살아남으리라 본다. 온돌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간단하다. 돌아갈 수 없는 과거에 집착해 머물러 있는 전통은 결국 사라지고 변하는 전통만이 지속 가능하다. 머물러 있는 전통은 일상과 대중에서 멀어진 채 박제화되고 결국은 박물관으로 가게 되지만 변하는 전통은 우리의 일상에서 살아남게 된다. 전통은 머물러 있지 말고 변해야 산다. 심영섭 건축사사무소·우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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