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전세를 어떻게 망가뜨렸나?

김동인 기자 2024. 6. 12. 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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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아파트 임대차 시장이 붕괴되고 있다. 서민의 주거권을 지탱하던 시스템 일부가 고장났다는 의미다. 10년 새 폭증한 전세대출부터 잡아야 하지만, 정치권은 위기만 키우고 있다.
서울시 송파구 잠실새내역 인근의 모습. 잠실 아파트 단지 인근에 비아파트 저층 주거지가 넓게 위치해 있다. ⓒ시사IN 이명익

최근 주택 임대차 시장에 두 가지 공포가 퍼지고 있다. 첫 번째는 ‘전세가 상승 공포’다. 서울 아파트를 중심으로 최근 1년 사이 전세가가 부쩍 올랐다. 한국부동산원이 집계하는 ‘주간 아파트 전세가격 지수’에 따르면, 지난해 5월22일 83.6이던 지수가 올해 5월20일에는 88까지 꾸준히 상승했다. 그러다 보니 ‘전세가가 매매가의 하방을 지지해준다’며 아파트 가격이 다시 상승할 것이라고 우려 혹은 기대하는 이들도 심심찮게 등장한다. 역설적인 공포다. 아파트 전세 임차인들은 전세가 상승의 부담을 느끼지만, 자산을 가진 쪽에서는 이 공포를 ‘하락 리스크가 해소되는’ 호재로 여긴다.

그러나 같은 도시에서 다른 성격의 공포도 번져가고 있다. 바로 ‘비(非)아파트 전세’에 대한 공포와 기피 현상이다. 불과 2년 전인 2022년 3월, 서울 비아파트 월세 거래 비중은 56% 수준이었다. 그러나 전세사기 여파가 커지면서 임차인들이 비아파트 전세를 꺼리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월세 비중이 올해 3월 69.7%까지 늘어났다. 그만큼 다가구·다세대·오피스텔 전세 거래는 줄어들었다.

전세사기는 현재진행형이다. 임대인(집주인)이 임차인(세입자)에게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전세 사고 관련 통계는 연일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5월17일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따르면, 올해 1~4월 전세보증금반환보증 사고액은 1조9062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76% 늘어났다. 이 추세대로라면 올해의 연간 사고액은 역대 최고치라던 지난해 기록(4조3347억원)을 훌쩍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악순환이다. 전세사기가 무서워 비아파트 전세 수요가 줄어드는데, 들어올 임차인이 없으니 전세사기를 비롯한 전세 사고는 더 늘어난다. 아파트만 바라보는 세상에서는 보이지 않는 현상이다.

■ 빌라 임대차 시장의 붕괴

두 공포는 서로 무관하지 않다. 빌라로 대표되는 다가구·다세대 주택 전세 기피 현상이 강해질수록 자연스럽게 아파트 전세에 대한 수요가 늘기 때문이다. 아파트는 비아파트에 비해 상대적으로 전세가율(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이 낮고, 적정 시세가 얼마인지 확인하는 것도 용이하다. 결국 안전의 문제다. 요컨대 신축 빌라보다 준공 30년이 넘은 구축 아파트가 적어도 전세보증금을 날릴 걱정이 덜하다는 점에서 훨씬 안전하다. 전세가는 금리, 공급량, 인구의 사회적 이동, 정부 정책 등 다양한 요인으로 인해 변하지만, 현재 가장 선명한 변수는 바로 ‘비아파트 전세 공포’다.

이 현상은 서민의 주거권을 지탱하던 시스템 일부가 고장 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서울은 빌라로 대표되는 다세대 주택의 비중이 가장 높은 도시다. 국토교통부가 지난해 발표한 ‘2022년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서울의 아파트 비중은 43.45%로 전국 평균(51.93%)을 하회하는 반면, 서울의 다세대주택 비중은 18.9%로 전국에서 가장 높았다. 비거주용 건물(근린생활시설 등)이나 오피스텔, 고시원 등을 감안하면, 서울에서 비아파트 거주 인구는 절반을 넘는다. 이른바 ‘서민 주거 공간’으로 불리는 곳들이다.

온라인 경매 정보 사이트 ‘경매지도’에서 서울 강서구 화곡동 일대를 캡처한 장면. 전세사기 피해로 인한 경매 물건이 많다.ⓒcourtauctionmap.com 갈무리

서민 주거 시스템 붕괴의 또 다른 현상은 공실이다. 서울에서 잇따른 전세사기·사고로 인해 경매가 진행 중인 집이 많고, 특히 HUG가 임대인 대신 임차인에게 보증금을 지급한 ‘대위변제’ 사례도 크게 늘고 있다. 전세 기간이 끝나고 임차인이 HUG로부터 대위변제를 받고 퇴거할 경우, 이 집은 HUG가 경매 등으로 변제액을 회수하는 동안 임대가 어렵다. 회수율도 처참한 수준이다. 2023년 HUG의 보증사고 건수는 총 1만9350건이었지만, 회수율은 14.3%에 불과했다.

결국 이들 집이 시장에 풀리기 위해서는 경매 시장에서 누군가 전세가만큼 매수해주거나, 혹은 HUG가 손절(대항력 포기)해야 한다. 비아파트 주택은 전세가가 매매가보다 높은 깡통주택이 많기 때문에, 경매 시장에서 전세사기·사고 물건은 인기가 떨어진다. 부동산 경매 전문 사이트 지지옥션의 ‘전세피해 경매정보’에 따르면, 2024년 2~4월 3개월 동안 전국 연립·다세대·오피스텔(주거용) 경매 매각률은 18.24%에 그쳤다. 전체 경매 건수도 늘고 있다. 지지옥션에 따르면 올해 5월 서울 빌라 경매 건수는 총 1494건으로 2006년 1월(1600건) 이후 가장 많았다.

경매 물건의 낙찰률이 높아지려면 결국 전체 매입 가격을 낮추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HUG의 손실이 불가피한 구조다. 이는 전세사기와 역전세로 인한 시장 붕괴의 여파가 결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는 의미가 된다.

그런데 시스템의 붕괴를 두고 해법이 제각각이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이나 임차인들은 전세사기가 제대로 처벌받고, 피해자 구제가 이뤄져야 전세 시장이 본래의 기능을 작동할 것이라 여긴다. 반면 국토교통부는 다른 해법을 그리고 있다. 제21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가 열린 5월28일, 이 대립의 정점이 정치 현장에서 드러났다.

■ 기관도 어렵다는 그 절차, 개인이 해왔다

5월28일, 제21대 마지막 본회의에서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이 통과되었다. 이번 개정안에는 흔히 ‘선구제 후회수’로 불리는 전세 채권 매입 방침이 담겨 있다. HUG와 같은 채권 매입 기관이 임차보증금 반환채권(전세보증금)을 공공 매입해 피해액의 일부(30% 수준)를 먼저 돌려주고, 추후 채권 추심과 매각을 통해 회수하는 방식이다.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 소속 피해자들은 이날 국회 본회의를 막막한 심정으로 방청했다. 법안이 통과됐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할 것으로 전망되었다. 결국 다음 날인 5월29일 윤 대통령은 야당의 강행 처리에 반발하며 이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제21대 국회가 끝난 터라 재의결도 어려워 결국 이 법안은 제22대 국회에서 다시 논의될 처지에 놓였다.

거부권 행사 분위기는 사전에 감지되었다. 국토교통부가 줄곧 법안에 반대하며 공공연하게 거부권 행사를 주장해왔기 때문이다. 5월13일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은 전세사기 관련 기자간담회를 열고 특별법에 반대 입장을 밝히며 이렇게 말했다. “피해자를 직접 지원하면 수조 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손실이 고스란히 다른 국민들의 부담으로 돌아가게 된다. 예전에는 전세를 얻는 젊은 분들이 경험이 없다 보니 덜렁덜렁 계약을 했던 부분이 있지 않을까 싶다.” 당장 비난이 쏟아진 대목은 ‘덜렁덜렁’이라는 표현이었다. 더불어민주당은 ‘전세사기가 청년 스스로의 잘못 때문이라는 말이냐’며 망언을 질타했지만 더 중요한 대목은 따로 있었다.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을 통해 채권 매입을 국가가 직접 나설 경우, ‘다른 국민의 손실’이 발생한다는 시각이다. 개정안의 핵심은 국가가 나서서 악성 임대인으로부터 채권을 회수하자는 것인데, 이 같은 관점은 어떻게 도출된 것일까?

정부에서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을 반대하는 이유는 정부와 HUG가 주도한 지난 세 차례 토론회를 통해 가늠해볼 수 있다. 특히 2차(4월30일), 3차(5월23일) 토론회에서 국토부·HUG·국토연구원·법무부·금융위 등 유관 부처와 기관 관계자 대부분이 크게 세 가지 이유를 들며 특별법 개정을 반대했다.

첫째, 채권 가치를 평가하기가 너무 어렵다. 개정안대로 HUG가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받은 이들의 전세 채권을 인수한다고 가정해보자. 채권 매입 기관은 매입하는 채권의 적정 가격을 계산해야 하는데, 전세보증금의 경우 이 가치 평가 자체가 어렵다는 게 정부 내 중론이다. 선순위 채권 관계가 복잡하고, 조세 채권이 얼마나 잡혀 있는지(임대인이 얼마나 세금을 밀렸는지) 알기 어렵고, 등기부에 기록되지 않은 채권도 확인이 어렵다. 채권을 인수하더라도 나중에 얼마에 팔 수 있을지, 경매가 원활하게 진행될지, 경매 기간을 따졌을 때 채권의 현재가치(3년 뒤 1억원에 팔린다면 현재 가치는 얼마가 적정가인가)가 얼마일지도 논란거리다.

둘째는 인력과 역량이다. 4월30일 2차 토론회에서 한 국토부 관계자는 “몇십 명 투입해서 될 일이 아니다. 채권 매입 신청 접수받고, 가치평가하고, 양도계약하고, 경매하고…. 최소 1000억원에서 3000억원 행정비용이 든다”라고 설명했다. 그 모든 일을 국가가, 그것도 HUG라는 조직이 전담하기가 어렵다는 얘기다.

마지막은 ‘재원’이다. 국토교통부는 개정된 특별법이 시행될 경우 약 3조~4조원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한다. 개정안은 주택도시기금을 활용케 되어 있는데, 2021년 49조원이던 주택도시기금이 2024년 3월에는 13조원까지 떨어져 기금에 여력이 없다는 게 정부 입장이다. 박상우 장관은 특별법이 통과된 다음 날 브리핑을 열고 “주택도시기금은 무주택 서민의 청약저축에서 빌려온 재원”이라며 기금 활용에 부정적 입장을 재확인했다.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에 대한 실무 차원의 우려는 결코 무시할 내용이 아니다. 채권 평가가 어렵고 대규모 행정 재원 투입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그저 수비적인 태도라고 치부하기 어렵다. 이런 걱정을 할 만큼 현재 전세사기·사고 건수가 많으며, 광범위한 피해가 양산되고 있다. 그러나 개정안 반대 논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자연스럽게 이런 반론이 제기된다. ‘기관들마저 평가하기가 어렵다는 적정 채권(전세가) 평가를, 기관들이 광범위한 행정 비용이 든다며 고심하는 그 절차를, 그동안은 개인들이 전담해왔다는 것 아닌가?’

전세 거래는 임대인과 임차인 간의 정보 불균형이 존재한다. 임대인이 다른 집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 세금은 밀리지 않았는지(조세채권), 등기부등본에 나와 있는 선순위 채권 외에 얼마나 빚이 있는지 개별 임차인이 알기 어렵다. 최근 세금 체납 확인을 위한 절차가 보강되긴 했으나, 여전히 계약 방식에 허점이 존재하고 임차인이 유의 사항을 일일이 체크해야 안전을 확보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세제도가 유지되어온 이유는 ‘집값은 높은 확률로 오른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이 같은 ‘정보 격차로 인한 리스크’가 불거지기 시작했고, 제도의 미비점도 하나둘 표출되었다.

5월2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이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개인이 임대차계약 과정에서 전세보증금이 적정한지 평가하는 것은 사실상 ‘채권이 얼마나 안전한지’를 평가하는 과정과 다를 바 없다. 기관도 평가하기 어렵다고 하소연하는 채권 평가를 개인에게 일임하고 있는 구조 속에서, 믿을 수 있는 것이라고는 ‘적정한 전세가율’ 정도에 불과하다. 전세가율이 높은 빌라 대신 아파트를 선호하는 것이 당연할 수밖에 없다.

일각에서는 임대차 거래 시스템을 개선하는 게 우선이라고 주장한다. 제도개선에 부정적인 사람은 많지 않다. 전세사기 피해자, 역전세로 곤란한 상황에 처한 임차인과 임대인, 정부 관계자와 학계 모두 입을 모아 외치는 과제다. 하지만 전세제도 보완에 대해 현 정부가 오히려 미온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표적인 사례가 ‘전월세 신고제 무력화’ 논란이다.

지난 4월17일, 국토교통부는 전월세 신고제 계도기간을 내년 5월31일까지 1년 추가 연장하겠다고 밝혔다. 전월세 신고제는 임대차 3법 중 하나로 2021년 6월1일 도입되었다. 임대인과 임차인의 인적사항, 임대 유형, 계약기간, 임차료 등의 신고를 의무화하고, 신고하지 않을 경우 과태료를 부과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이 제도의 전면 시행은 계속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2021년 당시 국토부는 계도기간을 2년으로 잡았으나, 2023년 계도기간을 1년 연장했고, 올해 추가로 1년 미룬다고 선언했다. 최대 100만원까지 부과되기로 했던 과태료도 최대 20만원까지 낮춘다는 게 국토교통부의 계획이다. 사실상 제도가 무력해진다는 비판이 나온다.

전월세 신고제는 임대차 시장의 투명성을 확보한다는 장점이 있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2022년 2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전월세 신고제를 통해 임대차 시장의 투명성 확보와 함께 임차인의 합리적 의사결정에 도움이 된다. 전월세 신고제로 확정일자가 자동 부여됨에 따라 임차인 권익 보호도 강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일부 임대인들은 이 전월세 신고 데이터가 임대소득세 부과 등 과세 자료로 활용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임대차 거래를 통해 얻은 소득이 데이터로 남는 것 자체를 꺼린다. 이렇듯 전세제도의 보완책 가운데 가장 기본적인 것조차 임대인들의 반발 속에서 시행이 미뤄지고 있다.

비아파트 주택 임대차 시장이 왜곡될 수밖에 없었던, 보다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정부의 반응은 미온적이다. 바로 전세대출 축소다. 전세대출 문제는 비단 윤석열 정부만의 문제가 아니다. 여야 공히 책임을 져야 할 정치적 문제이지만, 동시에 정치적으로 해소하려면 큰 결심이 필요한 문제이기도 하다.

은행이 임차인에게 돈을 빌려주는 전세대출은 전통적인 금융시장 관점에서 다루기 어려운 대출이다. 전통적인 금융 관점에서 이 대출의 ‘담보’는 전세 채권인데, 앞서 기관들조차 전세는 ‘채권 평가’가 어렵다고 아우성이다. 결국 전세대출을 시장에 맡겨둔다면, 담보나 신용이 부족한 저소득층과 청년의 전세대출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행 전세대출은 각종 기관이 ‘보증서’를 발급해주며 신용을 보강한다. 보증서 발급이 용이해질수록 개별 은행은 전세계약마다 돈을 얼마나 안전하게 돌려받을 수 있는지 고민할 필요가 사라진다. 즉, 전세대출 자체가 정부 정책에 따라 늘리고 줄이는 게 가능해진다.

■ 풀어주기는 쉬워도, 잠그기는 어렵다

전세대출은 이명박 정부 시절부터 꾸준히 늘어왔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 3월20일 발표한 ‘전세제도 관련 실태분석 결과’에 따르면, 전세대출 잔액은 지난 15년간 161조원 늘고, 최근 5년 동안 서울에만 120조원이 공급됐다. 이명박 정부 시절부터 전세대출이 늘기 시작했지만, 전세대출 증가액의 상당분은 문재인 정부 때 늘어났다. 문재인 정부 임기 초 36조원이던 전세대출 잔액은 임기 말 162조원으로 126조원 증가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전세대출이 늘어난 것은 ‘청년 주거권을 보장’한다는 명분으로 공공임대와 같은 직접적 지원 대신 금융을 통한 간접 지원을 꺼내들었기 때문이다. 최근 5년간 연령대별 전세자금대출 공급 비율을 살펴보면, 29세 이하가 20%, 30대가 45%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공이 보증해주는 대출을 통해 청년층의 전세 쏠림이 나타났고, 그만큼 전세 시세도 높아졌다. 거품이 꺼진 뒤, 그 유탄은 오롯이 개별 청년 임차인들이 맞고 있으며, 전세대출을 늘린 후폭풍을 HUG를 통한 전세보증금반환보증이나 전세사기 특별법 등으로 뒷수습하는 형국이다. 이 점에서 전세사기의 확대와 비아파트 임대시장 붕괴는 여야 가릴 것 없이 정치의 책임이 크다.

문제는 전세대출을 축소하는 데 정치적 부담이 상당하다는 점이다. 문재인 정부 때인 2021년과 2022년에도 금융위원회가 은행권 총량규제를 통해 전세대출 억제에 나섰지만, 여론의 부담감으로 인해 제때 줄이지 못했다. 고금리 환경에 놓인 윤석열 정부 역시 ‘전세대출 다이어트’는 요원한 상황이다. 경실련 자료에 따르면 2023년 10월 기준 윤석열 정부의 전세대출 잔액은 임기 초 대비 6000억원 정도가 줄었을 뿐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여기에 더해 정책금리 상품을 통한 전세대출 확대 정책까지 내놓고 있다. 4월4일 ‘민생토론회 후속조치 점검회의’에서 윤 대통령은 버팀목 전세자금대출의 신혼부부 소득 기준을 7500만원에서 1억원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정책금리 상품인 버팀목 전세자금대출은 시중은행 전세대출에 비해 금리가 약 2~3%포인트 낮다. 저출산 환경에서 결혼을 유도하고 신혼부부의 부담을 줄이려는 정책이었지만, 동시에 전세대출을 더 확대하고 전세 수요를 높이는 결과로도 이어진다.

정부의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재원 부족’ 논리도 버팀목 전세자금대출로 인해 무색해진다. 버팀목 전세자금대출과 같은 정책금리 상품은 주택도시기금을 통한 ‘이자 보전’으로 유지된다. 기준금리와 시장금리가 오르는데도 정책금리 상품의 이자가 싼 이유는, 기금을 통해 금융기관에 이자를 보전해주기 때문이다. 즉, 같은 금고에서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과 전세대출 확대가 동시에 이뤄지는 상황이 정부 입장에선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박상우 장관은 “기금은 무주택자의 청약을 통해 만들어진다”라고 강조하는데, 이 역시 ‘무주택자 갈라치기’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서민 주거 안정이라는 목표를 두고 한쪽에서는 전세대출의 총량을 늘리고, 다른 한쪽에서는 전세사기와 역전세가 발생하는 문제가 벌써 수년째 이어지고 있다. 전세 문제는 금융의 문제인 동시에, 금융을 동원하려 했던 정치의 문제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전세대출 축소를 위한 세부 정책을 입안했으나, 시행이 중단된 사례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전세자금대출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산정에 포함하는 정책이다. 현재 DSR을 산정할 때, 전세대출은 예외 항목으로 분류되고 있다. 유동성 증가가 주택가격에 미치는 영향을 축소해 전세제도의 구조적 위험을 낮추자는 주장이 그동안 제기되었는데, 실제로 금융 당국이 올해 1월 전세대출을 DSR 규제에 포함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시사IN〉 제856호, ‘가계부채 감축 의지, DSR 보면 알 수 있다’ 기사 참조). 그러나 이 정책은 정부 내 반대에 부딪혀 연내 시행을 미뤄둔 상태다. 총선을 앞두고 여론 악화를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비판도 제기되었다. 가계부채 감축과 동시에 전세시장 안정을 위한 유동성 정책조차 정치적 의사에 따라 추진력이 약해질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사례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개별 임차인에게 가장 합리적이고 안전한 선택은 ‘전세가율이 낮은 집에서 임대차 계약을 맺는 것’이다. 전세가율은 모수인 매매가가 오르거나, 전세가가 낮아져야 떨어진다. 매매가를 부양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쉬운 선택이지만, 전세가가 떨어짐에 따라 발생하는 후폭풍을 수습하기란 그야말로 가시밭길이다. 그래서 정부에서도 전세가를 떨어뜨리는 것보다는 비아파트 주거 시장을 부양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지난해 9월 발표한 주택공급 활성화 대책에서도 전용면적 60㎡ 이하 소형주택을 사더라도 아파트 청약 때 불이익이 없도록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주택 매수 수요를 끌어올려 거래를 늘리고 가격을 방어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실수요보다 투기수요에 따라 가격이 오른 비아파트 임대차 시장이 이 같은 정책으로 얼마나 안정될지는 미지수다.

5월28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 처리를 지켜보고 있다.ⓒ시사IN 조남진

일부 임대인들은 “가격에 거품이 생긴 것도, 거품이 꺼진 것도 HUG의 전세보증금반환보증 가입 가능 금액 때문이다. 공시가격의 126%로 고정되어 있는 가입 가능 금액을 높여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HUG는 2022년까지 공시가격의 150%를 인정하며 전세보증금반환보증 가입 금액을 높여왔다. 그러나 이 ‘기준’이 ‘상대적으로 안전한 전세 거래 가능 금액’으로 인식되면서 공시가보다 훨씬 높은 금액으로 전세 거래가 이뤄지게 했고, 그 결과 전세사기와 역전세 문제가 한꺼번에 불거져 HUG 재정의 위기까지 번졌다.

결국 국토교통부에서는 ‘공시가×126%’로 기준을 낮춰왔는데, 최근 이 기준에 공시가 대신 감정평가 가격을 도입할 수 있게 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 이 경우 전세보증금반환보증 가입 가능 금액은 전보다 높아질 수 있다. 그러나 이 역시 정책적 차원에서 전세금 상승을 유지하고 매매가 하락을 막는 결과로 이어지기 때문에 비판이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갑작스럽게 도래한 고금리 환경에서 전세제도의 ‘빈틈’은 유독 도드라진다. 한국을 제외한 다른 국가들의 주택시장은 ‘금리나 물가의 영향을 받는’ 임차료 문제가 고민이다. 미국에서도 인플레이션을 견인하는 주요 요인으로 주거비를 꼽을 정도다. 반면 전세대출이 일반화된 한국은 고금리와 인플레이션 여파를 전세대출을 내어준 은행이 가져가는 형국이다. 한국 정치권은 정책금리 상품을 통해 임차료의 부담을 낮춰주었고, 그 후폭풍을 일부 임차인들이 뒤집어쓰는 형태로 위험을 관리해왔다.

방치된 시스템을 고치는 일도 결국 정치의 몫이다. 그러나 현재 여야는 정치적 책임을 서로에게 떠밀며 사태를 오랫동안 방치하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전세사기가 확대된 원인이 전 정부의 책임이라며 전 정부에서 추진한 ‘임대차 3법’까지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전세사기 특별법을 밀어붙였지만, 문재인 정부 시절 전세대출을 줄이지 못한 데 대한 책임에는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야당 차원에서 ‘전세대출 축소’를 먼저 주장하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대출을 줄이자는 언급만으로도, ‘여태껏 저렴하게 거주해온 권리를 빼앗는다’는 여론의 역풍이 일 수 있다. 풀어주기는 쉬워도, 잠그기는 어렵다. 선의로 시작한 정책이 경로의존성에 빠졌을 때 더 이상 걷잡을 수 없는 경우가 생긴다. 불과 10년 사이에 폭증한 전세대출이 여기에 해당한다.

김동인 기자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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