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잘살고 싶었다” 막지 못한 전세사기 여덟 번째 죽음

이은기 기자 2024. 6. 12. 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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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전세사기 피해자가 숨진 채 발견됐다. 지난해 2월 이후 최소 11명 이상이 전세사기로 목숨을 잃었다. 이들이 기다렸던 특별법 개정안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자동 폐기됐다.
5월24일 부산역 광장에 마련된 대구 전세사기 희생자 A씨(38) 분향소를 찾은 시민이 분향하고 있다. ⓒ시사IN 조남진

5월1일 대구 남구 대명동에서 전세사기 피해자 A씨(38)가 숨진 채 발견됐다. 3월27일 ‘영남권 전세사기 피해자 증언대회’에서 “저는 한 아이의 엄마입니다. 아이를 지켜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습니다. … 다가구주택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죽음의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살려주세요”라고 외친 그였다. 그 후 한 달이 지나도록 그의 요구에 응답하는 곳은 없었다. A씨는 유서에 “빚으로만 살아갈 자신이 없습니다. 살려달라 애원해도 들어주는 곳 하나 없고… 저도 잘살고 싶었습니다. 도와주지 않는 이 나라,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요?”라고 썼다.

A씨는 2019년 4월부터 대구 남구 대명동의 한 다가구주택 ‘B하우스’에 살았다. 전세금 8000만원(2021년 8400만원에 계약 연장)에 B하우스 임대인 조 아무개씨(68)와 계약했다. ‘다가구주택’은 법률상 단독주택이지만 한 건물에 여러 가구(최대 19가구)가 살고, 소유자(임대인) 한 명이 같은 건물에 사는 모든 세입자(임차인)와 계약한다. 다시 말해 A씨가 살았던 B하우스의 경우, 임대인 조씨가 B하우스 전체 세입자에게 각각 보증금을 받고 다시 전체 세입자 각각에게 보증금을 반환해야 한다.

이때 다가구주택 세입자의 이해관계는 모두 다르다. 세입자들의 우선순위는 전입신고와 확정일자에 따라 달라진다. 만약 선순위로 은행 대출을 담보하는 근저당권이 있다면, 은행 대출 채권이 1순위다(B하우스에는 9억1200만원의 은행 근저당권이 설정돼 있었다). 그다음 세입자들의 우선순위에 따라 2순위부터 최대 20순위까지 순위가 매겨진다. 그래서 다가구주택에 전세로 들어가기 전에는 먼저 사는 세입자들의 보증금(선순위 임차보증금) 규모를 꼭 알아야 한다.

그런데 지난해 4월까지만 해도 임대인이 동의하지 않으면 계약 전까지 선순위 임차보증금 액수나 규모를 확인하기 어려웠다. 이미 거주하는 세대에 일일이 찾아가 ‘전입일자·확정일자가 언제냐’ ‘전세금이 얼마냐’라고 직접 묻는 방법뿐이었다. 사실상 불가한 일이다. 임대인이 마음만 먹으면 새로 집을 구하는 사람들에게 선순위 임차보증금 액수를 속이거나 아예 알려주지 않을 수 있었다. 개정된 주택임대차보호법이 시행된 지난해 4월18일 전까지, 다가구주택 세입자는 선순위 보증금이 얼마인지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채 임대인이나 공인중개사의 막연한 약속만 믿고 전세 계약을 맺었다.

대구 남구 대명동에 위치한 다가구주택. 이곳에 살던 전세사기 피해자 A씨(38)가 5월1일 숨진 채 발견됐다. ⓒ시사IN 이은기

A씨도 지난해 12월께에야 자신이 B하우스가 경매나 공매에 넘겨지더라도 낙찰된 집값을 받기 어려운 ‘후순위 임차인’이라는 걸 알게 됐다. A씨는 생전 “부동산 중개업자와 임대인 조씨가 계약서를 작성할 때 선순위 보증금 총액을 허위로 고지해 계약했다”라고 말했다. 임대인 조씨는 A씨가 사망하고 23일이 지난 5월24일 사기 혐의로 구속 송치됐다. 대구남부경찰서에 따르면, 조씨는 다가구주택 등 건물 12채에서 세입자 104명의 전세금 88억원을 돌려주지 않은 혐의를 받고 있다.

‘소액임차인’ 기준(대구 지역 당시 보증금 6000만원 이하)에 해당하지 않는 A씨는 다른 권리자보다 우선해 일부 전세금(최우선 변제금)을 돌려받을 수 있는 ‘최우선 변제권’도 없었다. 대구에서 어렵게 자영업을 이어오다 일을 쉬던 A씨에게 전세금 8400만원은 전 재산이었다. A씨는 전세금을 한 푼도 돌려받을 수 없다는 걸 알게 된 뒤부터 “두 발로 뛰어다니며 살아가보려고 발버둥쳤다”라고 했다. 3월27일 A씨는 이런 말을 남기기도 했다. “답답한 마음에 제일 가까운 동사무소부터 찾아갔지만 알아볼 수 있는 게 없었다. 혼자서 국토교통부·전세사기 지원 콜센터·무료 법률상담소·개인 변호사를 찾아가 상담을 했지만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전세금 반환소송을 시작하고, 전세사기 피해자 신청, (임대인 조씨) 고소 조사까지 마쳤다.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상황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두렵고, 숨 조여가는 하루를 살아가는 게 너무 무섭다.”

통과 하루 만에 폐기된 전세사기 특별법

A씨는 살아남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다. 2월부터는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 대구대책위원회(대구 대책위)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신탁 전세사기 피해자이기도 한 정태운 대구 대책위원장은 “대구 대책위에서 활동하는 것, 더군다나 마이크를 잡고 자기 피해를 이야기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라고 말했다.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을 반대하는 정부·여당을 비판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다음 날 동네 지인에게 ‘그런다고 나라가 보상해줘야 하냐’라는 핀잔 섞인 연락을 받는다는 것이다. 반면 다른 지역 사람들은 피해자들에게 ‘2번(국민의힘)을 찍은 대구라면 그래도 싸다’라는 악담을 서슴없이 남겼다.

A씨는 ‘욕먹을 걸 감수하고’ 자신의 문제를 알리기 위해 거리에 섰다. 그러면서 B하우스 피해자를 포함해 임대인 조씨의 피해자들을 찾아다녔다. 대구 대책위를 찾아온 피해자들을 위로하고 전세사기 피해자 신청과 임차권 등기명령 신청은 어떻게 하면 되는지 등 정보를 나눴다. 다른 피해자들이 A씨가 겪은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정태운 위원장은 “너무 씩씩하고 똑똑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더 A씨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힘들다”라고 말했다.

5월24일 부산역 광장에서 열린 영남지역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촉구 집회에서 정태운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 대구대책위원회 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시사IN 조남진

B하우스의 다른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임대인 조씨의 괴롭힘을 폭로했다. B하우스 한 거주자는 “임대인 조씨는 선순위 보증금 (총액) 기망, 깡통 전세로도 부족해 본인의 상황이 나빠질 걸 예측하고 1월부터는 갖가지 핑계를 대며 임차인을 안심시키고 희망고문을 이어나갔다. 임대인은 4월9일 경매 개시 통지를 받았는데도 마구잡이로 인터넷, 수도 등을 끊으며 월세와 관리비 납부를 종용하고 협박했다”라고 말했다. 대구남부경찰서 관계자는 “해당 부분을 파악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대구 대책위에 따르면, A씨가 사망한 당일에도 조씨는 전세금은 돌려주지 않은 채 A씨에게 외려 관리비를 요구하며 인터넷 연결을 끊었다.

A씨는 생전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 통과를 기다렸다. “경·공매 절차 시 우리는 손쓸 수 없이 빚더미에 쌓여 모든 걸 잃게 된다. 전세사기 특별법의 ‘선구제 후회수’가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는 실질적 지원책이 될 것이다.” 개정안에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등이 전세사기 피해 주택의 보증금 반환채권을 사들인 뒤 전세금 일부(30% 수준)를 우선 돌려주는 ‘선구제’ 방안과, 채권 매입 기관의 선순위 채권 매입을 통한 다가구주택 경매 절차 연기 등의 방안이 담겼다.

5월18일 대구에서 열린 A씨 추모제에 참석한 김태근 변호사(주택세입자 법률지원센터 세입자114 운영위원장)는 “선구제를 받기 위해 전세금 채권을 매각하면 ‘우선매수권(경매 절차 중단 후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전세사기 피해 주택을 구입)’과 매입임대주택 입주권을 행사할 수 없다. 개정안은 최우선 변제금조차 받지 못하면서 피해 주택에 우선매수권을 행사하거나 매입임대주택에 입주할 수 없는 다가구주택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최후의 수단으로 선택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주장했다.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은 5월29일 국민의힘 의원들이 불참한 가운데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이튿날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재의 요구)을 행사해 자동 폐기됐다.

이번에는 대구였지만 다음엔 또 어디일지

5월28일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국회 본회의가 열리기 전 전세사기 특별법 통과를 요구하고 있다. . ⓒ시사IN 신선영

개정안 본회의 통과를 이틀 앞둔 5월27일, 정부는 ‘전세사기 피해자 주거안정 지원 강화방안’을 발표했다. 다가구주택의 경우, 피해자 전원의 동의를 받아 LH가 경매에 참여해 집을 사고 여기서 발생한 경매 차익(LH 감정가-LH 경매 낙찰가)을 피해액 비율대로 배분해 지원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김태근 변호사는 “일부 진전된 안이지만, 경매 차익을 축소하려는 우려가 있어 (피해 주택을) LH 감정가로 평가하는 건 부적절하다. 법원 감정가로 평가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언론에 알려진 사례만 따지면, 전체 전세사기 관련 사망자 가운데 ‘다가구주택’ 피해자는 A씨가 두 번째다. 첫 사례는 지난해 6월30일 대전에서 숨진 다가구주택 전세사기 피해자 C씨(50)다. 차량에서 숨진 채 발견된 그는 사망한 당일 아침 다른 세입자들에게 “돈(전세보증금 8000만원) 받기는 틀렸다”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A씨나 C씨 외에도, 언론에 알려지지 않은 비극은 더 있다. 대전 전세사기 피해자 대책위원회(대전 대책위)에 따르면, 대전에서 유가족의 반대로 아직 알리지 못한 다가구주택 전세사기 희생자의 죽음이 세 건 더 있다. 1월에 한 명, 3월에 두 명이 전세사기 피해를 당한 뒤 사망했다. 모두 20~30대 청년이다. 이미 알려진 사망자 수를 모두 합하면, 지난해 2월(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자 사망) 이후 최소 11명 이상이 전세사기 때문에 목숨을 잃었다.

최근에는 대구였지만 내일은 또 어디일지 모른다. 대전에서 전세사기 피해자 대책위원회를 이끄는 장선훈 위원장은 위기를 온몸으로 느낀다. “매일 새로운 피해자가 발생하고 있다. 우리 지역만 해도 한 달 평균 70~100명이 대책위를 찾는다.” 대전시가 5월13일까지 파악한 지역 내 전세사기 피해자는 모두 2191명(대전 대책위 집계 기준 3437명)이다. 그중 96%가 다가구주택 피해자다. 장 위원장은 “정부안이 실효성 있게 집행되려면 세부안을 가다듬는 과정에 반드시 피해자를 만나야 한다. 피해자들이 정부 대책에 납득할 수 있도록 피해자와 만나는 자리가 꼭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요구했다.

이은기 기자 yieu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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