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후유증 앓는 지방의료원…“직원들 생계 걱정할 상황”

천호성 기자 2024. 6. 12.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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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병 전문병원 지정 뒤 일반 환자 떠나
지방의료원 80%, 연내 보유 현금 바닥 전망
지자체는 “예산 없다” 국비 지원도 거절
안승준 목포시의료원 제1정형외과장이 지난 3일 진료실에서 환자를 보고 있다. 이 병원 정형외과는 매일 100명 이상의 외래 환자로 붐빈다. 천호성 기자 rieux@hani.co.kr
윤석열 정부의 ‘의료개혁’은 약 1500명 규모의 의대 정원 확대로 첫 삽을 떴다. 의-정 갈등은 여전하지만, 공공성에 기반한 지역·필수 의료체계의 정상화는 더 미룰 수 없는 과제다. 한겨레는 정부 주도의 ‘의료개혁’이 놓치고 있는 공공 의료와 지역 의료, 의사 양성 등의 현실과 대안을 살펴본다.

지난 3일 전남 목포시의료원의 진료·수납 창구 앞은 낮 1시께부터 오후 진료 신청을 하려는 20여명의 환자들로 북적였다. 환자들은 목포는 물론 종합병원이 없는 신안군 등에서 여객선을 타고 찾아왔다.

‘인기 진료과목’은 정형외과와 비뇨의학과. 두명의 정형외과 전문의는 이날만 모두 100여명의 외래환자를 봤다. 방광염·전립샘비대증 수술을 전문으로 하는 비뇨의학센터에도 환자들 걸음이 끊이지 않았다. 안승준 정형외과장은 “20여년 전부터 인공관절 수술 등을 많이 해와 ‘수술 잘하는 병원’으로 입소문을 타왔다. 시민들이 믿고 찾아온다”고 전했다.

그러나 지방의료원 중 환자 많기로 손꼽히는 이곳도 지난해부터 매달 2억원 이상 적자다. 코로나19 유행 때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지정돼 입원·예약 환자들을 돌려보낸 여파다. 여전히 환자들이 찾지만, 과거만 못하다. 병상 가동률이 올해 4월 65%로, 2019년 월평균 90%대와 큰 차이가 있다. 손익분기점을 맞추려면 80%는 돼야 한다. 올해 배정된 정부 지원금 13억원도 절반을 부담할 목포시가 예산이 없다며 거부해 받을 수 없는 처지다.

5곳 중 4곳은 올해 ‘현금 소진’

11일 각 지방의료원과 지방자치단체 추계를 종합하면, 전국 35개 지방의료원 가운데 28곳(80%)이 올해 안에 유보금이 소진될 전망이다. 상반기에 보유 현금이 바닥나는 곳만도 절반인 17곳(49%)이다. 31곳은 광역지자체(시·도)가, 4곳은 기초지자체(시·군)가 운영한다. 보건의료 위기 때마다 지역의료 ‘방파제’였던 지방의료원 상당수가 폐원 위기다.

이미 일부 의료원은 직원 월급을 제때 주지 못하고 있다. 강원 속초의료원은 지난 3월 의사를 제외한 직원 급여 일부가 체불된 데 이어, 4월엔 모든 정규직 직원 기본급의 40%가 밀렸다. 충남 천안의료원은 이달부터 의사·간호사 이외 직원에게 기본급의 50%만 지급하겠다고 노동조합에 통보한 상태다. 이 병원은 지난 4월 8억여원 적자를 냈다.

정민경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 천안의료원 지부장은 “지난해 하반기에 이미 유동성 위기가 닥쳐 의료원이 시중은행에서 30억원을 차입해 직원 급여를 지급했다”며 “이달부터는 의료원 직원 385명이 생계를 걱정해야 할 상황”이라고 말했다.

의료원들이 꼽는 적자 원인은 ‘코로나 후유증’이다. 전국 지방의료원 연합회에 따르면 지난 4월 전국 지방의료원의 입원 병상 가동률은 57%로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12월 27개 의료원(2019년 설립된 성남시의료원 등 8곳 제외) 평균(79%)보다 22%포인트 낮았다. 코로나19 유행 초기 민간 병원 등이 감염병 환자 수용을 꺼리자 정부는 지방의료원 등 공공병원을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지정해 일반 병상을 비우게 했다. 2020년 상반기 감염병 전담병원 67곳 중 55곳이 공공병원이었다. 이때 전원된 환자들은 입원 병원을 다시 옮기거나 진료 기록을 이전하는 불편함 때문에 코로나19 이후에도 대부분 돌아오지 않았다는 게 지방의료원들 설명이다. 다만, 최근 전공의(인턴·레지던트) 집단행동은 이들이 적은 지방의료원엔 큰 영향은 없었다.

정부 ‘쥐꼬리’ 지원마저 지자체가 거절

지난해 보건의료노조와 지방의료원들은 3500억원의 손실을 예상하고, 정부 예산 심의 과정에서 보상을 요구했다. 보건복지부도 이를 반영하려고 했지만, 기획재정부 반대로 무산됐다. 이후 국회 예산 심의에서 513억원의 지방의료원 경영혁신 지원사업비가 편성돼, 차등 지급됐다.

복지부는 각 의료원이 제출한 ‘경영혁신 계획’을 심사해 에이(A)~디(D) 등급에 따라 지난달 지방의료원마다 11억~32억원의 지원금을 지급했다. 재정 여력이 좋고 지자체 지원이 많은 곳일수록 다양한 경영 개선안을 제시해 지원금을 많이 받고, 어려운 곳이 적게 받는 경우도 있었다. 더구나 국비만큼 지방비도 투입한다는 조건은 지원금을 더 쪼그라트렸다. 목포시는 국비 6억5천만원을 지방비 부족을 이유로 포기했다. 또 충남·강원도는 각 37억원, 34억원을 배정받아 지방의료원에 보냈지만, 지방비는 추가경정예산 편성 등을 이유로 지급을 미루고 있다.

상당수 지방의료원은 폐원을 피하려 스스로 해결책을 찾고 있다. 목포시의료원은 2022년부터 3년째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연가 보상비를 반납하고 있다. 장애인·고령자를 위한 출입구 경사면 설치와 병동 에어컨 교체 등 시설개선 계획도 모두 미뤘다. 목포시의료원 관계자는 “지방의료원이 외부 도움 없이 버티려면 적극적인 시설 투자로 코로나 이전만큼의 환자를 확보해야 한다. 하지만 그럴 여력이 없어 환자 숫자 회복도 더뎌지는 악순환”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익명을 요청한 수도권의 한 지방의료원장도 “정부가 보건의료 위기 때만 공공병원을 찾고 급한 일이 지나면 보상 없이 토사구팽하는 일이 반복된다. ‘다음 감염병 위기 땐 병상을 내어주지 않겠다’는 원장들이 많다”고 전했다.

의료 현장에선 정부와 지자체가 지방의료원 붕괴에 손 놓아선 안 된다는 촉구가 이어진다. 정부 구상처럼 환자가 자기 지역에서 진단부터 수술·회복까지 완결된 치료를 받게 하려면, 지역 의료의 ‘허리’ 역할인 지방의료원에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영완 충남 서산의료원장은 “충분한 진료 역량을 갖춘 지방의료원은 환자의 ‘서울 쏠림’을 막는 방파제가 된다. 지방의료원이 지역 의료전달체계 정상화에 중요한 역할을 할수 있다”고 짚었다.

천호성 기자 rieux@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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