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복지공단 '기금형' 퇴직연금 모든 근로자에 문호개방해야"
(서울=연합뉴스) 서한기 기자 = 상시 근로자 30인 이하 중소기업 사업장으로 한정된 현행 '중소기업 퇴직연금 기금'(푸른씨앗)의 가입 제한을 없애고 가입을 원하는 모든 근로자에게 문호를 개방해야 한다는 전문가의 제안이 나와 실현될지 관심을 끈다.
고려대 고령사회연구원 원장을 맡고 있는 김태일 행정학과 교수는 최근 펴낸 '불편한 연금책'이란 저서에서 "중소기업퇴직연금기금에 중소기업 근로자는 물론 누구든 원하면 가입할 수 있도록 하자"는 의견을 내놓았다.
'푸른씨앗'은 근로복지공단이 퇴직연금 가입률이 낮은 30인 이하 중소기업 근로자의 노후 준비를 위해 2022년 9월부터 운영하는 공적 퇴직연금 기금이다.
사용자와 근로자가 납입한 부담금으로 공동의 기금을 조성, 운영해 근로자에게 퇴직 급여를 지급하는 구조이다. 국내 퇴직연금 유형 중에서 유일하게 '기금형' 제도에 해당한다.
2022년 기준 30인 미만 사업장의 퇴직연금 도입률은 23.7%로, 100인 이상 사업장(88.5%)에 비해 매우 저조한 상황이다.
김 교수에 따르면 퇴직연금 적립금을 관리, 운용하는 방식에는 크게 두 가지 형태가 있다.
하나는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처럼 투자전문가 집단으로 구성된 별도의 중개 조직이 투자정보가 부족한 가입자(회사 또는 근로자 본인)를 대신해서 적립금을 관리하면서 집합적으로 투자하거나 퇴직연금 사업자(민간 금융기관)를 상대하는 '기금형'이다.
기금형은 공공기관이든 민간기관이든 대형 중개 조직이 가입자의 적립금을 모아서 기금을 만들고, 이를 가입자의 이익을 위해 운영하는 형태이다.
정보 비대칭에 따른 가입자의 투자정보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뿐더러, 규모의 경제 이익을 실현해 투자 수익률을 높일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다른 하나는 중개 조직을 거치지 않고 가입자가 민간 금융기관인 퇴직연금 사업자와 직접 계약을 맺고 스스로 투자 상품을 선택해서 운용하는 '계약형'이다.
퇴직연금이 발달한 대부분 서구 국가는 기금형만 있거나 기금형과 계약형을 둘 다 가지고 있고, 둘 다 있는 경우에도 기금형이 압도적으로 많다.
우리나라 퇴직연금은 계약형으로, 기금형과 달리 가입자가 각자 알아서 적립금을 운용해야 한다.
문제는 우리나라 퇴직연금이 가입 여부가 자유로운 사적연금이 아니라, 강제로 보험료를 내야 하는 법적 연금이라는 사실이다.
우리나라처럼 일반 근로자를 대상으로 사실상 '준(準) 공적연금'을 운영하면서 기금형이 없는 국가는 극히 드물다.
정부가 일반 근로자에게 퇴직연금에 가입하도록 강제하면서 그다음은 모르는 체하고 민간에 맡겨두고 적립금 투자관리를 방치하는 셈이다.
개인 투자에 자신이 있는 일부 극소수를 제외하고 대다수 근로자는 투자 정보가 부족하다.
그러니 투자전문가가 가입자를 대리해서 적립금을 관리, 운용하는 기금형이 계약형보다 투자실적이 더 좋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 계약형을 채택한 우리나라 퇴직연금 수익률은 형편없다. 2019년부터 2021년까지 5년간 연평균 수익률은 2% 미만에 불과할 정도로 극히 저조했다. 물가상승률조차 따라가지 못할 만큼 낮았다.
이에 반해 이 기간 기금형인 국민연금의 연평균 수익률은 7%가 넘었다.
미국, 캐나다, 호주, 스웨덴 등 기금형으로 운영되는 서구 국가의 퇴직연금 수익률도 7% 안팎으로 높다.
역시 기금형 제도인 푸른씨앗의 운용 수익률도 2023년 6.97%로 상당히 높은 편이다.
푸른씨앗은 근로복지공단이 주관하지만, 실제 기금 운용 자체는 미래에셋증권과 삼성자산운용 등 전담 운용기관이 맡고 있다.
근로복지공단은 "기존 퇴직연금은 원리금 보장상품으로 주로 운용돼 수익률을 높이는 데 한계가 있었지만, 푸른씨앗은 개별 기업의 부담금을 기금화해 규모의 경제를 추구하면서 안정적 포트폴리오를 구성해 비교적 우수한 수익률을 실현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푸른씨앗이라는 기금형 제도 도입으로 퇴직연금 전환이 활성화되고 동시에 수익률도 높일 수 있다면 좋은 일"이라며 "이처럼 수익률 높이는데 효과적인 기금형 제도 가입을 중소기업으로 제한할 이유가 없는 만큼 모든 가입자가 가입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sh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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