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 보관·관리 ‘수탁’ 시장 커지는데… 신규 진입 막는 금융당국
7월 가상자산법 시행으로 시장 확대 예상
가상자산 수탁 시장, KODA·KDAC이 독점
금융 당국의 ‘늑장 수리’로 신규 가상자산 수탁(커스터디)사들이 시장 진입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전해졌다. 7월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의 시행으로 수탁 시장이 커질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이미 시장을 선점한 일부 사업자의 독점 구조가 굳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커스터디 서비스는 고객을 대신해 가상자산을 보관·관리해 주는 것으로 수탁사는 은행과 같은 역할을 한다. 실제 해외에서는 골드만삭스 같은 대형은행이 직접 커스터디 서비스를 제공한다.
12일 가상자산업계에 따르면 DSRV랩스와 해피블록, 웨이브릿지, 블로세이프, 블록오디세이, 비댁스 등 6곳의 수탁사가 금융위원회에 신규 가상자산 사업자(VASP) 신고 서류를 접수했지만, 3개월이 넘도록 수리가 되지 않고 있다.
가상자산 스테이킹(코인을 맡기고 보상을 지급하는 것) 업체인 DSRV랩스의 경우 이미 지난해 10월 VASP 신고 서류를 냈지만, 아직 금융위로부터 영업을 시작해도 된다는 회신을 받지 못 했다. 해피블록과 웨이브릿지도 지난해 금융위에 사업자 신청을 낸 후 지금껏 대기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행 ‘특정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이하 특금법)’은 가상자산 거래소와 수탁사는 금융 당국에 VASP 서류를 접수해 수리가 돼야 사업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VASP는 신고제로 운영되지만, 당국이 수리를 미룰 경우 신규 사업자는 마냥 기다릴 수밖에 없다.
세계 최대 가상자산 거래소인 바이낸스도 지난해 초 고팍스를 인수해 국내 시장 진출을 시도했지만, 1년 넘게 금융 당국이 VASP 변경 신고를 수리하지 않아 영업을 못 하고 있다.
최근 여러 가상자산 업체들이 수탁 사업에 뛰어든 것은 오는 7월 19일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 시행으로 시장 규모가 빠르게 확대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이 법의 7조 ‘가상자산의 보관’ 항목에 따르면 가상자산 사업자는 자신의 자산과 이용자의 자산을 분리해 보관해야 한다. 사업자는 이용자의 가상자산을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보안 기준을 충족하는 기관에 위탁해 보관하도록 규정한다. 이에 따라 법 시행 이후 기업의 가상자산 수탁 수요가 급증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게다가 앞으로 국내에서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의 발행과 거래가 이뤄질 경우 가상자산 수탁 수요는 훨씬 커질 것으로 점쳐진다. 올해 초 비트코인 현물 ETF가 승인된 미국에서는 골드만삭스와 피델리티 등 대형 투자은행(IB)이 수탁 자회사를 운영 중이다. 대형 가상자산 거래소인 코인베이스도 계열 수탁사인 코인베이스 커스터디를 두고 있다.
문제는 금융 당국의 벽에 막혀 신규 수탁 사업자의 진입이 늦어질 경우 거래소와 같이 수탁 시장도 일부 업체가 독점하는 구조로 갈 가능성이 커진다는 점이다. 가상자산 거래소 시장의 경우 두나무와 빗썸이 95% 넘는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현재 국내 가상자산 수탁 시장은 ‘코다’로 불리는 한국디지털에셋(KODA)과 ‘케이닥’으로 지칭되는 한국디지털자산수탁(KDAC)이 양분하고 있다. 여기에 지난해 5월 새로운 수탁사인 인피닛블록이 VASP 수리로 시장에 진입한 상황이다.
사업 규모가 가장 큰 회사는 코다로 지난 2월 수탁고가 8조원을 돌파했다. 코다는 지난 2020년 KB국민은행과 블록체인 투자사인 해시드가 공동으로 설립한 수탁사다. 신한은행과 코빗이 투자한 케이닥은 지난달 경쟁 수탁업체인 카르도를 합병했지만, 수탁 규모는 코다에 비해 훨씬 적다. 금융정보분석원(FIU)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기준 케이닥과 카르도의 합산 수탁고는 6000억원 수준이었다.
가상자산업계 관계자는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 시행 후 수탁 시장이 커져도 대부분의 수요는 이미 수년에 걸쳐 블록체인 기술과 수탁 노하우를 쌓은 업체들에 집중될 가능성이 크다”면서 “금융 당국의 VASP 늑장 승인이 기존 사업자에 대한 특혜 논란으로 불거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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