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띄우지 마세요, 건방져져"…'백발의 900승 명장' 왜 팬들 향해 90도 인사했을까
[스포티비뉴스=잠실, 김민경 기자] "나만 자꾸 띄워주지 마시고, 내가 건방져져서 갈 길을 잃어버리니까. 진짜 우리 한화 구단과 스태프, 선수단, 또 우리 팬들 좀 잘 좀 부탁드립니다."
김경문 한화 이글스 감독은 11일 잠실 두산 베어스전에서 6-1 완승을 거두면서 개인 통산 900승을 달성했다. 한화 지휘봉을 잡은 지 7경기(4승2패1무) 만이었다. KBO 역대 900승 고지를 밟은 6번째 감독이다. 김응용(1554승), 김성근(1388승), 김인식(978승), 김재박(936승), 강병철(914승) 감독 등 5명 먼저 900승 금자탑을 쌓았다. 한화는 김응용, 김성근, 김인식, 김경문 감독까지 900승 이상을 거둔 백전노장 4명을 품은 구단으로 역사를 썼다. 한화 팬들은 승리 후 모자를 벗으며 관중석에 인사하는 백발 노장 김경문 감독의 이름을 큰 소리로 외치며 열광했다. 김 감독은 90도로 숙여 팬들에게 인사하며 환호해 보답했다.
김 감독은 2004년 두산 사령탑으로 데뷔해 2011년 6월까지 정규시즌 960경기에서 512승(432패16무)을 기록했다. 2011년 8월에는 NC 초대 감독으로 선임됐고, NC가 1군에 진입한 2013년부터 2018년 6월까지 740경기에서 384승(342패14무)을 거뒀다. 통산 1700경기 성적은 896승774패30무였다.
김 감독은 지난 2일 한화 제14대 사령탑으로 선임되면서 900승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한화가 나이 40~50대 젊은 감독을 선호하는 KBO리그 트렌드에 역행하는 선택을 했지만, 현역 감독 가운데 유일하게 900승 사령탑을 보유한 팀이 됐다.
김 감독은 왜 '백전노장'이라는 말이 있는지 증명하듯 한화를 이끌고 있다. 일주일여 만에 팀을 완벽히 파악했다고 말하면 거짓말이겠지만, 팀 분위기를 빠르게 수습하고 이기는 경기를 할 수 있도록 끌고 가는 것은 분명하다. 김 감독은 한화가 지난 4일부터 6일까지 수원에서 치른 kt 위즈와 3연전에서 3연승을 달리며 단숨에 899승까지 달성했고, 7일부터 9일까지 대전 홈에서 열린 NC와 3연전에서 2패1무에 그치며 900승 달성이 자꾸 미뤄졌으나 4경기 만에 값진 1승을 챙겼다.
현역 감독으로 커리어를 이어 갈 수 있도록 발판을 마련해 준 한화 구단에 감사를 표했다. 김 감독은 "구단에서 나를 써주기로 결정해서 (6년 만에) 다시 현장에 돌아올 수 있었다. 내가 900승에 대한 생각을 못하고 있을 때 한화에서 이렇게 나를 믿고 부름을 주셨기 때문에 이런 승부도 하게 된 것이다. 정말 고맙다"고 900승 소감을 밝혔다.
이어 "두산이랑 싸우고 있는데, 두산은 처음 내가 감독을 했던 구단이다. 두산에서도 나를 믿고 이렇게 (900승을 할 수 있는) 그런 발판이 돼서 내가 지금까지도 감독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고 보니 선수들이 고맙다. 우리 스태프들도 그렇고, 뒤에 정말 고마운 사람들이 너무 많다. 나 혼자 이룰 수 있는 게 아니기에 정말 그들에게 고마워해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김 감독은 900승보다 이날 1승에 무게를 두고 있었다. 지난 주말 홈구장에서 단 1승도 거두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마음에 걸렸던 것. 김 감독이 부임하고 원정에서는 이날까지 4연승을 달리면서 팬들은 홈경기 무승의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다. 김 감독은 홈경기에서 팬들에게 승리를 안기지 못한 부채를 털면서 변함없는 응원을 보내는 한화 팬들에게 사과와 감사의 의미로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김 감독은 "선수들이 (900승을 생각해서) 많이 부담스러워했다. 그저께 일요일 경기 내용도 그렇고 그래서 내심 '아 첫 경기는 조금 잘 풀었으면 좋겠다 그랬는데, 내 기록은 또 그렇다 치더라도 첫 경기를 이렇게 승리를 하게 돼서 선수들한테도 팬들한테도 굉장히 고맙다"고 했다.
이어 "홈에서 경기가 잘 안됐다. 패하고, 패하고, 그다음 날 비기는데 그 경기가 굉장히 힘들더라. 1승 생각만 났다. 1승이 어떤 때 보면 쉽게 될 때도 있지만, 1승이 굉장히 귀중해서 감독이 배울 때도 있는 것 같다. 지금 도 우리 중요한 외국인 타자(요나단 페라자)가 빠진 가운데 선수들이 열심히 해서 이긴 것이라서 나는 감독으로서 우리 선수들이 잘해서 기쁘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승리의 발판을 마련한 새 외국인 투수 하이메 바리아의 호투를 칭찬했다. 6이닝 79구 3피안타 1사사구 2탈삼진 1실점으로 호투하면서 퀄리티스타트를 기록했다. 슬라이더(40개)를 적극적으로 던지면서 직구(37개), 커터(1개), 체인지업(1개)을 섞어 던졌다. 직구 최고 구속은 153㎞, 평균 구속은 149㎞로 형성됐다. 79구 가운데 스트라이크가 52개에 이를 정도로 공격적인 투구를 펼쳤고, 두산 타자들은 끝내 바리아를 무너뜨리지 못했다.
김 감독은 "바리아의 호투가 승리의 발판이다. 선발이 상대한테 처음 던지면서 그렇게 6회까지 던져주니까. 우리는 정말 고마울 뿐이다. 본인이 6회까지만 던진다는 것을 결정하고 이제 경기를 마쳤다. 굉장히 고마워해야 한다. 오늘(11일) 첫 경기부터 또 밀리면 내일도 두산이 타격이 좋으니까. 조금 불안하고 그런데, 첫 경기를 아무래도 이렇게 이기게 돼서 나도 조금 마음이 홀가분한 것 같다"며 바리아를 크게 칭찬했다.
바리아는 통역을 통해 김 감독에게 "900승을 축하드린다"는 인사를 직접 하기도 했고, 김 감독은 호투에 감사를 표한 뒤 활짝 미소를 지으며 화답했다.
한화 타선은 장단 11안타를 몰아치면서 연패 탈출을 노래했다. 두산 선발투수는 5월 MVP를 차지한 곽빈이었는데, 5⅓이닝 99구 8피안타 3사사구 4탈삼진 6실점을 기록하면서 시즌 5패(5승)째를 떠안았다. 지난 4월 6일 롯데전(5이닝 6실점)과 올 시즌 최다 실점 타이기록이었다.
4번타자 노시환이 5타수 2안타 1득점으로 활약했고, 2번타자로 나선 장진혁이 4타수 1안타 2타점을 기록했다. 채은성과 최재훈, 이도윤도 1타점씩 보태면서 승리에 기여했다. 교체 출전한 포수 이재원도 2타수 2안타를 기록하면서 타선에 불을 붙였다.
김 감독은 "상대(곽빈)가 쉽게 칠 공이 아니었는데, 집중해서 잘 쳐줬다. 잘 친 타자를 떠나서 우리 고참 선수들이 먼저 솔선수범해서 지금 좋은 팀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냥 박수 많이 치고, 더그아웃에서 한 경기 한 경기 파이팅을 많이 하고 있다"고 밝혔다.
900승 달성 기념 인터뷰가 진행되는 내내 김 감독이 반복한 말이 있다. "우리 한화 선수들과 스태프들도 칭찬을 많이 해달라"라는 것. 팀 승리의 공이 모두 감독에게 돌아가고, 감독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는 상황에서 승리를 위해 전력을 다한 선수들에게 시선이 돌아가길 바랐다.
김 감독은 "900승 이거는 진짜, 나만 자꾸 띄어주지 마시고, 내가 건방져져서 갈 길을 잃어버리니까. 진짜 우리 한화 구단과 스태프, 선수단, 또 우리 팬들 좀 잘 좀 부탁드린다"며 한번 더 고개를 숙였다.
한화는 12일 현재 시즌 성적 28승34패2무 승률 0.452로 7위에 올라 있다. 6위 NC 다이노스와 2.5경기차, 5위 SSG 랜더스와는 4경기차로 벌어져 있는 만큼 계속 1승씩 더해 나가는 게 중요하다. 한화는 12일 에이스 류현진을 앞세워 2연승에 도전하고, 두산은 브랜든 와델을 선발투수로 내세웠다.
김 감독은 "이제 900승은 빨리 잊고, 내일(12일) 또 류현진이 던지니까. 그 준비를 좀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한화에 더 많은 승리를 안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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