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혁조의 만사소통] 헌 옷을 산다는 것

관리자 2024. 6. 12.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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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자꾸 묻는다.

그 옷 얼마 줬냐고.

가만히 보니 누가 입다가 만 그런 헌 옷들이었다.

"김 교수 그 검은 가죽 재킷 멋지네." "네? 에이 형 옷이 더 좋네요." 그 선배는 명품 갈색 가죽 잠바를 입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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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혁조의 만사소통] 지인들에게 칭찬받는 평소 의복
실은 몇 천원에 살 수 있는 헌옷
새옷서 찾기 힘든 ‘빈티지’ 감성
점차 즐겨찾게 되는 재활용매장
중고품 사용하며 근검절약 실천
탄소배출 줄이고 지구건강 지켜

누가 자꾸 묻는다. 그 옷 얼마 줬냐고. 난 함구한다. 대단한 영업비밀인 양. 아마 옷값을 알면 기절초풍할 것이다.

또 묻는다. 그래서 내가 거꾸로 물어본다. 얼마일 것 같냐고. 돌아온 대답은, “5만∼6만원.” 와 그렇게 비싸 보이나? 속으로 만세를 외친다.

장면 1. 전철역 안. 저녁 약속이 생각보다 일찍 끝났다. 역 안을 어슬렁거린다. 아내가 좋아하는 빵을 사기 위해서다. 어? 그런데 딴 데로 눈길이 쏠린다. ‘절대 묻지 마세요. 무조건 4900원’ 떡 하니 써 붙여 놓은 대문짝만 한 가격표. 아니 뭔 옷인데 저렇게 저렴할까? 옷 가게로 발길을 옮겼다. 온갖 옷들이 즐비하다. 가만히 보니 누가 입다가 만 그런 헌 옷들이었다. 그중에서 셔츠 하나를 골랐다. 무척 맘에 든다. 득템한 것이다.

장면 2. 학교 근처 식당. 동료 교수들과 점심을 한다. “그 셔츠 좋아 보이네요. 얼마 줬어요?” 어느 교수의 질문에 망설인다. “에이 말해봐요. 저도 하나 사 입게.” 또 망설인다. 가격을 알면 놀라 자빠질 것이다. 또 5000원짜릴 사 입는다고 하면 속으로 비웃을지도 모른다. “그래요. 말해봐요.” 옆에 교수도 거든다. 에라, 모르겠다. “4900원 줬어요.” “네에?” 다들 당황한 표정이다. 곧바로 질문이 날아온다. “어디서 샀어요?” “저도 좀 가르쳐줘요.” “와 대박, 저렇게 멋진 게 단돈 5000원이라니.” 모두들 난리가 났다. 의외의 반응이었다. 그 기세에 신이 나서 “그 매장은요…” 거품을 물고 설명했다. 점심은 당연히 못 먹었다.

장면 3. 어느 날 저녁 먹자골목. 2차 맥줏집을 찾고 있었다. 같이 가던 고교 선배가 내 옷을 탐낸다. “김 교수 그 검은 가죽 재킷 멋지네.” “네? 에이 형 옷이 더 좋네요.” 그 선배는 명품 갈색 가죽 잠바를 입고 있었다. 고급진 색깔에 평소 갖고 싶었던 스타일이었다. 가격도 엄청 비쌀 것 같았다. 내가 더 탐났다. “김 교수 옷 바꿀까?” 앗, 웬 횡재? 그래도 표정 관리에 들어갔다. “형, 제 옷은 색깔도 벗겨지고 누추합니다.” “그게 바로 빈티지야. 듬성듬성 색 바랜 게 더 멋있어.” “아, 예에.” 못 이기는 척하고 바꿔 입었다. 그런데 이렇게 해도 되나? 내 옷은 중고숍에서 오만원 줬는데.

언제부턴가 재활용매장을 찾곤 한다. 처음에는 남이 입던 옷이라 좀 찜찜할 것 같았다. 그런데 입고 다녀보니 새 옷이 줄 수 없는 뭔가를 준다. 때 지난 레트로 감성도 있고, 잘 길들여졌다고 해야 하나. 새 옷의 빳빳한 느낌 대신 부드럽고 편안한 느낌 말이다.

그리고 은행 잔고가 자꾸 불어난다. 생각만 해도 배가 부르다. 커피 한잔 값으로 맘에 드는 옷을 사 입을 수 있다는 게 여간 고마운 것이 아니다.

그것보다 더한 것은 지구 건강을 위해 한몫하고 있다는 생각에 괜히 뿌듯해지는 것이다.

지구가 아프다. 지진이며 홍수며 자연재해가 발생하는 것도 기후 이상 때문이다. 이게 다 탄소배출에 따른 지구온난화 현상에 기인한단다. 헌 옷 하나 사 입으면 새 옷 하나 만들 때 나오는 탄소를 줄일 수 있다.

우리 아들딸들이 건강한 지구와 행복하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 헌 옷을 사고 중고물품을 구매하면서 지구에 말을 걸어본다. 건강해지라고.

지구의 건강은 곧 나의 건강, 우리 인간들의 건강과도 같다. 지구 건강에 말을 걸어보자. 그리고 지구를 보살피자.

아직도 그 형은 검은 가죽 재킷 옷값을 모른다. 히히.

김혁조 강원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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