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유일인데, 헌법소원까지…명지대 바둑학과, 사활 건 ‘몸부림’
학교측, 내년부터 해당학과 신입생 모집 중지
바둑중·고교, 향후 진학 경로 ‘불투명’
당장, 내년 입시 수험생 갈 곳 잃어…’발동동’
“비대위(비상대책위원회)까지 구성해서 움직이고 있지만, 솔직히 어렵습니다.”
지푸라기조차 잡기 어려운 형편이라고 했다. 학생 신분으로 학교를 상대해야 하는 데다, 주어진 시간도 촉박했다. 기대했던 1차 법정소송 결과 또한 불리하게 나온 영향 역시 컸다. 김한결 명지대 바둑학과 학생회장이 11일 “말 그대로 사면초가다”라며 전한 학과내 분위기였다. 그는 “4월초부터 바둑학과 폐과 반대와 관련된 탄원서를 작성하면서 비대위 활동이 시작됐다”면서도 “바둑계 선·후배들에게 도움을 받고 있지만 힘든 게 사실이다”고 토로했다.
세계 유일의 반상(盤上) 상아탑으로 주목됐던 명지대 바둑학과가 벼랑 끝까지 내몰리고 있다. 이미 대학 차원에선 폐과 수순에 돌입한 가운데 이를 되돌릴만한 묘수 찾기가 쉽지 않아서다. 희망을 걸었던 법정 다툼 역시 회의적으로 흘러가는 모양새다.
11일 바둑계 등에 따르면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는 남치형·다니엘라 트링스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와 학과 재학생, 한국바둑고 재학생 등 69명이 명지학원과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를 상대로 낸 대학 입학전형 시행계획 효력정지 가처분에 대해 지난달 31일 기각했다. 명지학원은 명지대 및 명지전문대, 명지초·중·고를 운영하는 사학재단이다.
지난 2022년부터 경영악화 등을 이유로 명지전문대와 통합 수순에 착수한 명지대의 학사구조 전면 개편안엔 바둑학과 폐과가 포함됐다. 이어 올해 4월엔 내년부터 바둑학과 신입생 모집을 중지한다는 내용의 학칙 개정이 공포됐고, 대교협에선 명지대의 이런 대학 입학전형 시행계획 변경을 승인했다. 이에 남 교수 등은 명지학원의 학칙 개정과 대교협의 승인 과정이 절차·실체적으로 문제가 있다며 법원에 효력 정지를 구했지만 불허됐다.
학교측, 전문성 강한 바둑학과 4년제 종합대학서 유지하긴 부담
명지대측에선 법원의 이번 결정에 대해 당연하단 분위기다. 학내에서 주관적으로 정한 결정도 아니고 외부 컨설팅 업체(삼일회계법인)의 진단에 의거한 객관적인 판단이어서 문제될 게 없단 기류다. 명지대측에선 특히 국내 바둑의 현주소를 냉철한 시각에서 재평가해야 된단 지적도 빼놓지 않았다. 명지대 관계자는 “바둑 인기가 예전만 못한 것도 사실이고 입학에서도 특정학교(한국바둑고)로 편중된 경향이 있는 것 같다”며 “4년제 일반대학에서 운영하기엔 부담스러운 측면도 있는데, 그래서인지 학내 전체 교수진 가운데서 80% 이상이 바둑학과 폐과에 찬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학과 보다도 전문적인 색채의 바둑학과가 4년제 종합대학을 지향점으로 한 명지대의 이번 학사구조 개편 취지에 걸림돌이 되고 있단 얘기였다. 이 관계자는 이어 “바둑학과에서 낸 가처분 소송이 기각된 데엔 이런 배경들도 포함돼 있다고 보면 될 것 같다”라며 “한마디로 바둑학과 폐과 결정은 명지대의 중장기적인 발전을 위해서 확정한 최적화된 결론이다”고 단언했다.
학과측, 매년 3대 1 경쟁률… K바둑 산파 역할 등도 고려돼야
하지만, 바둑학과측의 생각은 다르다. 우선 1997년 개설 이후, 매년 평균 3대1 가량의 경쟁률을 기록, 학내 경영적인 측면에선 '효자' 학과로 분류된다. 중국과 일본 등에서 몰려든 입학생으로 상승 중인 긍정적인 대학 이미지는 덤이다. 세계 최강으로 올라선 K바둑의 산파 역할도 빼놓을 순 없다. 현재 세계 랭킹 1위인 신진서 9단의 프로 입문 직전 지도 사범인 한종진 현 프로바둑기사협회장과 바둑국가대표팀 코칭스태프인 홍민표 감독도 명지대 바둑학과 출신이다. 바둑의 국위 선양도 고려돼야 한단 시각이다. 지난 ‘2023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선 금, 은, 동메달을 획득했고 이어 벌어졌던 ‘아시안패러게임’에서도 금메달 2개를 수확했다.
특정고교 비중이 높단 관점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반응이다. 김한결 학생회장은 “한국바둑고 출신 합격률은 30% 정도이고 저도 일반고 출신이다”라며 “’그들만의 학과’란 부정적인 시각을 줄이고 바둑 대중화를 위해 서울시내 6개 대학들과 함께 지난달부터 무료 바둑 교육에도 나서고 있다”고 반박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후폭풍 역시 거세다. 한국바둑고교 3학년생들은 “올해 4월30일자로 승인된 ‘명지대 2025학년도 대학입학전형 실시계획의 변경’ 중 바둑학과의 모집단위 폐지를 승인한 부분이 헌법 제31조 제1항 학생의 학교선택권 등 교육권을 침해한다”며 지난 9일 헌법소원까지 제기했다. 한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는 “대학측의 학과 폐과가 확정된다면 현재 바둑중학교와 바둑고교에서 재학중인 1,2,3학년생들의 앞날도 불투명해진다”라며 “얻는 것 보단 잃는 것이 더 많게 될 바둑학과 폐과를 막기 위해서 끝까지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앞서 명지대 바둑학과 폐과 움직임이 알려지자 조훈현, 이창호, 신진서 9단 등을 포함해 중국 바둑 간판스타인 커제 9단까지 반대 서명에 동참한 바 있다.
허재경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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