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숲길] 가족, 서로를 보듬다

김문홍 극작가·부산공연사연구소장 2024. 6. 12.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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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홍 극작가·부산공연사연구소장

결혼한 지 50년 만에 각방을 쓴다. 서로 방을 달리해 잠자다 보니 편하긴 하지만, 허전하기도 하고 아침에 일어나면 서로가 낯설어 보인다. 알게 모르게 스며드는 서로의 온기가 없어서 그럴 것이다. 기능적으로는 편하고 자유로운데 심리적으로는 서로의 체온이 그리워지는 이 관계성의 역설에 속으로 피식 웃는다.

이런 때일수록 자식들을 품 안에서 키운 그때가 그립다. 모두 두 살 터울이라 자주 다투는가 하면, 밥상에 둘러앉으면 한 숟갈이라도 더 먹으려고 눈을 부라리기 일쑤다. 그래도 남처럼 다투다가도 돌아서면 금세 풀리고 만다. 한 핏줄이라는 유전인자 때문에 어려운 일이 있을 때는 서로를 보듬고 다독인다. 그런 자식들이 어느 정도 머리가 크니 결혼을 하거나 더러는 일거리를 찾아 뿔뿔이 흩어져, 이제는 함께 늙어가는 부부만 덜렁 남아 텅 빈 집을 지키고 있다. 이런 파편화된 가족의 모습에 넌덜머리가 나 상상으로나마 대가족의 모습을 복원한다.

낡은 기와의 한옥에 허구의 대가족을 불러 모은다. 3대가 함께 사는 대가족을 편성한다. 거기에다 시어머니와 여고 동창인 홀로 된 친정엄마까지 한방을 쓰게 한다. 한 챕터에 가족 구성원 한 사람씩의 서사를 엮어나가는 일종의 연작소설 형식이다. 일인칭 주인공 시점의 화자는 시적인 감수성이 번뜩이는 여고 2학년에 재학 중인 소녀이다. 그 아이는 1년 동안 사랑의 열병 헤어짐 이별 죽음 이직 등의 아픔을 겪으며 성장해 나간다. 서너 해 전에 내가 대가족의 삶의 풍경을 복원하기 위해 허구적 상상력으로 완성한 가족소설 ‘감나무집 동백꽃’의 서사이다.

핵가족 시대 각자도생의 파편화된 삶을 살아가는 요즈음 젊은이들의 시각에서 볼 때는, 원시 공동체적 삶의 풍경으로 보일진 모르지만 내게는 삶이라는 무게중심을 잡아주는 ‘밸러스트 스톤’이나 다름없다. 살아가다 지치고 외로울 때 내 인생의 중심을 유지시켜 주는 것은 유년의 대가족 풍경이다. 낳자마자 남도 섬마을의 큰댁에 맡겨져서 유년기를 보낸 그 기억은, 도회지 거친 풍경에서도 끝내 순수함을 지키게 해준 원형적 모성이나 다름없었다. 내 삶을 오롯이 가꾼 것은 큰댁에서 보낸 유년기 대가족 풍경이었다. 그것은 곧 내 문학의 원형질이 된 것은 물론이거니와, 간혹가다 엇길로 들어서지 못하게 막아준 도덕적 방풍림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우리는 지금 가족 해체의 메마른 풍경 속에서 살고 있다. 내가 아니고 피붙이 가족이 아니면 모두가 적이라는 편협한 관계성 속에서 겨우겨우 살아간다. 아니 사는 것이 아니라 살아지고 있는 셈이다. 네가 곧 나이고 내가 곧 너라는 공동체적 윤리에 대한 복원력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지나가다 옷깃 스치면 인연이라는 도덕성은 이미 옛말이 되었고, 지금은 부지불식간에 옷깃이라도 스치면 시빗거리가 되는 살풍경의 시대를 안간힘을 쓰며 살아가고 있다. 대가족의 온기를 느끼지 못한 채 자라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서로의 온기를 느껴야 보듬고 다독일 수 있는데, 그런 기억 인자가 없으니 날 선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거의 40년 동안을 이어오고 있는 전국 규모의 문학단체가 하나 있는데, 이 단체의 작별 인사는 아주 독특하다. 서로를 보듬고 다독이며 귓속말로 인사를 건네고 헤어지는 독특한 인사를 한다. 그것은 곧 서로의 온기를 나누는 의식이다. 대가족의 원형질적 모성을 회복하는 의식인 셈이다. 즉, 우리 모두가 바다가 되는 것이다. 강에 휩쓸려 온 온갖 더러움을 바다는 보듬어 정화시킨다. 그래서 철학자 니체는 바다를 가족의 모든 안쓰러움을 보듬는 모성에 비유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대가족을 버티고 유지하는, 선박의 평형추인 밸러스트 스톤일지도 모른다.


내자와 각방을 쓴 지 보름 가까이 되지만 가끔은 서로의 온기가 그리울 때가 있다. 개별적 편안함보다 귀찮지만 약간의 부대낌이 필요할 때도 있다. 우리 마음 저 밑바닥에는 서로 보듬고 다독이며 삿된 것을 정화시켜 주는 대가족의 원형적 인자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감나무집 동백꽃이 있는 옛스런 한옥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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