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용표 前통일 “北, 목함지뢰 회담 때 확성기 끄려 우리 요구 다 수용”

김민서 기자 2024. 6. 12.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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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함 지뢰 도발때 北과 회담
박근혜 정부 때 통일부 장관을 지낸 홍용표 한양대 교수가 11일 본인 연구실에서 본지와 인터뷰했다. 홍 전 장관은 “대북 확성기 방송은 북한에 분명히 영향을 끼친다”며 “확성기 대응과 관련해 정부 내 기준과 원칙이 분명해야 한다”고 했다. /전기병 기자

박근혜 정부 때인 2015년 8월 북한의 비무장지대(DMZ) 목함 지뢰 도발 당시 우리 군 확성기 방송 재개를 계기로 북한과 협상한 홍용표 전 통일부 장관은 11일 본지 인터뷰에서 “당시 북한의 유일한 목적은 확성기 방송을 끄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우리 측이 원하는 요구 사항을 대부분 수용했다”고 했다. 당시 홍용표 통일장관과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판문점에서 북한 군부 서열 1위였던 황병서 인민군 총정치국장, 대남 분야 수장인 김양건 대남 담당 비서와 정회 시간 빼고 43시간 동안 ‘무박 4일’ 마라톤 협상을 벌였다.

―당시 회담에서 북한은 확성기에 대해 뭐라고 했나.

“김양건이 회담 전날 평양에서 판문점에 내려와 하룻밤을 잤다. ‘직접 확성기 방송 들어보니 입에 담지 못할 별의별 얘기가 다 나오더라. 확성기 때문에 시끄러워서 잠을 못 잤다. 좀 꺼달라’고 하더라. 우리는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회담 내내 확성기 틀어 놓고 했다.”

―첫날 접촉이 다음 날 새벽까지 10시간 동안이나 이어졌는데.

“우리 장병이 다리를 잃어서 병원에 있고 국민들이 분노하고 있기 때문에 첫날부터 강하게 나갔다. ‘뭐 별것도 아닌 좁쌀만 한 일로 그러느냐(확성기를 켜느냐)’는 북측 말에 너무 화가 나서 ‘우리 장병 두 명이 다리를 잃은 게 어떻게 별일이 아니냐’며 소리를 버럭 지르고 우리가 확보한 증거물을 내밀었다. 둘째 날 북한이 먼저 확성기 끄는 요구 사항이 담긴 자기네 입장문을 우리 쪽에 제의했다. 당시 황병서와 김양건 태도를 봤을 때 반드시 우리한테 확성기 방송 중단을 받아내야만 하는 상황으로 느껴졌다.”

―예상하지 못했던 일인가.

“우리가 확성기를 끄는 대신 북한은 우리 요구 사항인 목함 지뢰 도발에 대한 유감 표명, 준전시 상태 해제, 이산가족 상봉, 다양한 민간 교류에 합의했다. 심지어 합의문에 ‘비정상적인 사태가 발생하지 않는 한’이라는 전제를 달아 확성기 방송을 중단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는데 이걸 북한이 받을 줄은 몰랐다. 영구적 중단이 아닌 조건부 중단인데도 그대로 받을 만큼 급하고 절박했던 것이다. 그 문구 덕분에 이후 북한의 4차 핵실험 도발 등이 일어났을 때 확성기 방송을 재개할 수 있었다. "

―확성기가 무슨 효과가 있느냐는 주장도 있다.

“북한이 반응하는 걸 보면 효과는 분명히 있다. 북한군 장병들의 심리적 동요가 크고 그걸 듣고 넘어온 사례도 더러 있다. 접경 지역 북한 주민들도 영향을 받는다. 단순히 북한 병사 또는 주민 몇 명이 영향을 받은 건지 따지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우리가 북한이 아파하는 곳을 찌르고 북한이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게 할 수 있는 카드가 필요한데 이런 면에서 확성기는 굉장히 유효하다.”

―확성기 방송을 6년 만에 재개했다가 2시간 만에 중단했다.

“정부가 원칙을 갖고 행동할 때 국민 지지를 받을 수 있고 대북 협상력도 커진다는 점을 목함 지뢰 도발 회담 때 절실히 느꼈다. 북한이 오물 풍선 보낸다고 확성기 잠깐 켰다가 끄고 이걸 또 껐다 켰다 반복하면 심리전 효과는 사라지고 남남 갈등만 생긴다. 이건 정확히 북한이 원하는 상황이다. 확성기 대응과 관련한 정부 기준과 원칙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북한 김여정이 오물 풍선을 날려 보내면서 ‘인민의 표현 자유’라고 했다.

“가당찮은 말이다. 북한에 무슨 표현의 자유가 있나. 2014년 북한과 회담할 때 북한이 자기네가 조선중앙TV 통제하는 것처럼 남한 방송이 김정은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는 요구를 했다. 우린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선 정부가 언론 통제를 할 수 없고 헌법적 가치인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야 하기 때문에 할 수 없는 일이라는 원칙을 일관되게 견지했다.”

―문재인 정부 때 김여정 요구에 따라 ‘대북 전단 금지ㆍ처벌’ 조항이 담긴 법까지 만들었는데.

“회담할 때마다 북한은 우리 정부가 민간 단체의 전단 살포를 중단시키라고 강하게 요구했다. 그때마다 북한에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에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문 정권 때 김여정이 전단 살포를 막는 법이라도 만들라고 요구하는 걸 보고 우리가 북한에 제시한 논리를 그렇게 써먹는구나 싶었다.”

―확성기 방송과 대북 전단이 남북 긴장을 고조시킨다는 주장도 있는데.

“피해자 흉내 내는 북한의 일방적 논리일 뿐이다. 북한의 비상식적 수준 이하 행태에 매번 맞대응할 필요는 없지만, 자유민주주의 원칙과 헌법 가치 등 근본적 가치를 건드리는 부분에 대해선 정부가 적극적으로 설명해야 국민들이 남북이 다 문제라는 식의 양비론적 주장에 흔들리지 않는다. 다만 대북 전단은, 내가 장관으로 있을 때 정부가 억지로 막을 수는 없지만 일부 단체에 대해선 자제해 달라는 설득은 했다. 언제 어디서 전단을 날리겠다고 다 예고하고 하니 북한이 알고 고사포 총을 쏘는 것이다.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는 걸 막기 위해선 그런 정도 관리는 필요하다고 본다.”

지난 2015년 8월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 고위급 협상 장면.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당시 홍용표 통일부 장관,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황병서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 김양건 노동당 대남비서. /통일부

☞홍용표는

1964년생으로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나와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국제관계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13년 18대 대통령직인수위 외교국방통일분과 실무위원으로 활동한 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청와대 통일비서관과 통일부 장관(2015~2017)을 지냈다. 현재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북한 DMZ 목함지뢰 도발

2015년 8월 DMZ 인근에서 작전 중이던 우리 장병 2명이 지뢰에 다리를 잃었다. 지뢰 매설이 북한군 소행임을 확인한 정부는 최전방 확성기 방송을 재개했다. 북한은 한국군을 겨냥한 포격 도발에 나섰고 48시간 내 확성기 철거를 요구한 뒤 ‘준전시 상태’를 선포했다. 이후 북한이 우리 측에 만남을 제의해 남북 2+2 고위 당국자 접촉이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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