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인의 송곳 왼발 ‘밀집장성’ 뚫었다
전반 40분 한국 대표팀 주장 손흥민이 중국 관중들이 모인 쪽으로 가까이 가자 야유가 쏟아졌다. 손흥민은 그들을 바라보고 씩 웃은 뒤 오른손 세 손가락을 펴고 왼손은 동그랗게 말아 ‘0′을 만들었다. 지난해 11월 중국과 2차 예선 원정 경기 점수 3대0을 떠올리게 한 동작. 여유가 넘쳤다.
11일 한국과 중국의 2026 북중미 월드컵 2차 예선 C조 최종전이 열린 서울월드컵경기장. 6만5000명이 들어찬 상암벌 함성은 최고 109dB(데시벨)까지 치솟았다. 공연장을 방불케 했다. 중국은 이날 비기기만 해도 3차 예선에 진출하는 구조. 전력상 열세를 인정하고 밀집 수비를 들고 나왔다. 지저분하고 거친 플레이는 여전했다.
한국 공격은 전반 다소 답답했다. 이렇다 할 기회를 만들어 내지 못했다. 점유율은 8대2로 압도적이었지만 촘촘한 수비벽을 돌파하진 못했다. 해결사는 이강인이었다. 후반 16분 이강인은 왼발로 강하게 손흥민을 겨냥한 중거리 패스를 날렸다. 이 공을 받은 손흥민이 페널티박스 왼쪽에서 가운데로 낮게 다시 크로스를 올렸을 때 교체 투입된 주민규가 수비수들을 끌어주자 공은 무인지경으로 흘렀다. 빠르게 넘어오다 보니 황인범이 미처 발을 갖다 대지 못해 다시 뒤로 빠지나 했으나 맹렬하게 달려온 이강인이 날카로운 왼발 슈팅으로 골문 오른쪽 구석을 갈랐다. 골키퍼가 있었으나 손을 쓰지 못했다. 골을 넣은 이강인은 패스를 넘겨준 손흥민에게 달려가 안기며 환호했다. 상암벌이 폭발할 듯 끓어올랐다. 이 골이 이날 결승골이 됐다.
김도훈(54) 감독이 임시 지휘봉을 잡은 한국 축구 대표팀이 중국을 1대0으로 물리치며 또 한 번 중국에 ‘공한증(恐韓症)’을 안겼다. 최종 6차전을 승리로 이끌며 5승1무(승점 16)를 기록한 한국은 C조 1위로 3차 예선에 올랐다. 중국은 한국에 무득점 5연패(連敗)를 당하며 승점 8(2승2무2패)로 2차 예선을 마쳤다. 한국은 중국과 상대 전적에서 23승13무2패로 일방적 우세를 이어 갔다.
FIFA(국제축구연맹) 랭킹 23위 한국은 88위 중국을 물리치면서 오는 9월 돌입하는 월드컵 3차 예선에서 일본과 이란을 피하게 됐다. 오는 20일 발표하는 6월 FIFA 랭킹 기준으로 한국은 AFC(아시아축구연맹) 소속 국가 중 일본과 이란에 이어 셋째. 3위권을 유지하면서 한국은 세 조로 나눠 치러지는 3차 예선에서 톱 시드를 받아 일본·이란과 다른 조에 속한다. 18팀이 참가하는 3차 예선에서는 각 조 1·2위 6팀이 월드컵 본선에 직행한다.
이날 김도훈 감독은 6일 싱가포르 주전 라인업에서 두 명을 바꿨다. 주민규 대신 황희찬을 원톱으로 내세워 손흥민·이강인과 공격 삼각 편대를 이루게 했고, 황재원 대신 박승욱을 오른쪽 수비수로 선발 기용했다. 손흥민은 이날 그라운드를 밟으며 이영표와 함께 A매치 최다 출전 공동 4위(127경기)가 됐다. 1위는 차범근 전 대표팀 감독과 홍명보 울산 감독의 136경기다.
한국은 초반 공격을 주도하며 기회를 엿봤다. 전반 20분 손흥민이 왼쪽 측면에서 중앙으로 치고 들어오는 특유의 움직임으로 찬스를 만든 뒤 오른발 슈팅을 날렸으나 골키퍼에 막혔다. 전반 29분엔 손흥민이 내준 공을 이강인이 중거리 슈팅으로 연결했지만 골키퍼가 잡았다.
한국이 공격 실마리를 풀지 못하면서 전반 중반 이후부턴 중국의 공격 횟수가 늘어났다. 전반 43분 리우양의 슈팅이 한국 수비와 팀 동료를 맞고 굴절되는 등 중국이 오히려 공세를 펼치는 모습이었다.
전열을 가다듬은 한국은 후반 다시 공격의 고삐를 쥐었다. 김도훈 감독은 후반 16분 이재성과 박승욱을 빼고 주민규와 황재원을 투입했는데 곧바로 이강인의 골이 나왔다. 이강인은 이날 10호 골로 A매치 29경기 만에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했다. 이강인은 경기 후 “형들, 어린 친구들과 함께 훈련하고 경기하면서 점점 더 좋아지고 있다. 앞으로 더욱 한 팀이 되어 좋은 축구를 보여드리겠다”고 말했다.
교체 없이 뛴 손흥민은 “대한민국과 우리 팬들이 무시받는다는 느낌이 들어 제스처를 취한 것”이라며 “우리가 어떤 축구를 할지 더 정확하게 설정하고 3차 예선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임시 감독으로 2연전을 모두 승리한 김도훈 감독은 “절실한 중국팀 상대로 우리 선수들이 마지막까지 집중력을 흐트러지지 않고 실점 없이 승리를 가져와서 만족한다”고 말했다.
2026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C조 6차전
한국 1 ― 0 중국
▲후 16분 이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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