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도 괴로움도 찰나찰나 ‘툭’ 내려놔보세요, 禪명상의 시작입니다
선명상 보급 진두지휘하는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
“불교인뿐 아니라 국민 누구나 명상을 통해 마음의 여유와 평안, 평온을 찾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점에서 ‘선(禪)명상’이 일반 명사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5월 31일 낮 서울 은평구 진관사,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이 말했다. 이날은 조계종이 ‘선(禪)명상’ 보급을 위해 언론인을 대상으로 개최한 체험 행사 날. 진우 스님은 직접 이 자리에 참석해 선명상의 개념과 보급을 추진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진우 스님의 설명에 이어 ‘간화선 명상’ ‘걷기 명상’ ‘자비 명상’을 실제로 체험하는 순서로 이어졌다.
최근 불교계의 명상 붐을 이끌고 진두지휘하는 이는 진우 스님이다. 진우 스님은 지난 2022년 9월 총무원장 취임 일성(一聲)으로 ‘선(禪)명상’ ‘K명상’의 보급을 제안했다. 작년부터 명상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조계종 스님들과 함께 표준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으며 오는 25일부터 8주 과정의 ‘사회 리더를 위한 선명상 아카데미’에서 매주 화요일 2시간씩 주(主) 강사로 직접 강의할 예정이다. 9월 말에는 서울에서 대규모 ‘국제선명상대회’를 통해 프로그램을 공식적으로 발표한다는 계획이다. 전국 150여 개 템플스테이 사찰을 통해 보급한다는 계획도 갖고 있다. 조계종 내에는 암묵적으로 이판(理判·수행승)과 사판(事判·행정승), 교(敎·경전 공부)와 선(禪·참선 수행)의 전공(?)이 구분돼 있다. 이런 상황에서 조계종 종무행정의 최고 책임자가 행정이 아닌 수행 보급의 최전선에 나선 점은 눈길을 끈다. 지난주 진우 스님을 만나 명상 보급에 나선 이유를 들었다.
-언제부터 명상 보급에 대한 생각을 가지셨습니까.
“개인적으로는 20~30년 전부터 가졌던 원력(願力)입니다. 한국 불교가 가진 좋은 자원을 나누고 싶어서입니다. 대강백(大講伯)이었던 은사 백운 스님은 항상 ‘교(敎)는 선(禪)으로 가는 안내서’라고 강조하셨습니다. 제가 최근에 낸 책 ‘개미의 발소리’(조계종출판사)도 2008년 담양 용흥사 주지 시절 몽산선원을 개원하고 대중 스님들과 새벽 3~5시 정진(精進) 마친 후 선에 대한 단상을 적은 것이 시작입니다. 취임 전까지 매일 새벽 원고를 쓰면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그는 총무원장 취임 후에는 매일 오전 8시 조계사 대웅전에서 108배를 올리는 것으로 하루를 열고 있다.) 제가 출가한 백양사 방장을 지낸 서옹 스님은 1990년대 말 무차법회(無遮法會)를 열어 ‘참사람운동’을 펼치시며 선의 대중화를 시도하셨습니다. 그런 영향으로 항상 선의 대중화를 염두에 두고 있었지요.”
-그렇더라도 총무원장으로서 선명상 보급에 나선 것은 다른 차원인데요.
“요즘 보면 우리 국민들이 어린이부터 어르신까지 다 마음이 피곤해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경쟁하는 것도 힘들고요. 그래서 세계적으로 붐을 이룬 메디테이션(명상)에 선(禪)을 붙여 선명상 보급에 나서게 됐습니다. 이런 운동은 개별 사찰이나 교구(敎區)보다는 조계종 차원에서 펼쳐야 한다고 생각해 총무원장 취임과 함께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과거 아침마다 ‘국민체조’ 했듯이 국민들이 종교 유무를 떠나 일종의 ‘마음 평안 운동’을 하자는 취지입니다.”
-선(禪)과 명상은 어떻게 다른가요.
“사실 명상이 선이고, 선이 명상입니다. 지금은 여러 종교에서 명상을 하고, 종교와 관계없이도 명상을 합니다. 그런데 출가자 입장에서 명상의 시작은 부처님이라고 봅니다. 불교의 궁극적 목적은 깨침이잖아요. 완전한 깨침, 완전한 평안함 그것을 해탈이라고 하지요. 조계종은 화두(話頭)를 참구하는 간화선(看話禪) 전통이 있습니다. 화두, 공안(公案)이라는 것은 옛 조사(祖師)들이 마음을 깨치는 과정과 결과를 담아놓은 언어입니다. 거기엔 내 생각을 붙일 수도 없고 붙여서도 안 됩니다. 간화선은 단박에 영원한 평안을 얻게 되는 훌륭한 수행법입니다. 그런데 스님들에게도 어려워요. 불교의 진리를 보다 쉽게 전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던 중 마침 세계적으로 명상이 붐을 이루는 것을 보고, 선명상 보급을 생각하게 된 거지요. 선이 완전한 깨침을 지향한다면 명상은 지금 이 시간, 혹은 오늘 하루 일상을 스스로 마음을 편안하게 해나가는 수행이지요. 명상은 궁극적으로는 선(禪)을 향한 문(門)인 셈입니다. 선명상을 통해 선에 관심이 생긴 분에겐 ‘진짜배기 선’을 보여드릴 것입니다.”
-세계적 명상붐을 피부로 느끼시는지요.
“최근 이웃 종교 지도자들과 발트 3국을 다녀왔습니다. 거기서도 잔디밭에 앉아 명상하는 사람들을 봤습니다. 이제 명상은 어느 나라, 어느 지역의 전유물이 아니라 전 세계적인 현상입니다. 사실 명상 붐은 선진국 중심입니다. 우리나라 숭산 스님을 비롯해 티베트, 일본 그리고 남방의 위파사나 수행법이 서구 지식인들을 움직였고 지금은 ‘명상’이란 형식으로 우리에게 돌아오고 있습니다. 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 등 유명 인사들이 명상을 한다는 사실도 많이 알려졌지요. 사람들은 과거엔 과학과 문명이 발전하면 행복해질 것으로 막연히 생각했지요. 그런데 동서고금을 통해 보아도 과학과 문명이 아무리 발전해도 인간의 불행과 고통은 해결되고 있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는 행복과 불행, 즐거움과 괴로움에 대해 잘못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잘못 알고 있나요. 스님은 저서 ‘개미의 발소리’에서 ‘행복과 불행은 동전의 양면. 한쪽 면만 생길 수는 없다’ ‘고통이 없기를 바라지 말라’고 하셨는데요.
“불교에서는 인과(因果)와 연기(緣起), 그리고 중도(中道)의 원리를 강조합니다. 쉽게 말해 해가 뜨면 지게 되어있고, 태어나는 즉시 죽음이 정해지는 것처럼 행복이 생기는 즉시 불행도 똑같은 질량으로 생겨납니다. 동전의 양면 같은 거지요. 사람들은 행복은 계속 이어지길 바라고, 괴로움은 금방 사라지기를 바라지만 그럴 수는 없습니다. 명상은 마음을 가라앉혀서 큰 행복에 대한 큰 욕심을 갖지 않게 함으로써 큰 불행, 큰 괴로움의 인과 과보를 받지 않도록 하는 방법입니다. 불교에서는 ‘마음을 일으키지 말라’고 표현하지요.”
-책 서문 첫 문장 ‘현상과 대상으로부터 감정을 분리하라’는 구절이 인상적입니다. 또 ‘두 번째 화살을 맞지 말라’고도 하셨습니다.
“살다보면 굉장히 억울한 일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그것 역시 불교적으로는 인과가 굉장히 복합적으로 얽혀 있기 때문에 벌어진 일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을 떠나서 생각해봐도 벌어진 현상은 이미 돌이킬 수 없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거기에 감정을 결부시킵니다. 그러면 이제는 현상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내 마음, 감정 상태가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일종의 감정 놀음에 당하는 것입니다. 그게 두 번째 화살을 맞는 거지요. 명상을 하게 되면 그런 일을 피할 수 있게 됩니다.”
-불교박람회를 비롯해 다양한 기회에서 명상을 주제로 젊은이들을 만나고 계십니다. 청년들은 어떤 고민을 토로하던가요? 또 어떤 조언을 해주시는지요.
“젊은이들은 주로 경쟁, 돈, 부모와 기성세대의 간섭 등의 고민을 털어놓는데, 기본적으로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 걱정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걸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미래에 대한 걱정은 언제 하나요? 또 과거에 대한 후회는 언제 하지요? 모두 ‘지금’입니다. 명상을 하면 마음이 고요하고 편안하게 되고 생각이 청정해지면서 판단 기준이 빨리 세워지게 됩니다. ‘지금’에 집중하게 되는 것이죠. 젊은이들에겐 ‘내 인생 방향을 좀 틀어야겠다’ 하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중요한 수단이 명상입니다. ‘명상을 찾게 되는 그 마음만으로 스스로 어려움에서 벗어나는 첫걸음’이라고 권합니다.”
-우리나라에도 요가, 걷기, 싱잉볼, 아로마(향기) 등 다양한 명상법이 보급돼 있습니다. 불교계에도 스님들이 지도하는 명상 프로그램이 많습니다. 선명상은 프로그램을 어떻게 만들 계획이신지요.
“지금 한국은 ‘명상 백화점’이라 할 정도로 다양한 명상법이 보급돼 있습니다. 현재 종단 차원에서 국내에 소개된 명상법을 전수(全數)조사하고 있습니다. 사이비적인 것만 빼고 거의 모든 명상법을 다 수용하려 합니다. 공통적·기본적인 것을 추려서 국민들에게 제공하고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으로도 체험할 수 있도록 제공할 것입니다. 참가자들이 자신에게 맞는 명상법을 선택하고 초보부터 심화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할 것입니다. 불교 신자가 아닌 국민들도 템플스테이에 참가하듯 선명상 역시 종교와 관계없이 누구나 참가해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도록 할 계획입니다. 이를 위해 가능한 한 용어에서도 불교적 색채는 빼려고 합니다.”
-명상에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 한 가지 팁을 주신다면.
“화나고, 힘들고, 스트레스 받을 때 ‘툭’ 내려놔보세요. 불교에서는 방하착(放下着)이라고 표현하는데 쉽게 ‘우선 멈춤’이라 생각하세요. 제 은사 스님은 ‘즐거워도 괴로워도 찰나 찰나 방하착하라’고 말씀하셨어요. 순간순간 내려놓지 않으면 집착하게 되고 경계선을 넘어 지나치게 마련이거든요. 우리가 살아갈 때에도 평소엔 최선을 다하지만 힘들고 괴로울 때는 그냥 내려놓으세요. 운동선수가 본경기에선 내려놔야 제 실력을 발휘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어떤 순간에서도 ‘우선 멈춤’의 효과는 상당합니다. 그리고 하루에 짧은 시간이라도 눈 감고 가만히 앉아보세요. 가장 편안한 자세로 몸도 움직이지 말고요. 그렇게 앉아 있다 보면 어느 순간 내 숨소리가 들릴 것입니다. 그러면 그 숨소리에 집중해보세요. 자꾸 연습하면 기분 나빠지는 것이 줄고, 화가 덜 나고, 괴로운 마음도 어느 정도 컨트롤할 수 있게 됩니다. 내가 편안해지면 상대에게도 편하게 대할 수 있고, 상대도 다른 사람들에게 그렇게 대하면 서로서로 돕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요?”
☞진우 스님
강릉 출신. 3대 독자였던 그는 “수명이 짧아 스무 살까지 절에서 키워야 한다”는 큰스님 말에 따라 어린 시절 강릉포교당 관음사에 맡겨져 관음사와 강원 명주군 보현사를 오가며 행자 신분으로 중·고교를 다녔다. 1978년 백운 스님을 은사로 정식 구족계를 받고 출가해 봉화 축서사, 오대산 상원사, 태백 청원사 등에서 정진했다. 완도 신흥사, 광주광역시 관음사, 담양 용흥사 주지 등을 지내면서 백운 스님에게 ‘숙제’를 받아 점검받는 등 특별 지도를 받았다. 제18교구 본사 백양사 주지(2012~2015), 불교신문사 사장, 조계종 교육원장을 역임하고 2022년 9월 28일 조계종 총무원장에 취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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