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윤 대통령은 왜 ‘천금 같은 기회’를 버렸을까

김민철 기자 2024. 6. 12.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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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년 만의 연금 개혁 호기, 왜 거부했는지 여전히 오리무중
지난해부터 여권 태도 아리송… 구조개혁 윤곽·로드맵 제시해야
국민의힘 윤희숙 전 의원이 지난 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국민의힘 소장파 모임인 첫목회가 주최한 초청강연에서 '연금개혁, 국민의힘이 사활을 걸어야 하는 이유'라는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은 왜 연금 개혁 호기가 왔는데도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여야가 지난 5월 말 국민연금 보험료율(내는 돈)을 현행 소득의 9%에서 13%로 올리는 데 사실상 합의했지만, 대통령실과 여당은 “다음 국회로 넘기자”고 했다. 그 이유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다른 정치 사안은 대개 나중에라도 경과와 이유가 나오는데 이 일은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많은 사람이 의아해하면서 추측만 내놓을 뿐이다.

먼저 해병대원 특검법 논란이라는 정치적인 문제와 얽히면서 연기했다는 시각이 있다. 그러나 이 주장은 당시 상황에 맞지 않다. 특검법 논란이 본격화한 것은 5월 말인데, 윤 대통령이 “22대 국회로 넘기자”는 말을 처음 꺼낸 건 4월 29일 이재명 대표와 회동에서였다. 윤 대통령이 한 달 후 정치 상황까지 내다보고 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윤 대통령이 국회에서 나온 방안들이 미흡하다고 보았을 수 있다는 시각은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다. 대통령실 태도가 이상해진 것은 지난 4월 22일 국회 공론화위가 보험료율 13%, 소득 대체율(받는 돈) 50%를 1안으로 채택한 뒤부터였다. 사실 국회 연금특위가 막판 의견을 좁힌 13%·44%도 개혁이라 하기엔 민망하다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 보험료율은 15%까지는 올려야 하고 소득 대체율을 40%에서 더 올리는 것은 개악이라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소득 대체율을 올리지 않으면 민주당이 꿈쩍도 않는데 어떻게 하나. 보험료율을 1998년 이후 26년간 올리지 못한 것을 감안하면 4%포인트 올리는 것도 상당한 성과일 수밖에 없었다.

임기 중 연금 개혁을 어떻게 두번 하겠느냐며 모수 개혁과 구조 개혁을 한꺼번에 하겠다는 얘기도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 모수 개혁을 한 다음 구조 개혁을 논의하면 훨씬 수월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구조 개혁은 고려해야 할 요소가 많아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윤희숙 전 의원은 “모수 개혁과 구조 개혁 난도를 평가하면 3:7이나 2:8 정도”라고 했다. 안상훈 국민의힘 의원은 2022년 8월 대통령실 사회수석 시절 “선진국 사례를 보면 구조 개혁은 아무리 빨라도 10년 정도 걸린다”고 했다.

대통령실은 구조 개혁을 얘기하면서도 그 윤곽조차 내비친 적이 없다.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을 통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많지만 상당 기간 논의·조정해야 하고 정치적인 부담도 따를 수밖에 없는 일이다. 일본은 2015년 공무원연금과 우리의 국민연금에 해당하는 후생연금을 통합했는데, 여기까지 가려면 진짜 10년이 걸릴지 모른다. 현 정권 임기가 3년도 남지 않았는데 어느 세월에 하나.

사실 정부 여당이 연금 개혁에 대해 납득하기 어려운 태도를 보인 것은 이번만이 아니다. 지난해 2월에도 여야가 한창 모수 개혁을 논의할 때, 갑자기 국민의힘 강기윤 간사가 구조 개혁을 먼저 해야 한다고 방향을 틀어 논의를 원점으로 돌려놓았다. 이상한 방향 전환이었다.

여러 시각 중 가장 악성인 것은 대통령실이 보험료 인상을 부담스러워했을 가능성이다. 지난달 말 연금 개혁안을 처리했으면 보험료는 내년부터 0.5%포인트씩 8년에 걸쳐 오른다. 정부가 연일 물가 안정을 강조하는 것을 보면 이것 때문인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어떻든 대통령실이 입으로만 연금 개혁을 얘기하고 실제 행동은 반대로 가는 듯한 일들이 쌓이니 연금 개혁을 할 생각이 없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마저 든다. 이런 생각을 불식시키려면 대통령실이 구상하는 구조 개혁의 윤곽과 로드맵이라도 내놓아야 한다. 그러지 않고 이대로 시간만 흘러가면 연금 개혁의 ‘천금 같은 기회’를 걷어찬 정권으로 두고두고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며 비판을 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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