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성악과 입시 비리에 멍든 마음
“정말 금수저였으면 한국에서 공부하지 왜 여기까지 나왔겠어?”
독일 베를린에서 성악 유학을 하는 지인에게 “집이 잘사느냐”고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서울 유명 대학 성악과 입시 비리를 취재하며 이 지인이 떠올랐다. ‘마스터 클래스’. 서울 강남구·서초구에 현직 성악과 교수가 개설한 불법 사설 교습소 이름이다. 회당 교습비는 최대 70만원. 학생들은 현직 교수들에게 불법 과외를 받으며 ‘발성비’ ‘대관료’ ‘반주비’를 부담했다.
경찰은 “성악과 교수들과 인맥이 있는 유력 인사 자제나 레슨비를 부담 없이 지불할 수 있는 부유층만 접근 가능한 불법 과외 네트워크였다”고 했다. 이 교습소에서 불법 과외를 한 교수들은 각 대학 성악과 입시의 외부 심사위원 등으로 활동하며 자기 과외생들에게 최고점을 줬다. 어느 교수의 채점지를 보면 다른 학생들에겐 60~70점대를 주다가 자기 과외생 두 명에게 90점을 매긴다. 경찰은 “평균 75점 정도의 평범한 학생이 불법 과외 덕에 최우수로 합격했다”고 했다.
입학 후에도 이 은밀한 사제(師弟) 관계는 유지된다. S대 성악과에 입학한 학생 2명의 학부모는 전직 학과장 박모씨에게 ‘제자 선발 오디션’을 해달라며 현금 100만원을 건넸다. 교수의 생일이나 학과 행사, 스승의날 등을 계기로 온갖 수고비·감사비·거마비·식사비 명목으로 뇌물이 오간다고 대학 사람들은 말한다. 합격 대가로 명품 가방 등 뇌물을 수수한 현직 성악과 교수 추모씨는 구속됐다.
부모의 금력과 인맥, 선택받은 사람들에게만 허락된 그들만의 리그. 한 대학 관계자는 “현직 교수 과외엔 돈다발을 싸 들고 줄을 선다”고 했다. 성악 실기는 공정성을 기한다며 가림막을 치고 노래를 부르게 한다. 하지만 전문 성악가들은 마치 지문(指紋)과 같은 목소리의 특색을 금방 알아차린다. ‘마스터 클래스’ 브로커였던 현직 대학교수는 각 대학 실기 일정과 심사위원 명단 등을 미리 파악해 비리 교수들이 과외생들에게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도록 했다. 이들에겐 명문대 성악과 입학이 땅 짚고 헤엄치기였던 셈이다. 하지만 경찰 수사에서 입시 비리가 나타난 한 대학은 “타 대학 소속 교수가 비리 사실을 숨기고 외부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면서 “대상 학생은 1단계 심사에서 탈락했다”고 했다.
그럼에도 양정호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이번 사태는 빙산의 일각일 가능성이 있다”며 “입시 브로커나 교수들은 학생이 합격할 경우 1억~5억원의 대가를 취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성악과뿐 아니라 예체능계 전반의 고질적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베를린 유학 지인은 “우리 집엔 억대 입학 사례금을 낼 돈이 없다”며 “적어도 이곳에선 돈과 인맥이 아니라 오로지 실력으로만 인정받을 수 있다”고 했다. 명색이 교육자라는 음대 교수들은 이런 학생들의 멍든 마음을 아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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