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예비신랑, 범인은 약혼녀를 짝사랑한 남자였나 [그해 오늘]

권혜미 2024. 6. 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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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 전 실종된 남성 김명철씨
상견례·결혼 앞두고 돌연 ‘실종’
약혼녀 지인 만남이 마지막 행적
사진=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방송 캡처
[이데일리 권혜미 기자] 지금으로부터 14년 전인 2010년 6월 12일. 약혼녀와 결혼할 예정이었던 예비신랑 김명철(당시 32세)씨가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키 185cm에 준수한 외모의 소유자였던 김씨는 농구 선수 출신으로 기업연수회의 이벤트 진행자로 일하고 있었다. 김씨는 2년 동안 교제한 약혼녀 박현주(가명) 씨와 4개월 뒤 결혼할 예정이었지만, 돌연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김씨가 사라진 2010년 6월 12일은 남아공 월드컵 시즌으로 대한민국과 그리스전의 경기가 열리는 날이었다. 김씨는 이날 박씨의 지인인 사채업자 A씨를 만나러 갔다. A씨가 김씨에게 일을 알선해주겠다며 B실장이란 사람을 소개해 주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날 오후 8시가 넘어가도록 김씨에게서 연락은 없었고, 박씨는 점점 불안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애타게 연락을 기다리던 중 밤 11시가 되자 박씨는 드디어 김씨에게서 문자 한 통을 받았다.

사진=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방송 캡처
김씨는 박씨에게 “우리 이제 그만 만나자. 네 과거 알고 만나는 여자 있어. 더 이상 너 못 보겠다”며 이별을 통보했다. 심지어 김씨는 어머니에게까지 “빚 때문에 당분간 집에 못 들어간다”는 장문의 문자를 보냈고, 이후 연락이 완전히 끊어졌다.

박씨는 곧바로 A씨를 찾아갔다. A씨는 “김씨와 미팅 후 저녁 7시쯤 헤어졌다”며 자신이 소개시켜 준 B실장과 김씨가 같이 일을 하게 됐으며, 계약금까지 받았다고 말했다.

갑작스러운 김씨의 실종에 수상한 점은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김씨는 학자금 대출 외에 빚이 없었으며 여자 관계도 깔끔했다. 이상한 점은 평소 띄어쓰기를 잘 했던 김씨와 달리, 실종 당일 김씨가 보낸 문자는 띄어쓰기 하나 없이 문장이 길게 늘어져 있었고 “엄마”라는 호칭이 아닌 “어머니”라는 낯선 호칭이 등장한 것이었다.

사건은 경찰이 A씨를 의심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김씨를 만나고 바로 헤어졌다는 A씨의 주장과 달리 사건 당일 만취 상태였던 김씨가 A씨와 그의 친구 B실장에게 업혀 들어가는 것이 인근 상인들에게 목격됐기 때문이었다.

사진=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방송 캡처
경찰이 A씨를 조사한 결과, 김씨가 실종 당일 박씨와 그의 가족에게 보낸 문자는 모두 A씨가 김씨를 사칭해서 보낸 것으로 드러났다. 해당 문자의 말투는 A씨가 평소 박씨의 미니홈피에 남긴 말투와 일치했다.

사건의 전말은 다음과 같다. 김씨와 만난 날 A씨는 병원에서 처방받은 수면제를 탄 폭탄주 2잔을 김씨에게 마시게 했으며, 김씨가 쓰러지자 그를 업어 성남시에 위치한 자신의 사무실로 옮겼다.

물증도 나왔다. 이 사무실 소파에서 김씨의 혈흔이 발견된 것이다. 또 김씨가 사건 후 한 달에 무려 89톤이나 되는 양의 물을 사용하고 A씨가 한 달 전 사무실을 계약했을 당시 공인중개사에 “주위에 소음이 많은 굉장히 시끄러운 장소일 것” “물이 잘 나와야 한다는 것” 등을 요구한 정황이 드러났다.

사진=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방송 캡처
A씨의 범행 이유는 치정으로 추정된다. 김씨가 실종되기 9일 전 박씨와 A씨가 만났고, 이때 박씨는 “김씨와 곧 결혼한다”고 이야기했다. 알고보니 A씨는 그동안 박씨를 짝사랑하고 있었다.

경찰은 여러 증거를 근거로 A씨를 폭력, 감금 등의 혐의로 구속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항소심에서 “피해자(김씨)가 현재 실종 상태이며 수면제를 먹이고 감금 폭행했다는 증거만으로 살인을 계획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이유로 법령 최고형인 15년의 1심을 깨고 A씨에 징역 7년형을 선고했다.

그렇게 김씨의 실종 사건이 조금씩 잊혀져가던 찰나, 이 사건은 2011년 9월 다시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바로 김씨가 사라지기 1년 전인 2009년 5월, 한 남성이 화장실에서 샤워 도중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사망한 사건의 유력 용의자로 A씨가 구속됐기 때문이다.

사진=SBS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 캡처
경찰은 해당 사건의 피해자가 사망한 장소가 동거하던 A씨의 사무실 화장실인 점, 피해자 가입된 17억 원의 보험금 수령자가 5개월 전 A씨 쌍둥이 형으로 변경된 점 등을 이유로 사건 발생 2년 만에 이들을 살인 혐의로 구속했다. A씨 형제는 재판에서 범행을 부인했지만, 재판부는 A씨에 무기징역을, 그의 형에게 징역 20년을 각각 선고했다.

해당 사건이 알려진 후 김씨 가족은 경찰에 “우리 사건도 해결해 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조사 끝에도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했고, 그렇게 김씨 실종사건은 심증과 정황 물증이 있으나 시신이 없어 끝맺지 못하는 ‘미제 사건’으로 남게 됐다.

권혜미 (emily00a@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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