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예비신랑, 범인은 약혼녀를 짝사랑한 남자였나 [그해 오늘]
상견례·결혼 앞두고 돌연 ‘실종’
약혼녀 지인 만남이 마지막 행적
키 185cm에 준수한 외모의 소유자였던 김씨는 농구 선수 출신으로 기업연수회의 이벤트 진행자로 일하고 있었다. 김씨는 2년 동안 교제한 약혼녀 박현주(가명) 씨와 4개월 뒤 결혼할 예정이었지만, 돌연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김씨가 사라진 2010년 6월 12일은 남아공 월드컵 시즌으로 대한민국과 그리스전의 경기가 열리는 날이었다. 김씨는 이날 박씨의 지인인 사채업자 A씨를 만나러 갔다. A씨가 김씨에게 일을 알선해주겠다며 B실장이란 사람을 소개해 주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날 오후 8시가 넘어가도록 김씨에게서 연락은 없었고, 박씨는 점점 불안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애타게 연락을 기다리던 중 밤 11시가 되자 박씨는 드디어 김씨에게서 문자 한 통을 받았다.
박씨는 곧바로 A씨를 찾아갔다. A씨는 “김씨와 미팅 후 저녁 7시쯤 헤어졌다”며 자신이 소개시켜 준 B실장과 김씨가 같이 일을 하게 됐으며, 계약금까지 받았다고 말했다.
갑작스러운 김씨의 실종에 수상한 점은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김씨는 학자금 대출 외에 빚이 없었으며 여자 관계도 깔끔했다. 이상한 점은 평소 띄어쓰기를 잘 했던 김씨와 달리, 실종 당일 김씨가 보낸 문자는 띄어쓰기 하나 없이 문장이 길게 늘어져 있었고 “엄마”라는 호칭이 아닌 “어머니”라는 낯선 호칭이 등장한 것이었다.
사건은 경찰이 A씨를 의심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김씨를 만나고 바로 헤어졌다는 A씨의 주장과 달리 사건 당일 만취 상태였던 김씨가 A씨와 그의 친구 B실장에게 업혀 들어가는 것이 인근 상인들에게 목격됐기 때문이었다.
사건의 전말은 다음과 같다. 김씨와 만난 날 A씨는 병원에서 처방받은 수면제를 탄 폭탄주 2잔을 김씨에게 마시게 했으며, 김씨가 쓰러지자 그를 업어 성남시에 위치한 자신의 사무실로 옮겼다.
물증도 나왔다. 이 사무실 소파에서 김씨의 혈흔이 발견된 것이다. 또 김씨가 사건 후 한 달에 무려 89톤이나 되는 양의 물을 사용하고 A씨가 한 달 전 사무실을 계약했을 당시 공인중개사에 “주위에 소음이 많은 굉장히 시끄러운 장소일 것” “물이 잘 나와야 한다는 것” 등을 요구한 정황이 드러났다.
경찰은 여러 증거를 근거로 A씨를 폭력, 감금 등의 혐의로 구속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항소심에서 “피해자(김씨)가 현재 실종 상태이며 수면제를 먹이고 감금 폭행했다는 증거만으로 살인을 계획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이유로 법령 최고형인 15년의 1심을 깨고 A씨에 징역 7년형을 선고했다.
그렇게 김씨의 실종 사건이 조금씩 잊혀져가던 찰나, 이 사건은 2011년 9월 다시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바로 김씨가 사라지기 1년 전인 2009년 5월, 한 남성이 화장실에서 샤워 도중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사망한 사건의 유력 용의자로 A씨가 구속됐기 때문이다.
해당 사건이 알려진 후 김씨 가족은 경찰에 “우리 사건도 해결해 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조사 끝에도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했고, 그렇게 김씨 실종사건은 심증과 정황 물증이 있으나 시신이 없어 끝맺지 못하는 ‘미제 사건’으로 남게 됐다.
권혜미 (emily00a@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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