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동물원] 벌건대낮에 벌어진 뱀 커플의 사랑의 행각

정지섭 기자 2024. 6. 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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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충류중에서 가장 진화한 뱀의 짝짓기
다른 동물과 달리 수컷에겐 생식기관이 2개
암컷 두고 수컷간 집단 경쟁 벌어지며 ‘흘레 공’ 만들기도
퍼프에더의 짝짓기/ 유튜브 @Clinton Tarling

스윽...스윽...스스슥...

태양이 작열하는 남아프리카의 사바나. 흩날리는 바람의 숨결 틈에서 미세하지만 강렬한 소리가 들려옵니다. 살과 살이 맞닿아 부비는 소리입니다. 하지만 그 마찰음에는 까끌까끌한 미세한 파열음이 느껴져요. 매끈한 살갗이 아닌 비늘과 비늘이 부벼대면서 나는 소리네요. 그 소리를 좇아 따라가니 퉁퉁하고 길쭉한 몸뚱이가 부둥켜있습니다. 아래 장면처럼요.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독사 중의 하나인 뻐끔살무사(퍼프 애더)예요. 평소같으면 풀숲에 몸을 가만히 숨기고 있다가 먹잇감이 지나가면 전광석화처럼 튀어나와 독니를 주입시켜 혼을 빼앗은 다음 핏기가 사라진 몸뚱이를 꾸역꾸역 삼켰겠죠. 하지만 오늘 뻐끔살무사는 다른 일로 바쁩니다. 암수가 대를 잇기 위해 신성하고 경건하게 흘레를 붙기 시작한겁니다. 꼬리와 꼬리를 꽈배기처럼 독사 특유의 세모진 대가리를 들이밀 듯 당기듯 하며 때로는 같은 곳을 쳐다보며 혓바닥을 쉿쉿 놀립니다. 영락없이 사랑의 밀어를 나누고 끈적하게 밀당을 즐기는 모습이에요. 아프리카의 말라말라 사파리 공원 유튜브에 올라온 동영상입니다. 이 장면을 지켜보며 휘리리 지저귀는 새들이 있었다면, 인간의 언어로 번역한 노랫말은 이럴지도 모르겠어요. “얼레리 꼴레리, 얼레리 꼴레리… 암컷 뱀이랑 수컷 뱀하고...”

맹독사로 이름난 코브라 암수의 짝짓기 장면./Tim Faulkner Youtube 캡처

집채만한 짐승들이 약육강식의 굴레에서 먹고 먹히는 야생의 드라마를 보러 가기 위해 사파리에 나섰다 이처럼 예상치 못하는 진기한 풍경과 마주치는 경우가 있는데요. 방금 소개한 뱀의 흘레 장면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징그럽고 섬뜩하면서도 악마적 매력을 발산하는 뱀 특유의 이미지 때문에 뱀의 흘레는 더욱 특별해보이는 면도 있죠. 통상적인 생식 습성에 비춰볼 때 저 한쌍의 뻐끔살무사는 최소 너 댓 시간은 한몸으로 부둥키고 있었을 것입니다.

괴물뱀으로 유명한 버마비단뱀 암수가 꽈배기처럼 몸을 꼬으며 짝짓기를 하고 있다./Chromato Yotube 캡처

이 너 댓시간을 보내기 위해 수컷들은 거친 몸뚱이를 무기 삼아 처절하게 싸웠을테고요. 최후의 승자만이 자신의 유전자를 발산할 수 있는 권리를 획득했겠죠. 그렇게 씨를 주고받고 각자 갈길을 가고 얼마간 시간이 흐르면 암컷은 많게는 80마리까지 꼬물거리는 새끼 뱀들을 몸속에서 꾸역꾸역 배출해낼 겁니다. 뻐끔살무사는 난태생이거든요.

수중에서 촬영된 맹독사 바다뱀의 짝짓기 장면./Frontierscuba Youtube 캡처

한 무리의 알을 암컷이 낳아놓을 때 수컷이 옆에서 수정시키는 물고기와 양서류의 짝짓기는 파충류 단계에 접어들면서 한 결 틀을 갖춥니다. 암컷과 수컷이 직접 생식기관을 연결해 유전자를 주고받고, 이 과정에서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구애 행동도 벌여요. 이렇게 수태된 새끼는 대개 부드러운 껍질에 쌓인 알의 형태로 배출돼 얼마 간의 숙성 기간을 거친 뒤 알껍질을 찢고 나오는 방식으로 산란이 이뤄지죠. 뱀은 그중에서도 한 단계 진화된 모습을 보입니다. 여건과 상황에 따라 알이 아니라 새끼의 형태로 출산을 하기도 하거든요. 몸색에서 알이 부화하는 형식이라 ‘난태생’이라고 이름짓긴 하지만, 이 장면은 영락없는 포유동물의 그것입니다. 파충류의 가장 복잡하고 진화한 번식과정 집약체가 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로시보아가 난태생의 형식으로 새끼를 낳고 있다.Reptile's Story Youtube 캡처

거대한 아나콘다부터 지렁이보다 조금 크기의 장님뱀까지 지구상에는 정말 크기도 다양한 뱀들이 저마다의 습성으로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짝짓는 패턴은 종류별로 조금씩 차이가 있을지언정 전반적으로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겁니다뱀의 짝짓기 과정을 간략히 묘사하면 이렇습니다. 모든 것은 ‘냄새’에서 시작돼요. 암컷에게서 피어오르는 묘한 냄새에 수컷들이 홀립니다. 그 냄새를 맡는 후각기관은 코끝이 아니라 혀끝입니다. 뱀의 트레이드마크인 낼름거리는 혓바닥의 갈라진 그 끝 말입니다. 그러니 날름거리는 혀는 식욕의 상징이기도 하면서 애욕의 심볼이기도 해요. 암컷을 향한 수컷의 몸짓을 글로 표현하자면 ‘소리없는 아우성’, ‘추악한 꽃미남’ 같은 모순적 시어가 동원될 수 밖에 없어요. 온몸을 S자형으로 구부리고 꾸불텅대는 그 욕망만큼은 모든 첩경을 지르며 목적지에 도달할 듯 하거든요. 하여 그 움직임을 이렇게 표현하면 적확합니다. ‘S자형 직진’이라고요.

노상에서 방울뱀 한쌍이 짝짓기를 하며 격렬하게 몸부림치고 있다./Joshua Anderson Youtube 캡처

체온에 달아오는 비늘과 비늘이 맞닿으려 합니다. 이 때 수컷뱀 특유의 비기(秘器)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놈들에겐 생식 기관이 두 개가 있어요. 니더(neither)가 아닌 이더(either)죠. 여건과 상황에 따라 둘 중 하나를 사용합니다. 스페어(spare)를 남겨둔채 짝짓기가 시작되면 최소 수 시간에서 열 시간 가까이 이어집니다. 이를 전후한 장면은 묘하고 기하학적이고 전위적입니다. 암컷 뒤에서 혀를 날름거리며 접근하는 킹코브라,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머리를 마주댔다 떼어냈다 반복하며 밀당하듯 움직이는 방울뱀, 수 m가 넘는 거대한 몸덩이를 배배 꼬며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꽈배기를만들어내는 버마 비단뱀...

가터뱀 수십마리가 짝짓기를 위해 뭉치면서 만들어낸 '흘레 공'./Okanagan Snake Spotter Youtube 캡처

이런 단계에 이르기까지 냄새에 홀린 수컷 뱀들은 대개 같은 수컷들끼리의 치열한 육탄전을 벌여 최후의 승자가 자신의 대를 이을 특권을 갖게 됩니다. 하지만 흘레붙는 그 순간까지도 교통정리가 되지않는 경우가 일부 뱀 종류에서 나타나요. 이럴때 나타나는 기괴한 광경이 있습니다. 바로 ‘흘레 공(mating ball)’입니다.

한마리의 암컷을 두고 적게는 여러 마리, 많게는 수십 마리의 수컷들이 떼로 몰려들면서 부둥키고 발버둥치고 몸부림칩니다. 그 격렬한 욕망의 몸집으로 똘똘뭉친 뱀들이 마치 공이나 실타래처럼 뭉친 거예요. ‘흘레 공’은 미국의 가터뱀처럼 덩치가 작고 독이 없는 온순한 뱀들에게서 주로 볼 수 있는 현상입니다. 작은 뱀들은 다른 뱀들이 가장 좋아하는 먹잇감이고, 새끼 때에는 황소개구리에게도 곧잘 잡아먹힐 정도로 천적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어요. 하지만 짝짓기에서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터프하고 강렬한 습성을 보이죠. 거친 야생에서 살아가야하는만큼 강력한 생존력이 필요하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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