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휴진 아닌데도 수술실 절반은 ‘텅’… 병원에 마취과 의사가 없다

김철중 기자 2024. 6. 11.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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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중의 아웃룩] 전신마취 수가 턱없이 낮아… 심장수술, 日은 우리 20배, 美는 30배 높아
할수록 손해니 병원은 의사 안 뽑고, 전문의는 나가서 ‘통증클리닉’ 개원
“이식수술·두개골 개두술·소아·산부마취 등부터 수가 숨통 틔워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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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여 병상 규모의 서울의 한 유명 대학병원. 이곳 수술실 20여 개 중 절반은 항상 닫혀 있다. 수술 일정이 아무리 많아도 매일 10개가 넘는 수술실이 비어 있다. 전신마취를 할 마취통증의학과 의사가 없기 때문이다. 그 결과, 전신마취가 필요한 수술이 한두달 밀려 있다.

지난 2월 전공의들이 병원을 이탈한 의료 사태 이전부터 가용 수술실을 모두 열지 못하는 현상은 더욱 악화됐다. 전신마취 시작 과정에서 이뤄지는 마취 약물 투여, 기관지 삽관, 수술 후 마취에서 깨어나게 하는 의료 행위 등은 PA(의사 보조)로 불리는 임상 전담 간호사가 할 수 없고 의사만 해야 한다. 의료 사태 이전에는 전공의들이 일부 수행했는데, 전공의마저도 없으니 수술 대란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전신마취 수술 대란 우려

전신마취는 거의 모든 암 수술, 외과 간·신장 이식, 담낭염 수술, 신경외과 뇌, 척추 수술, 흉부외과 심장판막 수술, 중증 외상, 고위험 산모 분만 수술, 각종 소아 수술 등에 반드시 필요하며 대학병원 의료의 핵심이다. 그런데 전신마취를 담당할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 수가 절대 부족하다 보니 수술이 취소되거나 대거 연기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전국의 거의 모든 대학병원에서 일어나고 있다. 홍승봉(삼성서울병원 신경과 교수) 거점 뇌전증지원병원 협의체 위원장은 “돌연사율이 30배 높고, 신체 손상율이 50~100배에 이르는 중증 난치성 뇌전증 환자들이 병원마다 마취통증의학과 의사 부족으로 수술을 받지 못하여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며 “이 문제를 조속히 해결하지 않으면 환자 피해가 엄청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뇌전증은 예전에 간질로 부르던 뇌질환으로, 뇌의 피질에서 비정상적인 신호가 발견되는 경우 등에서 뇌 일부 절제 수술을 하여 뇌전증을 치료한다. 폐 이식을 담당하는 마취 전문의가 병원을 사직하여, 그 지역 폐 이식이 일시 중단되기도 했다.

서울의 주요 대학병원들 상황을 탐문한 결과, 현재 평균 수술 가동률은 60~70%에 불과하다. 전공의들이 병원을 이탈한 이후, 남아 있는 마취통증의학과 교수들이 휴일 없이 근무하고, 야간 주말 응급수술도 맡아 하며, 전공의들이 하던 수술 후 환자 상태 확인이나 마취 동의서 작성 등도 전담하면서 번아웃을 호소하고 있다. 이에 대학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교수들이 한두명씩 병원을 떠나는 일도 벌어지기 시작했다. 마취통증의학회에서는 “응급실 뺑뺑이가 아니라 수술 환자가 수술해줄 병원을 찾아 헤매는 ‘수술실 뺑뺑이’가 나올 판”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래픽=이철원

◇병원서 마취과 의사 사라져

필수 의료 핵심인 전신마취 담당 마취통증의학과 의사 부족 사태는 수년 전부터 경고가 나왔음에도 정부가 방치한 측면이 있다. “지역 의료원에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 고용이 어려워 수술을 하루에 몰아서 하고 있다”, “70세가 넘은 정년퇴임하신 분까지 모셔다가 마취를 담당케 하고 있는 실정”, “지방 의료원에서 마취통증의학과 의사 구하려고 10여 개월 동안 총 19번의 공고를 냈지만, 지원자가 없다”, “전체 병원 중 절반(48%)에 마취를 담당하는 의사가 없다” 등 의료계 뉴스가 3~4년 전부터 계속 이어져 왔다. 환자가 마취되어 의식 소실이 발생하는 경우, 기도 관리가 되지 않으면 저산소증에 의한 영구적 뇌 손상이 발생할 수 있고, 수술 중 다양하게 변화하는 활력 징후를 조절하지 못하면 주요 장기 손상이 발생할 수 있다.

올해 초 신규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는 200명이다. 지난 15년 동안 신규 의사는 매년 200명 내외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문제는 이들 상당수가 대학병원, 종합병원서 전신마취를 담당하지 않고 통증 클리닉에서 주사 치료에 나서고 있다는 점이다. 전신마취는 의료 수가가 낮아 수익이 적고, 주말 야간 당직을 서야 하고, 중증 환자 마취 과정에서 의료 소송에 휘말릴 수 있지만, 통증 클리닉 주사 처치는 상대적으로 의료 수가가 높고, 실손보험 가입 환자들을 대상으로 수익을 올릴 수 있기에 마취통증의학과 의사들이 대부분 마취 없는 통증 클리닉으로 빠져나갔다. 통증 클리닉 신규 개원은 2018년 93개, 2019년 91개, 2020년 91개, 2021년 75개, 2022년 98개로 꾸준히 늘고 있다. 10년 전과 비교하면 74% 급증한 상황이다.

◇중증 의료 수가 파격적으로 올려야

마취통증의학과 의사들이 전신마취를 하는 일에 유입되게 하려면 의료 수가를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한국의 전신마취 수가는 터무니없이 낮고, 최근 10여 년간 크게 수정되지 않았다. 심장 수술은 1시간 기준으로 한국의 마취 수가는 15만5550원인데, 일본은 289만2945원, 미국은 454만7534원이다(2023년 대한마취통증의학회 조사 자료).

그래픽=이철원

한국에서 마취료 원가 보전율은 73%로 평가받는다. 마취를 할수록 병원은 손해이니, 병원에서는 마취통증의학과 의사를 늘리지 않았다. 마취료 저수가로 전신마취 마취통증의학과 의사가 병원을 떠나고, 남아 있는 의사들도 격무에 시달리다 병원을 떠나 의사 부족 사태가 악순환되는 구조다.

마취통증의학회는 우선적으로 중증도가 높은 심장 수술, 이식 수술, 두개골 개두술, 응급수술, 소아 마취, 산과 마취, 중환자 마취 등에 전신마취 가산율을 두 배로 높여서 숨통을 트고, 마취통증의학과 의사들이 본연의 수술실로 조속히 돌아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학회는 또한 마취 안전 약물 투여에 대한 보상, 수술 전 환자 평가에 대한 수가 신설 등도 요청하고 있다.

한동우(강남세브란스병원 교수) 마취통증의학회 기획이사는 “국민소득을 감안해도 전체적인 한국 마취료 수가가 일본의 1/7, 미국의 1/23 정도이기에 수가 개선이 문제 해결의 첫걸음”이라며 “이 상태로 가다가는 전국적으로 수술 마비 사태가 올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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