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의 맛과 섬] [194] 울릉도 오징어물회
맛은 혀끝으로만 느끼지 않는다. 눈, 코, 귀 등을 포함한 온몸으로 맛을 느낀다. 여기에 어느 장소에서 맛을 보느냐에 따라 감각이 달라진다. 그때는 정말 맛이 좋았는데 지금은 그 맛이 나지 않는다는 말은 재료나 손맛의 차이도 있지만 장소 때문일 수 있다. 내가 주목하는 것은 장소다. 오징어물회를 서울 인사동에서 먹는 것과 울릉도 도동항에서 먹는 것은 다르다. 게다가 울릉도 바다에서 당일 잡아온 오징어라면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울릉도 오징어물회 맛이 특별한 이유다.
해가 기울자 오징어를 잡는 배들이 하나둘 저동항을 빠져나간다. 배들이 향한 곳은 울릉도 서북쪽 현포리 앞바다다. 그곳은 수심 100미터에서 200미터에 이르는 곳으로 오징어가 머물기 좋은 곳이다. 어둠이 내리자 오징어 배들이 불을 밝혔다. 겨우 10척 남짓이지만 밝힌 불빛도 불야성인데, 100여 척이 조업에 나섰을 때는 어땠을까.
다음 날 이른 새벽 조업을 마치고 들어온 오징어 배 한 척을 만났다. 다른 배들은 조업 상황이 좋지 않았던 모양이다. 밤새 오징어 배에서 조업을 한 선원은 선장과 외국인 단 두 사람이었다. 물양장에 쏟아낸 오징어를 보자 여행객은 물론 주민들마저 나와서 구경에 나섰다. 옛날 같으면 이웃에게 오징어 몇 마리 싸서 맛이나 보라고 주었겠지만, 이제 줄 수도, 달라고 할 수도 없다. 그 맛을 아니 입맛만 다신다. 외국인 선원은 오징어가 담긴 물통을 오토바이에 싣고 바쁘게 오간다. 미리 주문한 횟집이나 식당에 배달하는 것이다. 어제 오징어물회도 이렇게 잡은 오징어였다. 건조하기 위해 해체 작업을 하는 오징어를 보니 1000여 마리쯤 될까. 배달한 것까지 더해도 2000마리는 넘지 않을 것 같다. 이 과정에서 나온 내장은 오징어내장탕이나 누런창찌개 등을 만든다.
오징어를 함지박에 담아 옮기던 중 한 마리가 탈출했다. 선주의 딸로 보이는 젊은 여성이 ‘오빠, 일당에서 만원 빼’라며 웃는다. 억수로 운 좋은 오징어다. 수온 상승으로 오징어잡이 조업 일수는 손으로 꼽을 만큼 적고, 어획량으로 기름값 충당하기도 어렵다고 한다. 오징어 물회 가격이 오른 이유다. 오징어회 가격 대신 ‘시가’라고 적혀 있는 곳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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