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미의감성엽서] 부조리극의 성스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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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스 라벨의 '볼레로'를 듣는다.
4분의 3박자로 계속 반복되는 리듬이 차츰차츰 내 내면으로 차오르며 형태도 없고 방향도 없는 무거운 불안 덩이를 잘게 잘게 부수며 서서히 나를 춤추게 한다.
연극 관계 일을 하는 몇몇 사람이 내 곁에 있어 초대권이 자주 생기는 덕분에 이오네스코의 연극은 물론 페터 한트케의 '관객모독', 사뮈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 이윤택의 '오구-죽음의 형식'이나 '시민K' '비닐하우스' 등등을 찬탄하며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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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 연극이 무대에 올랐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이제는 고전이 되어버렸음에도 이오네스코의 연극에는 시대를 초월하는 전위적 성스러움이 있다. 사람(배우)이 아닌 말(대사)이 연극의 대상이 되고, 그 말 자체가 하나의 등장인물이 될 수 있다는 데에 지금도 신선한 충격을 받고 있으니까.
그리고 이들 연극이 다른 연극들보다 더 좋은 건 보고 난 뒤에도 사유(질문)의 시곗바늘을 계속 돌려야 하고 그 답을 찾는 동안 이오네스코적이며 바케트적인 행복한 콤플렉스에 빠져 허우적대야 한다는 것이다. 어쨌든 올해는 이오네스코의 연극이 무대에 오르면 만사 제쳐놓고 보러 가야겠다. 참 오랜만에 이오네스코의 연극이 다시 보고 싶어지는 저녁. 그의 반어적 대사 속에서 번뜩이는 비수. 그 언어의 비수에 찔려 오랜만에 피 철철 흘리며, 그 피로 멋지게 시 한 편 쓰고 싶어지는 저녁. 볼레로와 이오네스코와 베케트와의 붉디붉은 애무의 즐거운 시간들!
김상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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