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정임수]승진 거부권 달라는 대기업 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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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들의 로망이 '굵고 짧게'에서 '가늘고 길게'로 바뀐 계기는 1997년 외환위기다.
외환위기 이후 조기 퇴직이 일상화됐지만 개인의 노후 준비나 사회 안전망은 이를 쫓아가지 못하면서다.
일찍 임원 달고 일찍 집에 가느니 '만년 부장', '만년 과장'으로 장수하겠다는 직장인이 늘어난 것이다.
호봉·직급 체계가 엄격한 공무원 사회나 금융권에선 실제 승진 발령을 거절한 사례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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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노사의 임금협상 테이블에 ‘승진 거부권’을 처음 올린 건 현대자동차 노조다. 2016년 임협에서 일반·연구직 직원들에게 과장 승진을 거부할 권리를 달라고 요구했다. 과장이 되면 노조를 탈퇴해야 하고 성과연봉제도 적용받는데, 인사고과 압박과 고용 불안에 시달리는 관리자가 되느니 노조 울타리 안에서 정년을 보장받겠다는 취지였다. 그해 현대중공업 노조도 승진 거부권을 요구하면서 두 회사 노조는 동맹 파업을 강행했다.
▷사측이 인사권 침해라며 거절했던 승진 거부권을 현대중공업 노조가 올해 임단협에서 재차 요구하고 나섰다. 8년 전에는 승진 거부 요구가 월권이다, 기상천외하다는 비판 일색이었지만 지금은 뜬금없지만은 않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승진·출세보다는 워라밸과 안정을 선호하는 MZ세대와 준비 안 된 노후 공포에 시달리는 중장년층 직장인에게 어필할 수 있는 이슈라는 얘기다.
▷대기업 노조들이 올해 임단협에서 일제히 ‘정년 연장’을 꺼내든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현대차·기아 노조를 비롯해 HD현대그룹 조선 3사, LG유플러스 노조 등이 60세 정년을 64세나 65세로 올리자고 요구하고 있다. 법정 정년은 2013년 60세로 연장된 뒤 변함없는데, 국민연금을 받는 나이는 지난해 63세에서 2028년 64세, 2033년 65세로 계속 늦춰지면서 ‘소득 절벽’이 길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다 보니 노동시장에서 퇴장하는 실질 은퇴 나이는 72.3세일 정도로 수많은 고령층이 정년 이후에도 일자리 주변을 맴돌고 있다.
▷우리보다 먼저 초고령사회로 진입한 일본은 수십 년에 걸쳐 정년을 높인 데 이어 기업들이 65세까지 ‘정년 연장’, ‘재고용을 통한 계속 고용’ ‘정년 폐지’ 중 하나를 택하도록 의무화했다. 비슷한 길을 뒤따라 걷는 한국이 참고할 만한 대안이다. 다만 노동계 주장대로 무작정 정년을 연장하면 기업 부담이 커지고 청년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논란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인구 소멸 걱정이 없던 때에 굳어진 호봉제 중심의 임금 체계, 노동시장 경직성, 법적 노인 연령 등을 함께 풀어야 정년 연장도, 일손 부족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정임수 논설위원 im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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