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되씹을, 국립대학 존재의 이유

기자 2024. 6. 11.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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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대학의 등록금을 150만엔(약 1300만원)으로 인상해야 한다.”

일본 문부과학성 중앙교육심의회 위원이자 사립대학인 게이오대학 이토 고헤이 총장의 제안이다. 150만엔은 국립대학 등록금의 3배에 달하는 금액이다. 이토 총장은 국립대학의 경쟁력 향상에 필요한 비용의 일부를 학생이 부담해야 하므로 국립대학의 등록금을 150만엔으로 인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경제적인 이유로 교육의 기회를 박탈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과연 등록금 인상이 해결책일까?

2004년 일본 정부는 개혁이라는 명목하에 국립대학을 독립행정법인으로 전환하고 관련 예산을 삭감했다. 이마저도 매년 1% 정도 삭감하고 있다. 국립대학은 경영합리화의 압박에 연구와 교육 환경에 투자할 여력을 상실해 가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학의 경쟁력 약화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영국의 대학 평가기관 QS(Quacquarelli Symonds)가 5일 발표한 세계대학평가에서 100위 안에 포함된 곳은 도쿄대(32위), 교토대(50위) 등 국립대 4곳이었고 대부분 순위가 떨어졌다. 국립대에 비해 많은 등록금을 내는 사립대학은 찾아볼 수 없다. 또 문부과학성이 자연과학 분야의 상위 10%의 논문 인용 수를 국가별로 분석한 결과(2023년) 일본은 역대 최하위인 13위를 기록했다. 경쟁력 저하의 원인이 등록금 때문이 아니라 2004년부터 시작된 국립대학의 개혁 정책에 있다는 지적이다. 실패한 대학 개혁의 책임을 등록금 인상이라는 방법으로 학생들에게 돌리려 해서는 안 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립대학은 등록금 인상에는 신중한 자세를 취해 왔다. 2005년 문부과학성은 국립대학의 표준 수업료를 연간 약 53만엔으로 책정했다. 20% 범위 안에서 인상할 수 있지만 등록금을 인상한 국립대학은 일부였다. 지난 20년간 등록금을 유지해 왔다. “평등한 교육 기회를 제공한다”라는 국립대학의 설립 목적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 왔기 때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일본의 고등교육에 대한 사적 지출 비중은 52%로 OECD 평균인 22%보다 매우 높다. 자녀 교육비가 터무니없이 높은 것으로 유명한 한국이 60%이니 상황은 비슷하다. 교육기관의 공공성은 훼손되었고 경제적 이유로 인한 교육 격차는 커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만약 국립대학이 등록금을 150만엔까지 인상한다면 국립대학의 존재 가치는 크게 훼손될 것이다.

지난 7일 전국의 86개 국립대학으로 구성된 국립대학협의회는 재정 상태가 한계에 다다랐다며 긴급 성명을 발표했지만 등록금 인상에는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도쿄대학이 내년도 등록금을 20%(약 11만엔) 인상하는 안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학내에서는 고등교육의 공공성을 훼손하는 등록금 인상에 반대하는 시위가 열리고 있다.

20년 만의 등록금 인상 움직임에 국립대학 등록금 150만엔 시대가 정말로 올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국립대학은 교육의 공공성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라고 할 수 있다. 국립대학의 존재 이유를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한국에서 국립대학의 등록금을 사립대학 수준으로 올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박진환 일본 방송PD

박진환 일본 방송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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