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깅스 입고 퇴근하기 민망했는데…" 직장인들에 인기 폭발 [현장+]

성진우 2024. 6. 1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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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개관한 서울 여의나루역 '러닝 스테이션'
락커·탈의실 갖춰…'퇴근길 러너' 사이서 입소문
무동력 '트레드밀'서 자세 교정도 받아
"러닝 문화 겨냥하며 여의도 색다른 면 부각"
10일 여의도 한강공원을 뛰고 있는 한 러닝 크루 / 사진=성진우 기자


"퇴근 후 더 이상 화장실에서 옷 갈아입지 않아도 되네요."

서울 여의도에 있는 한 증권사에 다니는 20대 직장인 강민선(가명)씨는 자신의 가방을 보관함에 넣으며 이같이 말했다. 강씨는 직장 동료와 거의 매일 여의도 한강공원을 뛰는 이른바 '퇴근길 러너(Runner)'다. 전에는 회사나 지하철 화장실에서 불편하게 옷을 갈아입었다는 그는 최근 달리기 전 반드시 서울 지하철 5호선 여의나루역을 찾는다. 물품 보관함, 탈의실 등을 갖춘 '러너 스테이션'에 들리기 위해서다.

10일 오후 7시께 여의나루역. 퇴근하는 직장인들이 오가는 개찰구 옆 러너 스테이션에는 벌써 많은 러너들이 삼삼오오 모여있었다. 안이 훤히 보이는 통유리창과 최신식 헬스장 못지않은 인테리어로 시선을 끄는 이곳은 최근 여의도 러너들의 성지로 떠올랐다. 이들은 퇴근길 단정한 복장으로 이곳에 들려 짧은 반바지 등 달리기 적합한 복장으로 갈아입고 나와 한강으로 향하고 있었다.

강씨는 "여의나루역이 한강과 바로 인접해있다는 점에서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한다"며 "러너 스테이션에서 옷을 갈아입으면 운동복으로 도심을 다니지 않아도 돼 덜 민망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늘은 좀 피곤해서 여의도 공원을 도는 코스로 뛰려고 한다"며 직장 동료와 함께 서둘러 2번 출구로 발걸음을 옮겼다.

 퇴근길 러너들의 성지, '러너 스테이션' 직접 가보니

지난달 21일 여의나루역에 문을 연 러너 스테이션은 서울시가 지하철 내 유휴공간을 시민 문화공간으로 바꾸는 '펀스테이션' 사업의 일환으로 마련됐다. 공간 조성에 26억5000만원의 예산이 투입됐다. 현재 역내 2개 층(B1~M1층) 일부 공간을 사용 중이다.

서울시가 도심지인 여의도와 '런(Run)' 테마를 결합한 이유는 바로 여의도 한강공원과 여의도 공원이 런닝 코스로 주목받고 있어서다. 러너 스테이션에는 총 58개의 물품 보관함과 4개의 탈의실을 갖추고 있어 사용자는 특별한 준비 없이 운동복과 운동화만 가져오면 바로 여의도에서 러닝을 즐길 수 있다.

서울 여의나루역 '러너 스테이션' / 사진=성진우 기자


아직 운영한 지 채 한 달이 안 됐지만, 달리기 애호가인 직장인들에겐 벌써 입소문이 났다. 여의도뿐만이 아니라 마포 등 인근 지역 직장인들도 러너 스테이션을 찾고 있다. 서울 마포구가 직장인 40대 길민석(가명)씨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보고 알게 돼 오늘 처음 방문했다"며 "집은 이 근처라 날이 풀리면 주로 여의도에서 뛰는데, 이젠 집을 들리지 않고 바로 와서 자주 운동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러너 스테이션 관계자는 "시설은 상시 개방돼있고, 오후 4시부터 8시30분까지 관리자가 상주한다"며 "아직 정확하게 집계된 것은 아니지만, 하루 평균 130~140여명이 찾고 보관함 사용도 100건 이상이다. 개관 직후부터 방문자가 꾸준히 늘고 있다"고 말했다.

러너 스테이션에 설치된 물품 보관함과 탈의실 / 사진=성진우 기자


이른바 '러닝 크루'들 사이에서도 반응이 뜨겁다. 이날 만난 30대 직장인 김성진(가명)씨는 "4명의 러닝 크루원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현재 10여명 규모의 러닝 크루에 속해있다. 보통 일주일에 두 번씩 여의도를 뛰는데, 지난달부터는 아예 러닝 스테이션을 모이는 장소로 정했다. 김씨는 "퇴근 후 직장인은 시간이 두 배로 빨리 가지 않냐. 모여서 준비하는 시간이 줄어서 좋다"며 웃음을 보였다.

러너들에게 입구 옆 기둥에 설치된 '러닝코스 랭킹 보드'도 운동을 끝낸 후 꼭 들려야 하는 곳이다. 코스 모양이 고구마 모양이라 '여의도 고구마 코스'로 불리는 한강공원 둘레길 8.4㎞를 달리면 크루와 개인의 랭킹과 기록이 등재되기 때문이다. '런플' 어플리케이션(앱)을 다운받아 활성화하면 누구나 이곳에 자신의 이름을 올릴 수 있다.

10일 서울 여의나루역 '러너 스테이션' 내 설치된 트레드밀을 이용중인 시민들 / 사진=성진우 기자


다음 달 말까진 별도 예약 없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무동력 '트레드밀' 역시 인기였다. 시설 안쪽에 놓인 두 대의 트레드밀 뒤로 대기자가 끊임없이 있었다. 보통 러너들은 이 기구를 통해 한강에 나가기 전 잠시 몸을 풀거나, 관리자에게 간단히 자세 교정을 받았다. 바로 앞 화면에서 현재 달린 거리 등이 표시된다.

경기도 성남에 거주하는 20대 임미연(가명)씨는 "트레드밀에서 840m 정도 뛰어보고 오늘 어떤 코스로 뛰어야 할지 결정하려고 한다"며 "몸 상태가 좋으면 여의도 둘레길을 완주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러너들이 자신의 SNS에 러너 스테이션 곳곳에서 찍은 인증샷을 올리면서 더욱더 많은 이용자가 몰리고 있다"며 "도심지인 여의도가 '러닝'의 메카가 될 수 있도록 더 많은 현장의 소리를 듣고 다양한 러닝 관련 프로그램을 기획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서울시는 러너 스테이션 외에도 올해 7호선 자양역과 2호선 뚝섬역, 6호선 신당역, 내년에는 2호선 시청역, 8호선 문정역 등 10곳에 각자 다른 펀스테이션을 개관할 예정이다. 자양역은 한강 변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 뚝섬역은 다목적 운동 공간으로 조성된다. 신당역에는 액티비티 스포츠를 중심으로 한 복합문화공간이 마련될 예정이다.

성진우 한경닷컴 기자 politpet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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