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건정재정’ 고집에 기존 저출생 예산 뜯어고치기

손지민 기자 2024. 6. 11.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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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 승격을 앞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저고위)가 연신 '저출생 예산 재구조화'를 강조하고 나섰다.

그동안 효과가 떨어진단 비판을 받아온 저출생 정책을 들여다보고 구조조정을 하겠단 취지지만, 정부의 '건전재정' 기조 아래서 저출생 관련 예산을 확대하고 영향력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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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고위·KDI ‘예산 재구조화’ 세미나
서울의 한 공공산후조리원 신생아실의 모습. 연합뉴스

부처 승격을 앞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저고위)가 연신 ‘저출생 예산 재구조화’를 강조하고 나섰다. 그동안 효과가 떨어진단 비판을 받아온 저출생 정책을 들여다보고 구조조정을 하겠단 취지지만, 정부의 ‘건전재정’ 기조 아래서 저출생 관련 예산을 확대하고 영향력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11일 서울 영등포구에서 저고위와 한국개발연구원(KDI)의 공동 주최로 열린 ‘저출산 예산 재구조화 필요성 및 개선방안’ 세미나에서는 저출생 정책 예산의 재구조화뿐 아니라 규모 자체의 확대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이어졌다. 저고위 민간위원을 맡고 있는 홍석철 서울대 교수(경제학부)는 토론에서 “기획재정부에선 효과성이 낮은 저출생 대응 예산을 재구조화해서 필요한 예산을 마련하라는 의견이 있다고 하는데, 사실 불필요한 예산의 규모가 크지 않다”며 “이걸 재구조한다고 해서 앞으로 필요한 재원을 마련할 수가 없다. 그것보다는 추가로 필요한 저출생 대응 예산 규모를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철희 서울대 교수(국가미래전략원 인구클러스터장)도 “있는 예산을 어떻게 재구조화할지도 중요하지만 규모 자체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어떤 정책의 효과가 없다면 정책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지만, 그 정책에 충분한 재원과 지원이 없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저고위가 예산 재구조화를 강조해온 배경에는 ‘실질적인 저출생 대응 정책 예산은 부족하다’는 논리를 강화해 예산 확대를 이끌어내기 위한 의도가 담긴 것으로 보인다. 저고위가 지난달 설립한 인구정책평가센터는 이날 세미나에서 올해 7월 말까지 저출산·고령사회 대응에 영향이 큰 정책을 중심으로 전달체계, 유사·중복성, 효과성 등을 평가한 결과를 내놓겠단 계획을 발표했다. 사실상 저고위의 저출생 예산 재구조화 ‘첫발’인 셈이다. 대상 사업군은 양육 분야로, 보건복지부와 여성가족부의 정책이 해당된다.

실질적인 저출생 대응 정책 예산이 부족하다는 근거도 제시했다. 한성민 한국개발연구원 공공투자정책실장은 지난해 중앙부처의 저출생 대응 사업 142개를 분석한 결과, 47조원이 투입됐지만 저출생 대응과 직결된 사업 예산은 그 절반인 23조5천억원(84개 사업)가량에 불과하단 내용을 발표했다. 특정 분야에 예산이 쏠려 있단 지적도 나왔다. 저출생 대응 직결 사업 예산 약 23조5천억원 가운데 양육비용 절감 예산은 약 20조5천억원, 일·가정 양립 예산은 약 2조원, 결혼·출산 장려 예산은 약 1조원이다. 한 실장은 재구조화 방향에 대해 “출산율 제고와 직접적 연관성이 높은 사업을 중심으로 저출생 사업을 재편해 재정 투입을 확대하고, 국가적으로 계속 추진해야 하는 사업은 개별 부처에서 사업 지속 여부를 검토해야 한다”고 짚었다. 그동안 저출생 정책으로 분류된 정책 가운데 출산율과 관련이 깊은 사업은 재정을 더 투입하고, 크게 관련이 없는 정책은 소관 부처에 맡기겠다는 취지다.

관건은 건전재정 기조를 이어가고 있는 기획재정부의 협조다. 기재부 관계자는 저고위의 행보에 대해 “예산을 늘리려면 그만큼 다른 예산을 줄이는 것이 원칙”이라면서도 “국가가 전략적으로 가져가야 할 사업들은 조금 더 고려할 순 있다”며 말을 아꼈다.

손지민 기자 sj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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