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마시는 걸론 안돼요”… 폭염 속 온열질환 대책 유명무실

이예림 2024. 6. 11.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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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을 아무리 마셔도 더위가 가시질 않아요."

지난해보다 일주일 먼저 찾아온 폭염과 함께 올여름 무더위가 예고됐지만, 야외 작업자들의 온열질환 대책은 미흡하다는 지적이 현장에서 나오고 있다.

아직 서울을 비롯한 대부분의 중부 지방에서는 폭염주의보가 발효되지 않았지만, 작업 현장에 따라 체감기온 등 환경이 다르다는 점에서 선제적인 대책이 필요하단 지적이 높다.

이상고온 현상이 지속되면서 고용노동부는 '폭염 대비 온열질환 예방 가이드'를 전국 공공기관과 사업장에 배포하고 대비를 촉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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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무더위에 현장 비상
열사병·열탈진 등 환자 급증세
2023년 사망자 32명… 1년 새 3.5배↑
정부, 사업장에 예방 가이드 배포
10분 휴식 등 강제 아닌 권고 명시
“눈치 보여 못 쉬어… 현실성 떨어져”
전문가도 “무책임한 정책” 비판
강릉 첫 열대야… 2023년比 6일 빨라

“물을 아무리 마셔도 더위가 가시질 않아요.”

서울의 한낮 최고기온이 32도까지 치솟은 11일 오후. 서울 강남구의 한 도로 재포장 작업 현장에서는 작업자들이 목에 두른 수건으로 연신 땀을 닦아내고 있었다. 이들이 작업 중인 차도 위는 달궈진 아스팔트의 열기와 지나가는 차량의 매연이 더해져 찜질방을 방불케 했다. 현장의 작업자들에게 온열질환 대비를 어떻게 하는지 묻자 “물을 많이 마신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서울 시내에서 한 시민이 손으로 햇빛을 가리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보다 일주일 먼저 찾아온 폭염과 함께 올여름 무더위가 예고됐지만, 야외 작업자들의 온열질환 대책은 미흡하다는 지적이 현장에서 나오고 있다. 아직 서울을 비롯한 대부분의 중부 지방에서는 폭염주의보가 발효되지 않았지만, 작업 현장에 따라 체감기온 등 환경이 다르다는 점에서 선제적인 대책이 필요하단 지적이 높다.

11일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한반도 기후가 동남아와 같은 덥고 습한 형태로 바뀌면서 온열질환 환자는 빠르게 늘어나는 추세다. 열사병·열탈진 등 온열질환자는 2020년 1078명, 2021년 1376명, 2022년 1564명, 2023년 2818명으로 증가세를 보였다. 특히 지난해 온열질환으로 인한 사망자는 직전 해(9명) 대비 3.5배가량 증가한 32명이 나왔다.

이상고온 현상이 지속되면서 고용노동부는 ‘폭염 대비 온열질환 예방 가이드’를 전국 공공기관과 사업장에 배포하고 대비를 촉구하고 있다. 체감온도가 31도를 넘으면 사업장은 폭염 단계별로 고용부가 권고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세부적으로는 폭염 단계별로 매시간 10분 이상 휴식을 제공하고, 오후 2∼5시엔 옥외작업을 단축 또는 중지하도록 지도하고 있다.
그러나 폭염관리 대책이 ‘강제’가 아닌 ‘권고’에 그치면서 현장에서 실제 적용되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날 도로 재포장 작업 현장에서 만난 작업자 A씨는 “현실성이 떨어지는 대책”이라면서 “안 그래도 더운 날엔 손도 부족한데 누가 나서서 쉬라고 하겠냐”고 토로했다. 서울 서초구 소재의 한 공사현장에서 만난 작업자 B씨도 “누가 강제로 쉬라고 하지 않는 이상 다들 눈치 보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현장 목소리와 달리 고용부는 2022년부터 열사병이 중대재해처벌법 대상에 포함되면서 사업주가 권고안을 무시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중대재해법은 1년에 3명 이상 열사병 환자가 생기거나 1명이라도 사망하면 사업주를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11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나루역 전광판에 30도를 나타내고 있다. 뉴스1
사실상 사업주 책임을 강조한 것인데, 전문가들은 무책임한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이병훈 중앙대 명예교수(사회학)는 “열사병이 중대재해로 인정되는 상황이면 더욱이 예방이 중요하다”며 “사람이 죽고 나서 처벌하기 전에 중대재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게 행정 부처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위험이 집중되는 건설 현장의 안전 지침은 현실과 괴리가 더 크다. 휴식 시간의 기준이 되는 체감온도가 현장에선 대부분 기상청 발표와 다른데, 사업주가 작업장에 온·습도계를 비치해 관리하는 규정마저도 법제화돼 있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재희 건설노조 교육선전실장은 “지난해 자체 조사 결과 기상청 예보와 실제 현장 온도 차이가 평균 6도 이상이었다”며 “죽을 만큼 더운 게 아니라, 정말 더워서 죽는 게 건설 현장”이라고 말했다.
녹조 뒤덮인 광교저수지 수도권 지역을 비롯한 전국 곳곳에 폭염주의보가 발효된 11일 경기 수원시 장안구 광교저수지에 녹조가 발생해 수질정화장치가 가동되고 있다. 수원=뉴시스
한편 기상청은 전날 밤사이 강원 강릉시에서 올해 첫 열대야가 관측됐다고 밝혔다. 열대야는 오후 6시1분부터 다음 날 오전 9시까지 최저 기온이 25도 이상인 경우를 말한다. 올해 첫 열대야는 지난해 양양에서의 첫 열대야보다 6일 빠르게 나타났다. 전날 폭염주의보가 발효된 대구와 경북은 이날도 체감온도가 31도를 웃돌았다. 대구는 낮 최고기온이 34도까지 올랐다.

이예림 기자 yea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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