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르겐 몰트만, 전쟁으로 절망한 인류에게 불굴의 희망 준 신학자
지난 3일 나의 스승 위르겐 몰트만 박사가 세상을 홀연히 떠나셨다. 향년 98. 갑자기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느낌을 받았지만, 어느 정도는 예상한 일이라 침착하려고 애쓴다. 그가 배출한 한국인 제자(9명) 중 6번째 제자로서 나는 그로부터 신학적으로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그를 나의 스승으로 삼아서 새로운 신학을 깨우치고, 귀국 후에는 10차례 이상 한국을 방문한 그의 강연을 자주 통역하며, 그의 저서 9권을 번역할 수 있었던 것은 나의 생애 중 최고의 행운과 기쁨이었다.
그는 20세기 신학의 교부라고 불린 칼 바르트(1886-1968) 이후 세계적으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신학자였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절망 속에서 새로운 희망을 찾던 인류에게 그는 영원히 꺼지지 않는 희망의 불꽃을 던졌다. 그의 첫 저서 ‘희망의 신학’(1964)은 에른스트 블로흐의 책 ‘희망 원리’로부터 큰 자극을 받았지만, 기독교 희망의 본질을 신학적으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낸 불후의 명저가 되었다. “무신론 없이는 메시아적 희망도 없다”라고 말한 블로흐가 사회적 유토피아를 철학적으로 입증하려고 했다면, 몰트만은 약속과 부활의 하나님으로부터 희망의 근거와 동력을 입증하려고 노력했고, 그 토대 위에서 현실 속에서 실현되어야 할 정의와 평화, 생명의 유토피아를 기대했다.
그 뒤에도 그는 세계적 명성과 공감을 남긴 많은 명저를 출간했다.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1972)을 통해 그는 하나님의 본질이 그리스도의 고난 속에서 가장 분명히 드러났고, 이 고난 속에서 인간의 고난과 연대하고 극복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분명하게 드러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를 통해 그는 불의와 독재에 저항하며 고난을 당하는 세계의 민중들에게 깊은 연대감과 위로를 전했다. 그 뒤 나온 모든 저서에서도 그는 탁월한 이론적 설명을 넘어서 위기에 처한 교회와 세상, 인간과 지구를 위한 실천적 대안을 제시했다.
그는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암울한 유신 독재 시절부터 고난을 받는 한국인을 향한 깊은 우정과 연대감을 표했으며, 기복주의, 내세주의, 개인주의, 성장주의, 물질주의에 빠진 한국 교회를 각성하는 충격을 주었고, 종말론적 희망 속에서 세상을 위한 책임 있는 참여를 독려했다.
1975년 한국을 처음 방문한 그는 박봉랑, 안병무, 서남동 교수 등과 신학적 대화를 나눴으며, 한국의 ‘민중신학’을 세계에 널리 알리려고 애썼다. 그는 한국 교회의 활기찬 모습, 정치적 저항과 고난, 한국 기독교인의 영성을 높이 평가했으며, 이를 자신의 신학 안으로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그의 신학은 해방신학, 민중신학, 여성신학, 오순절 신학, 장로교 신학(통전적 신학, 온신학) 등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나와 그의 만남은 먼저 그의 저서를 통해 이루어졌다. 신학생 시절 읽은 ‘희망의 신학’은 기독교 복음의 본질을 명쾌하고 탁월하게 해명한 책으로서 나의 신학적 사고에 신선한 자극과 강력한 도전을 주었다. 그의 두 번째 명저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은 내게 독일어 공부를 위한 소중한 자료가 되었고, 독일 유학의 꿈을 품게 해 주었다.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독일어 시험을 통과한 후 1984년 나는 몰트만의 자택으로 달려갔다. 독일인으로서 매우 근엄하고 차가울 것이라는 나의 편견은 부드럽고 친절한 그의 환대 앞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그는 유학 시절 나에게 재정적인 도움도 기꺼이 주셨다. 그래서 나는 그의 은혜에 보답하려는 마음으로 그의 책을 최대한 많이 번역하려고 했다. 특히 나는 그의 첫 저서만이 아니라 마지막 저서 ‘나는 영생을 믿는다’(2020)도 번역할 수 있는 행운을 누렸다.
그가 남긴 신학적 영향력은 몇 문장으로 요약하기 어렵지만, 그의 모든 저서 속에는 무엇보다 불굴의 희망이 도도히 흐르고 있다. 96살에 그는 어느 기자와 나눈 대화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새로운 아침 때문에 하나님에게 감사할 때마다 나는 새로움이라는 말에 사로잡힙니다. 새로운 기회, 새로운 생명 그리고 새로운 영, 새 노래를 불러라 (중략) 아침마다 나는 새로운 영을 받습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려고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는 세상과 이별하기 한 해 전에 생일 축하 가족 모임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유언처럼 남겼다. “나와 함께 생일을 축하하려고 여러분 모두가 오셨으니 기쁩니다. 4월8일에 97살이 된 게 믿어지지 않습니다. 1943년 내 옆의 친구가 폭탄에 맞아 죽었을 때, 나도 이미 죽었어야 했을 것입니다. 아침마다 내가 여전히 살아 있고 생명의 기쁨과 함께 새로운 날로 들어간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물론 나는 죽게 될 시간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나는 그리스도의 부활에 근거하여 무덤에서 부활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의 시간에 영원한 생명으로 부활하리라고 믿습니다. (중략) 영원한 생명으로 부활한다는 것은 삶과 죽음 속에서 나의 희망입니다. 나는 영원한 생명을 누릴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입니다. 따라서 죽음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태어나는 생일과 같습니다. 그것은 새로운 날의 아침마다 내게 신선한 용기를 줍니다.”
튀빙겐 공동묘지에 묻힌 그의 비석에는 그의 유언처럼 다음과 같은 말이 새겨졌을 것이다. “위르겐 몰트만, 1926년 출생하고, 2024년 부활하다.” 절망과 죽음에 처한 인류를 위해, 그리고 날로 파괴되어가는 세상과 지구를 위해 그는 살아 있을 때처럼 죽음 이후에도 영원히 꺾이지 않는 희망을 선사할 것이다. 나의 위대한 스승에게 무한한 존경과 깊은 추모를 드린다.
이신건/서울신학대 은퇴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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