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DT인] 이상복 서강대 교수 "고쳐야 할 금융법이 많습니다"

김남석 2024. 6. 11.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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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수저에서 금융법 최고 전문가까지
이상복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가난 때문에 초등학교도 간신히 진학했던 '흙수저'에서 우리나라 최고의 금융법 전문가가 된 교수가 있다. 이상복(61)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다. 새벽 신문 배달로 실물경제를 익혔고, 먹고 살기 위해 변호사가 됐다. 자신이 전공한 경제와 생존을 위해 취득한 사법시험 합격증을 합쳐 우리나라에 없었던 '증권 전문 변호사'의 길을 만들어 냈다.

"저는 열등감이 굉장히 강한 사람이었어요. 지금은 그렇게 보이지 않지만." 왜 하필 '법'을 선택했냐는 질문에 이 교수가 웃으면서 한 대답이다. 어린 시절 가난으로 아픈 여동생이 제대로된 치료도 받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뒤 돈을 벌기 위해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신문 배달을 했다.

"나쁜짓도 많이 했죠. 아버지 전대에서 돈을 훔치기도 했고, 아이들의 연필을 훔치기도 하고. 그러다 신문 배달로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시작했는데, 첫 월급도 못받고 폐간이 됐어요. 그렇게 폐업으로 인한 이직을 어린 나이에 경험했죠."

중·고등학교에 진학한 계기도 신문배달이었다. "보급소에 다니는 형들이 학교 안 다니는 애가 없었어요. '아 중학교 안가면 신문 못돌리는데' 걱정하고 있었는데 내 통장에 돈이 있잖아요. 그렇게 내가 번 돈으로 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어요."

이 교수는 중학교에서 만난 친구 때문에 인생이 바뀌었다고 했다. 당시 반에서 1등만 하던 친구가 '집안을 일으키려면 대학을 가야 한다. 가기만 하면 다 바뀐다'는 친구의 말에 부모님의 반대도 뒤로 하고 신문배달로 번 돈을 가지고 대학까지 진학했다.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이 교수의 인생을 또 한번 바꾼 것도 '돈'이었다. "가난을 면하고 무시당하지 않고 살려고 봤더니 우리나라에서 제일 어렵다는게 사법시험이라고 하더라고요. 비법대생이 사법고시에 붙는게 그렇게 어렵다길래 도전했죠."

사법시험에 합격한 그는 우연한 계기로 '금융법'을 마주했다. "검사 시보는 중앙지검에서, 판사 시보는 서울 고등법원에서 했더니 동기들이 전문기관 연수라도 좋은 곳좀 양보하라고 하더라고요. 결국 좋은 곳을 양보하고 간 곳이 증권거래소인데 이게 운명이 됐죠."

그는 거래소 연수에서 선물이나 옵션, 불공정 거래, 주식, 채권들이 눈에 들어왔다고 했다. "경제학을 어쨌든 해서 그런지 실물 경제는 친숙도가 있었죠. 그런데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뉴욕거래소에는 변호사가 있는데 당시 우리나라에는 없었습니다."

결국 가족들의 반대에도 거래소를 직장으로 선택하면서 금융법 전문가의 길이 시작됐다. "거래소에서 일하는 동안 증권법학회도 만들고, 사람도 모았는데 증권거래법 책이 있나 봤더니 국내에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때 '아, 이거 내가 먼저 가서 깃발 꽂는다' 생각했습니다."

이후 증권법을 하려면 자본시장의 첨단을 걷는 미국을 다녀와야 한다는 생각에 미 스탠포드에서도 공부를 마치면서 증권법 박사 학위까지 취득했다.

이후 거래소에 복직한 이 교수는 여기서 우리나라 금융법에 대한 한계도 많이 경험했다고 했다. "기업에 대한 규제가 너무 심했어요. 지금까지도 긍정적(positive) 규제와 부정적(negative) 규제에 대한 얘기가 나오잖아요. 그때 당시에도 일일이 규제를 나열하지 말고, '이 것만 빼고 다 해'라는 긍정적인 규제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규제 완화와 함께 '금융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 금융사 중에 해외에 나가 성공한 곳이 없어요. 기본적으로 언어적인 문제와 전문성, 사고 방식, 개방적인 사고방식이 모두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그는 2015년부터 6년간 금융위원회 증권선물위원으로도 활동했다. 당시 이른바 '라임 사태'가 터졌다. 그는 그 때부터 금융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지금까지도 유효한 말인데, 금융 상품을 사는 사람도 모르고 파는 사람도 모르고, 상품 판매를 감독해야 하는 사람도 잘 모르고, 심판하는 사람까지도 몰랐던 것 같아요. 소비자와 판매자를 위한 교육, 특히 금융사 직원을 위한 금융 윤리 교육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라임 사태뿐 아니라 최근 문제가 불거지고 있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사태 등도 금융교육으로 막을 수 있었다고 했다. "2011년 저축은행 사태 당시에 금융 지식이 풍부했고, 금융 윤리가 갖춰졌다면 무분별한 부동산 PF를 막을 수 있었고, 여기에서 금융 당국과 감독 당국도 책임을 피할 수 없다고 봐야죠."

현재 금융 관련 법률 중에 가장 고치고 싶은게 있냐는 질문에는 새마을금고와 농·수산림협동조합 등 '상호금융기관'에 대한 법률이라고 했다. "동일 기능, 동일 규제가 원칙인데 상호금융기관은 은행의 역할을 하면서도 각각의 개별법에 제한을 받죠. 사실 금융업이 주된 사업인데, 그렇다면 일반 은행과 동일한 규제를 받아야 해요. 그게 급선무입니다."

이 교수는 여전히 '서민 금융'으로 불리는 상호금융의 중요성을 학계와 업계, 정계 등에 꾸준히 제기하고 있다. "당국에서 신협, 농협, 수협, 산림조합, 새마을금고를 모아 규제 관련 토론을 하기로 했는데, 딱 두 군데만 참석했어요. 자기들한테 불리한 법은 풀어달라고 하면서, 자신들을 통제하기 위한 법에 대해서는 피하려고 합니다. 최근 사고가 많아지고 있는 상호금융기관들도 항상 억울하다고만 하고 있는 실정이죠."

그는 은행들이 금융당국의 통제나 감독을 받는 것과 달리 각각의 기관들이 행정안전부, 산림청 등의 감독을 받으면서 '동일 기능, 동일 규제' 원칙이 깨졌다고 했다. "금융업을 잘 모르는 조합이나 행정부 등의 감독을 받는 것보다 전문성을 갖춘 금융당국이 감독해야죠. 특히 최근 이슈된 내부통제 같은 지배구조 문제인데 은행과 증권사, 보험사, 여전업 모두 내부 통제를 정하고 있는 것 만큼 5개 상호금융기관도 '상호금융기관 지배구조 개선법'을 마련해야죠."

이를 위해서는 정치권이나 정부부처의 노력도 필요하다고 했다. "상호금융기관들이 지역구에서 갖는 힘이 세죠. 작년에 새마을금고 이슈로 개정안이 올라갔는데 결국 모두 폐지됐죠."

그는 과거 금융감독원장 하마평에도 올랐다. 그에게 금융당국의 수장이 된다면 가장 먼저 해결하고 싶은 문제를 묻자 '연체율'이라고 답했다. "지금 나와있는 것보다 금융권의 연체율이 높을 거에요. 특히 5월과 6월에 만기가 몰린다는데, 과거 코로나 팬데믹 당시 자영업자 소상공인 대출 만기 연장해줬던 부분들도 동시에 만기가 돌아오면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아무도 생각을 안하고 있어요. 여기에 가계부채까지 맞물리고 앞으로 부동산 PF까지 가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러면서 '토털 연체율'을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영업자, 소상공인, PF까지 나갈 돈들은 많은데 들어오는게 없어요. 이자나 원금도 안들어오는데, 이걸 나라에서 메워줄 수도 없죠. 시장이 이렇게 어려운데 자금을 어떻게 조달하겠습니까. 또 신용카드 회사는 여신 기능밖에 없는데 이 상황에서 여전체로 자금 조달하려고 발행하면 그건 누가 인수할까요. 결국 모든 금융기관의 연체율 관리가 1차적인 과제가 될 것 같습니다. 시스템의 위기로 가지 않게 개별 기관의 위기로 끝나게끔 막아야겠죠."

향후 목표로는 '유튜브'를 꼽았다. "금융문맹 없는 사회를 만들자는게 제 주장이었고, 이를 대중화하기 위해서 더 쉽게 책을 쓰고 대중서를 활용해서 강의를 하고 싶어요. 아줌마, 아저씨, 어르신 모두 들을 수 있는 유튜브를 시작할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 비슷한 뜻을 가진 사람들을 모아 금융교육을 광범위하게 확장해보고 싶습니다."

김남석기자 kns@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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