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는 마약범죄… 기는 수사… 위장·잠입수사 법안 또 폐기 [일상 스며든 마약, 당신을 노린다]
美·獨 등 선진국 위장수사제 허용
체포·체증 어려운 수사 효율성 ↑
타국 대비 경미한 처벌도 '문제'
외국 조직 피신·유통 거점 부상
마약 유통과 판매가 대면 방식에서 비대면 방식으로 급속히 발달했지만 국내 수사 기법은 낙후돼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코인 결제와 텔레그램 등의 SNS, 던지기 수법 등으로 이루어지는 비대면 마약 판매는 현행 수사 체계로는 효과적으로 피의자 적발이 쉽지 않다. 적발 되더라도 총책을 잡기는 어려워 위장수사 범위를 넓히는 등 법 개정도 필요하다는게 전문가들의 지배적인 의견이다.
■ 위장·잠입수사 법안 또 폐기
11일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21대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강준현 의원이 마약류 관리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폐기됐다. 강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은 잠입 수사를 도입하는 내용을 담았다. 추적이 쉽지 않은 마약류 범죄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다른 방법으로는 죄의 실행을 저지하거나 범인의 체포 또는 증거 수집이 어려운 경우에 한해 잠입수사를 허용해야 한다는 얘기다. 개정안은 수사기관이 수사의 종류·목적·대상·기간 등을 서면으로 기재해 법원에 신청서를 제출하고, 허가를 취득받아 신분위장 수사를 도입할 수 있게 하고 있다.
현행법은 마약류 범죄에 대해 신분위장수사 관련 규정이 없다. 경찰이나 검찰이 잠입수사에 성공하더라도 이에 대한 적법 여부는 법원 판결에 따라 결정된다. 형사들이 마약조직에 잠입해 조직을 일망타진하는 방안은 국내법상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수사 관계자들은 신분 위장수사나 잠입수사가 도입돼야 마약범죄의 수괴를 잡기 수월해진다고 입을 모은다. 마약유통은 총책이 중간유통책, 드라퍼 등 세부 하부 조직을 꾸려 유통하기에 수사기관에서 하부 조직원을 체포해도 수괴들까지 적발하여 체포하기까지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총책의 경우 국외에서 활동하는 경우가 많아 이들은 통상 신분을 드러내지 않는다.
현재 미국·독일 등의 선진국에서는 마약류 범죄 수사를 위해 신분을 위장하는 위장수사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도 신분위장 수사를 허용하고 있지만 마약수사에서는 여전히 적극적인 위장수사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
강 의원의 개정안뿐만 아니라 33개 마약 관련 계류 법안이 있었지만, 이번 21대 국회가 끝남에 따라 모두 폐기 수순을 거쳤다. 따라서 새롭게 개원한 22대 국회에서 다시 발의해야 한다.
■ 주변국 비해 처벌도 약해
법조계 일각에서는 위장수사 허용도 문제지만 국내 마약 사범들에 대한 처벌이 경미하다고 지적한다. 대법원 양형기준표에 따르면, △투약과 단순소지 최대 4년이하 △매매·알선 최대 14년이하 △수출입·제조 최대 14년이하의 징역에 처하게 되어 있다. 최대 14년 이하의 징역형은 중국, 베트남, 싱가포르 등 주변 국들과 비교해 처벌이 약하다. 중국, 베트남 등 인근 국가의 경우 마약사범에 대해 사형에 처하는 등 마약사범에 대한 처벌 수위가 매우 높다.
최근 마약범죄의 대량화 추세를 반영해 대량범의 권고 형량범위를 상향하고, 특정 마약범죄에 대한 마약가액이 10억원(필로폰 약 10kg, 33만회 투약 분량) 이상인 구간을 신설해 최대 무기징역까지 권고하도록 일부 개정됐지만 여전히 처벌이 상대적으로 경미하다.
이처럼 처벌이 타국 대비 경미하다는 이점 때문에 최근엔 해외 마약사범들이 한국을 마약제조 및 유통 거점으로 삼고 활동하다가 적발되기도 한다.
최근 해외에서 제조·밀수·유통을 벌여온 외국인 마약사범이 싱가포르 수사기관이 추적해오자 한국으로 피신, 마약거점을 차렸다가 최근 검거됐다. 이들이 한국에 거점을 차린 이유가 싱가포르 등 주변국에 비해 한국의 마약처벌 수위가 낮았기 때문이라고 진술해 이러한 우리사회 마약사범 처벌 문제를 단면적으로 나타내기도 했다.
미래로 법률사무소 이은성 대표 변호사는 "최근 마약사범이 급증하고, 그 수법이 교묘해지고 있다"면서 "늘어나는 마약범죄를 막기 위해서는 범의유발형 위장수사를 마약범죄에 한하여 합법화하고, 처벌수위 또한 단순 투약이라도 강하게 처벌할 수 있도록 법률과 양형기준 모두 개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wschoi@fnnews.com 최우석 변호사·법조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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