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민방 파고든 'AI 앵커'… 혁신일까 현실일까
매출 급감 속 단순활용 아닌 '인간 대체'… 기대반 우려반
인공지능(AI)이 DJ가 되어 라디오 음악방송을 진행하고(KBS ‘누군가 어딘가에’) PD로 분해 예능 프로그램을 만들더니(MBC ‘PD가 사라졌다’) 이젠 지상파 메인뉴스 앵커 자리까지 꿰찼다. 지역방송 그중 지역민영방송에선 최근 ‘AI 앵커’ 도입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AI가 뉴스 제작에 활용되는 것을 넘어 인간을 대체하게 되면서 언론계 전반에 고민과 숙제를 남기고 있다.
6월 현재 지역민방 두 곳 중 한 곳꼴로 AI 앵커를 도입했거나 도입을 검토 중이다. 지난 3월24일 CJB청주방송이 제일 먼저 주말 뉴스에 AI 앵커를 도입했고, 5월11일부턴 JIBS제주방송이 그 대열에 합류했다. G1방송(강원)도 오는 15일부터 토요일 뉴스에 AI 앵커를 활용할 예정이며, KNN(경남)은 7월 시범 도입을 준비 중이다.
지역민방이 AI 앵커 도입에 적극적으로 나선 배경엔 ‘혁신’보다는 ‘현실’ 요소가 크게 작용했다. 청주방송의 시작부터가 그렇다. 청주방송은 고 이재학 PD 사망 사건을 계기로 2021년 고용노동부가 실시한 특별근로감독에서 휴일근로수당 등을 법정 기준에 못 미치게 지급해 온 사실이 적발됐다. 이후 청주방송은 기존 노사합의에 따라 정액으로 지급하던 휴일수당을 근로기준법이 정한 대로 통상임금의 150~200%까지 지급하게 됐는데, 그러면서 수당이 급증했다. “25~30년차 기자 2명이 주말 이틀 동안 뉴스를 제작하면 수당만 100만원인” 상황이 되자 이를 감당할 수 없어진 청주방송은 주말 뉴스를 아예 중단했다. 그러나 방송통신위원회 지적을 받고 사내에서도 뉴스 부활 요구가 이어지자 고육책의 하나로 AI 카드를 활용한 것이다. 김종기 보도국장은 “AI 뉴스를 해보니 10명이 나와야 하던 휴일 뉴스가 3명 정도로 가능하다”고 전했다. 특별한 사건·사고가 없으면 미리 제작된 AI 앵커 화면과 리포트만 편집해 송출하면 되니 스튜디오도 필요 없고 당직 근무자 등 최소한의 인력만 있으면 방송이 가능해진 것이다.
물론 비용 문제가 전부는 아니다. 광고 매출 급감으로 ‘현상 유지’조차 어려워진 지역방송의 사정,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과 ‘워라밸’ 추구로 인한 주말 근무 축소 등이 종합적으로 영향을 미쳤고, 때마침 AI 활용 진입 장벽도 낮아졌다. 이미 지역MBC와 지역민방 상당수가 주말 중 하루나 이틀 모두 저녁 뉴스를 중단한 상황에서 AI를 활용해서라도 뉴스를 유지하는 게 ‘쓸만한 대안’이 된 셈이다.
사정이 이러다 보니 구성원들도 AI 뉴스를 마냥 거부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우려는 있지만, 시도는 해보자”는 시각 한편으로 “마음은 반대인데 반대한다고 할 수 없는” 딜레마적 고민도 읽힌다.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 노조 등 구성원들과 적극 대화에 나서는 곳도 있다. G1방송은 AI 앵커 도입을 앞두고 지난달 말 보도국 전체 워크숍을 열어 재난·재해 상황 대비 등 우려되는 사항들을 논의했다. 홍서표 보도국장은 “불필요한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노조 등과 협의를 하면서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AI 뉴스가 기존 직원의 일자리를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는 아직 표면화된 단계는 아니다. 김종기 국장은 “구조조정 등은 전혀 염두에 두지 않는다”고 했고, 추종탁 KNN 보도국장도 “경비 절감이 목적이 아니”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러나 진행자뿐 아니라 편집, CG 등 AI 활용 범위가 점점 다양해지는 만큼 장기적으론 고용 안정성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도 조심스레 제기된다. 김건형 한국기자협회 KNN지회장은 “기존 인력의 재배치나 퇴사는 없겠지만, 중장기적으로 그런 직군의 신규 인력 채용을 중단하거나 줄일 거란 전망도 가능하지 않나 한다”면서 “그런 논의가 진행된다면 기자협회도 적극 참여하겠다”고 말했다.
9개 지역민방노조 협의체인 지민노협은 5월30일 성명을 내고 “AI뉴스 도입은 고용조건과 노동조건, 방송윤리 등에 영향을 주는 중요한 사안인 만큼, 사측은 노동조합, 그리고 기자협회, 영상기자협회, 기술인협회 등 직능단체와의 합의를 통해 도입 여부와 사용 범위, 방식 등을 확립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국언론노동조합도 AI 활용에 따른 노동환경 변화와 부작용을 유심히 살펴보는 중이다. 현재 다른 나라 언론사의 AI 도입과 근로조건 변화 사례 등을 연구 중이며, 7월쯤 AI 관련 단체협약 지침을 내놓고 관련 공론화 작업도 시작할 계획이다. 전대식 언론노조 수석부위원장은 “기술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해야 하지만 그 전제가 인건비 절감, 결국 사람을 줄이는 거여선 안 된다”면서 “저널리즘의 질적 하락과 취재 윤리 및 책임 윤리에 관한 토론이 전혀 없이 ‘아무도 안 보니 뉴스 빼자’, ‘AI 하자’ 식의 사측 논리만 앞서는 건 배격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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