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반대해야 여친 생긴다고?…인플루언서로 변신한 극우 정치인 [이슈+]
“주류 정치권, 뉴미디어 소통 중요성 깨달아야” 한다는 지적도
“친환경 정책에 투표하지 말고, 자신감을 가져라. 친절하고 부드러워져야 한다고 믿지 말라. 진짜 남자는 극우의 편에 서며, 애국자다. 이것이 여자친구를 만드는 방법이다.”
독일 한 극우 정치인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한 발언이다. 지난 9일 종료된 유럽의회 선거에서 돌풍을 일으킨 유럽의 극우 정당들이 틱톡, 인스타그램 등 SNS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기존 정치권에 소외감을 느끼던 젊은 유권자들의 표심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처럼 젊은 유권자 사이에서 극우 정당들의 인기가 커진 배경에는 틱톡 등 SNS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이들의 선거 전략이 자리하고 있다고 텔레그래프는 짚었다. 프랑스에서 RN의 압승을 이끈 주역으로 평가받는 29세 조르당 바르델라 당 대표가 그 대표적인 사례다. 수려한 외모로 텔레비전 스타에 버금가는 팬들을 몰고 다니는 그는 인스타그램과 틱톡에서 각각 150만, 61만5000여명의 팔로워를 지닌 ‘SNS 스타’다. 그는 선거 기간 내내 자신의 모든 공식 일정마다 SNS 담당자를 대동시킬 만큼 SNS에서 활발히 활동했다.
전문가들은 그의 SNS 활용 방식이 기존의 다른 정당 대표들과는 전혀 다르며 그보다는 SNS에서 영향력이 있는 ‘인플루언서’의 방식에 가깝다고 말한다. 젊은 세대들이 평소 자주 보고 영향을 받는 인플루언서와 유사한 그의 소통 방식이 기존 정치권의 방식보다 훨씬 가깝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바르델라 대표와 같은 유럽의 극우 지도자들은 젊은 층이 피부로 느끼는 청소년 폭력과 물가 상승, 불확실한 고용 시장 등의 문제를 직접 거론하며 그 원인을 난민이나 우크라이나 전쟁과 같은 구체적인 ‘희생양’의 탓으로 돌린다. 독일의 극우 세력 독일대안당(AfD)도 비슷한 방식으로 젊은 유권자들을 공략하고 있다.
나치 친위대를 옹호하는 말로 큰 파문을 일으킨 AfD의 막시밀리안 크라 의원은 여성 혐오 발언으로 악명이 높은 영국계 미국인 인플루언서 앤드루 테이트와 비슷한 스타일의 동영상으로 젊은 틱톡 이용자들에게 다가간다. 그는 지난해 틱톡에 올린 한 영상에서는 젊은 남성 유권자들에게 “친환경 정책에 투표하지 말고, 자신감을 가져라. 친절하고 부드러워져야 한다고 믿지 말라. 진짜 남자는 극우의 편에 서며, 애국자다. 이것이 여자친구를 만드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영상에서는 젊은 세대에게 “우크라이나 전쟁은 여러분의 전쟁이 아니며 젤렌스키는 여러분의 대통령이 아니”라며 우크라이나 전쟁 지원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이러한 영상들을 통해 AfD는 틱톡에서 독일의 다른 모든 정당을 합친 것보다 훨씬 많은 젊은 유권자들에게 다가가고 있다고 텔레그래프는 전했다.
극우 정치인들의 행보는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 올해 들어서야 틱톡에 첫 영상을 올리며 SNS 세계에 발을 들이기 시작한 것과 대조적이다. 전문가들은 틱톡 등 SNS는 극우 세력이 힘을 불리는 가장 주된 창구라며 이들의 득세를 막기 위해서는 기존의 주류 정치권도 기성 언론을 벗어나 뉴미디어 등을 활용한 젊은 세대와 소통의 중요성을 이해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독일 홍보 회사 스토리머신의 창립자 필립 에센은 텔레그래프에 “AfD는 우리 아이들에게 매일 몇 시간씩 말을 걸면서 마치 자신들이 가까운 가족 구성원인 것처럼 소통한다”며 “이러한 것들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주류 ‘민주주의’ 정당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나를 화나게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전통적인 미디어에만 집중하고 있는 주류 정당들은 자신들이 왜 젊은 표를 잃고 있는지를 궁금해해서는 안 된다”고 꼬집었다.
윤준호 기자 sherp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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