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싫어하는 말을 할 수 있는 권리
공영방송(公營放送)의 사전적 정의는 “공공의 복지를 위하여 행하는 방송으로 국가나 특정 집단의 간섭을 막고 사회 각층을 대표하여 편집 편성권의 자율성을 보장하고자 독립된 운영을 하는 방송”을 의미한다. 영어로는 ‘Public broadcasting’이라 하는데, 유독 한국에서는 이 개념을 ‘공영’이라 하여 ‘공적으로 경영[公營]’한다는 의미로 사용한다. ‘민주주의, 경제’ 같은 개념들이 일본의 근대를 거치며 한국에 정착된 개념이란 사실을 안다면, 한국에서 ‘공영방송’ 또한 일본식으로 ‘공공방송’이라 쓰거나 해외처럼 ‘공공 서비스 방송’ 또는 ‘공적 서비스 방송’이라고 명명했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에서 공영방송은 ‘영(營)’자를 사용한다. 이것은 한국사회가 방송을 누가 소유하고, 통제하느냐를 두고 매우 민감하게 여겨왔음을 알려준다.
실제로 우리 눈앞에 닥친 TBS 사태는 역시 이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시켜준다. TBS는 “시민과 함께 꿈을 꾸는 시민의 미디어, 지역의 진실, 소수자의 진실을 위해 현장을 직접 뛰는 언론, 미래의 미디어 세상을 준비하는 혁신 기관”을 표방해왔다. 그러나 서울시의회가 서울시 예산 지원 3개월 추가 연장 조례안의 회기 내 처리를 무산시킴에 따라 한때 최고의 청취율과 방송 점유율을 자랑하던 또 하나의 공영방송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서울시가 원활한 교통 정보 전달을 위한 방송의 필요성을 절감하여 1990년 6월11일, FM 95.1㎒로 개국한 것이 오늘날 TBS의 출발이었다. 원래 시영교통방송으로 출발한 TBS는 2020년 독립미디어재단 TBS로 출범하면서 명실상부한 시민방송으로 새로운 첫걸음을 내딛게 되었다. TBS는 라디오, TV 외에도 앱과 팟캐스트, 유튜브, 네이버TV 등 다양한 플랫폼을 활용하는 선진적이고 미래적인 방송의 모습을 개척해나갔다. 무엇보다 시영방송으로 출범한 공영방송이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편성권을 가지고 운영될 수 있다는 선례를 보여줄 수 있는 프로젝트란 점에서 의미가 컸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TBS의 실제 운영구조는 연간 약 350억원 규모의 서울시 출연금이 전체 운영 예산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공기업이나 마찬가지였다.
구조적으로 서울시장과 시의회를 어느 진영이 장악하느냐에 따라 언제든 정치적 편향성 시비와 논란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민주당 집권 시절, TBS의 편향성을 문제 삼던 진영은 “시민의 세금으로 좌클릭된 프로그램을 만들었으니 단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고, 반대 진영에서는 진지한 비판 대신 시원한 사이다 발언을 언론 기능으로 착각하며 환호했다. TBS 역시 그런 발언들을 거르지 못하고 방송을 대표하는 킬러콘텐츠로 과잉 대표되도록 했다는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공영방송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재정적인 뒷받침과 공영성 강화가 무엇보다 절실하지만, 한국의 방송법에는 공영방송이란 개념 정립보다 한국방송공사법이나 방송문화진흥회법같이 조직에 관한 법률만 존재한다. 여기에는 사실 정치의 책임이 가장 크다. 정치야말로 눈앞의 이익을 위해 공영방송을 어려움에 빠뜨린 주범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정치권을 심판하고 비판해야 할 시민들과 지식인들마저 극단적 진영화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 공영방송이란 “국가·경제 권력뿐만 아니라 극단적인 포퓰리즘-내 입맛에 맞는 소리, 듣고 싶은 말만 들려주는 수많은 팟캐스트, 유튜브 채널에 귀가 절어버린 특정한 집단-의 간섭을 막고 사회 각층을 대표하여 편집 편성권의 자율성을 보장하고자 독립된 운영”을 하는 방송으로 새롭게 재정의되어야 한다.
만약 TBS가 이대로 사라진다면, 우리는 취약한 재원구조와 법적 지위를 가진 모든 공적 출연기관과 방송사들에게 집권세력의 눈 밖에 나면 하루아침에 문 닫게 된다는 매우 두려운 선례를 남기게 될 것이다. 조지 오웰은 “자유가 의미하는 바가 있다면, 그건 바로 사람들이 싫어하는 말을 할 수 있는 권리”라고 말했다. 특정 프로그램과 출연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해서 공영방송 하나를 통째로 문 닫게 해도 정말 괜찮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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