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 ‘주온’ 타령만 20년, 일본 호러 영화는 죽었는가

허진무 기자 2024. 6. 11.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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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타 히데오 감독의 신작 호러 영화 <금지된 장난>의 한 장면. 와이드릴리즈 제공
시미즈 다카시 감독의 신작 호러 영화 <기괴도>의 한 장면. 와이드릴리즈 제공

‘J호러’는 죽었는가. 여름이면 일본 호러 영화가 한국 극장 스크린에 걸리지만 씁쓸한 성적표를 받아든 채 퇴장한다. 2000년대 한국에서 일본 호러 영화는 ‘J호러’라고 불리며 전성기를 누렸다. 나카타 히데오 감독의 <링>(1998), 시미즈 다카시 감독의 <주온>(2002), 미이케 다카시 감독의 <착신아리>(2003) 등은 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20년이란 세월이 흐른 현재도 여전히 당시 작품들이 일본 호러 영화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명성을 잇는 신작이 나오지 않은 탓이다.

올해 여름 국내 극장가에서는 원조 ‘J호러’ 감독들이 신작 대결을 벌인다. 나카타 히데오 감독은 <금지된 장난>(5일 개봉), 시미즈 다카시 감독은 <기괴도>(12일 개봉)를 내놨다. <금지된 장난>은 어린 아들이 죽은 엄마를 되살리는 주술 의식을 치르며 벌어지는 재앙을 다뤘다. <기괴도>는 천재 뇌과학자가 섬에서 VR(가상현실)을 연구하다 섬에 얽힌 악령의 저주를 풀어가는 SF 호러 작품이다.

모처럼 벌어진 ‘J호러’ 거장들의 신작 대결에 국내 호러팬들의 관심이 쏠렸지만 결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메가박스에서만 단독 개봉할 예정인 <기괴도>는 예매율이 0.6%로 17위였다. <금지된 장난>은 개봉 6일차인 10일 기준 박스오피스 16위, 좌석판매율(배정 좌석 중 판매된 좌석)이 3.0%에 그쳤다.

두 감독의 대결을 굳이 따지자면 시미즈 다카시 감독의 판정승 정도로 볼 수 있다. <기괴도>는 ‘이승과 저승’의 개념을 ‘현실과 가상현실’의 차원으로 변주하는 상상력을 보여줬다. 음산한 물귀신 연출이 상당히 심장을 조인다. 다만 서사 전개가 다소 난잡하고 저주의 사연은 통속적인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금지된 장난>은 ‘B급’이란 수식어를 붙일 수밖에 없는 퇴마물이었다. 컴퓨터그래픽(CG)의 조악함은 2023년 영화가 맞는지 의심스러웠고 하늘이 벼락을 내리는 결말은 웃음이 나왔다. 아이돌 출신 배우 하시모토 칸나를 비롯한 출연 배우들의 과장된 연기도 어색했다.

‘J호러’의 전성기를 이끈 나카타 히데오 감독 <링>의 한 장면. 도호 제공
‘J호러’의 전성기를 이끈 시미즈 다카시 감독 <주온>의 한 장면. 프라임픽쳐스 제공

일본 호러 영화가 몰락한 이유는 무엇일까. 2000년대 일본 호러 영화는 특유의 기묘한 정서와 오싹한 연출로 미국 할리우드 영화에 익숙한 한국 관객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하지만 이후 비슷한 소재와 관습을 반복하며 자기복제적 작품만 쏟아내고 질적으로 발전하지 못했다. 급기야 <링>과 <주온>의 귀신이 대결하는 <사다코 대 카야코>(2016)는 일본 호러 영화의 자기복제가 ‘막장’에 이르렀다는 신호였다.

현재 일본 영화시장은 전체적으로 실사영화 제작이 침체됐다. 2010년대부터 애니메이션과 TV드라마 축약판 영화가 극장가를 장악했다. 대중성이 낮은 호러 영화는 다른 장르보다 더욱 투자를 꺼려 제작 편수 자체가 줄었다. 신인 감독들이 호러 영화에 선뜻 도전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과거 명성을 떨친 중견 감독들은 저예산으로나마 작품 활동을 이어갈 수 있었지만 흥행은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J호러’의 두 번째 전성기를 위한 노력은 계속되는 중이다. 일본 콘텐츠 기업 가도카와는 2021년부터 신인 감독을 발굴하는 공모전 ‘일본호러영화대상’을 주최해왔다. 대상 수상자는 신작 장편영화를 연출할 기회를 얻는다. 1회 대상 수상자 시모츠 유타 감독은 <모두의 행복을 위해>(2023)를 연출했다. 지난해 제27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멜리에스국제영화제연맹(MIFF) 아시아 영화상을 수상했고 지난 1월 일본에서 개봉했다.

호러 영화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제작비 덕에 신인 감독들이 도발적 발상과 실험적 연출을 보여주는 장르다. 세계적 거장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도 <큐어>(1997) <회로>(2001) <절규>(2006) 같은 호러 영화로 명성을 얻었다. 일본호러영화대상 심사위원장을 맡은 시미즈 다카시 감독은 인터뷰에서 “아직도 ‘J호러 하면 시미즈 다카시’로 불리는 것이 지겨웠다”고 말했다.

“일본 영화계는 묘하게 팝적이고 오락적인 요소만 너무 강해진 것 같습니다. 재미있고 쉽고 마지막에는 해피엔딩이죠. 영화에 정답은 없지만 쉬운 작품만 나오면 감상 안목이랄까, 영화의 수준이 침체된다고 생각합니다.”

일본호러영화대상 1회 대상 수상자인 시모츠 유타 감독이 연출한 <모두의 행복을 위해>의 한 장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제공

허진무 기자 imagi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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