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진이 총수 아닌 주주에게 충실하면 일어날 일 [마켓톡톡]

한정연 기자 2024. 6. 11.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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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2호법안 상법 개정안서
이사의 회사 충실의무에 주주 포함
쪼개기 상장, 일감 몰아주기 등
재벌 총수 일가 승계 수단과 직결
이익단체들, 소송 급증 이유로 반대

회사 경영진은 누구를 위해서 일해야 할까. 회사에는 충실해야 하지만, 주주에게는 그럴 필요 없다는 게 기존 우리나라 상법이었다. 최대주주가 쪼개기 상장 등으로 자신의 이익은 부풀리고 소액주주의 이익은 침해하는 일이 반복되자, 경영진이 모든 주주의 이익을 지분에 비례해서 지키라는 내용의 상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당연한 얘기 같지만, 반대의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높다. 그 이유를 알아봤다.

더불어민주당이 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국회 본희의장 모습. [사진=뉴시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22대 국회 2호 법안으로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를 추가하는 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지난 5월 19일 뉴욕에서 "주주에 대한 신의성실 의무를 담은 상법 개정안을 반드시 도입해야 한다"며 "정부가 이를 공론화하지 않으면 투자자들이 기업 밸류업 추진 의지에 의심을 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저평가된 주식시장을 살리기 위해 도입한 '밸류업 정책'에 강제성이 없는데다, 지배구조 문제를 건드리지 않는 등 공전하고 있어서다.

그런데 저평가된 우리 증시가 재벌 대기업들의 지배구조와 따로일 수 없듯이, 지배구조 문제는 총수 일가의 승계와도 직결돼 있다. 정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5일, 7일, 10일에 대표 발의한 상법 개정안에는 각각 이사 충실의무, 자사주 마법 방지, 소액주주 축출을 위한 주식병합 관련 규제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모두 우리나라에서 재벌 체제를 만들고, 세대를 거쳐 승계할 수 있었던 주요 방법들이다.

실제로 재벌 대기업 총수 일가의 경영권 승계를 놓고 일진일퇴가 반복되고 있다. 정부는 5월 7일 독점거래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안을 국무회의에서 통과시켜 재벌 총수가 사람이 아닌 회사가 될 수 있게 허용했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5월 31일 22대 국회 1호 법안에 경영권 상속세 면제 항목을 담았다.

[※참조: 더스쿠프 4일 '尹 정부가 쏘아올린 재벌 승계 3개의 화살, 5일 '재산권 vs 경제정의 : 당신은 재벌 승계 찬성하십니까?'] 여기에 더불어민주당이 22대 국회 2호 법안으로 맞불을 놓는 형국이다.

이익단체들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한국경제인협회는 11일 보도자료를 내고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 외에 주주까지 확대하는 것은 해외 입법례에서 찾아볼 수 없고, 주식회사의 기본원리인 자본 다수결 원칙 및 회사와 이사 간 위임관계 훼손 등 우리나라 회사법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에선 회사가 소액주주들의 잦은 소송에 노출되고, 외국 자본이 회사 경영권을 노릴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지난 4일 경실련이 재벌 개혁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자료 | 정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 상법 개정안]

경영진인 등기이사가 무엇에 충실해야 하는지를 규정한 게 충실 의무다. 상법 제382조의 3은 이사가 법령과 정관의 규정에 따라 회사를 위해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개정안은 경영진이 회사만이 아니라 주주에게도 충실해야 한다고 바꾸자는 것이다. 지분이 가장 많은 지배주주가 아니라 소액주주들에게도 그 지분만큼의 비례적 이익을 침해하지 않아야 한다는 내용이다.

대주주만이 아니라 소액주주의 이익도 보호받아야 한다는 게 새로운 내용은 아니다. 법원은 2023년 주주의 비례적 이익을 처음으로 언급했다. 서울동부지방법원은 그해 3월 이수만 전 SM엔터테인먼트 회장이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신주 및 전환사채 발행 금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하며 "SM이 카카오에만 배정하는 신주인수권으로 이수만 전 회장이 SM에 가지는 비례적 이익이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입을 수 있다"고 판결했다. 이사회 결정의 위법 여부를 회사가 아닌 주주에 대한 충실로 판단한 것이다.

이사의 주주충실 의무란 쉽게 말해서 주식회사의 주식 1주당 가치는 대주주든 소액주주든 관계없이 그 지분만큼 보호받아야 한다는 주주 평등의 원칙이다. 당연한 얘기인데도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은 배경에는 모든 주주에게 좋은 게 한명의 주주에게는 치명타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존재해서다.

바로 지배주주, 이를테면 재벌 총수다. 우리나라에서 재벌 대기업집단의 총수가 계열사 사장에게 간접적으로 지시한 것에 도의적이 아닌 법적 책임을 지기 시작한 건 1998년 상법 401조의 2에서 '업무집행지시자'라는 개념이 도입된 후다. 업무집행지시자는 주식회사의 사장에게 업무를 지시하는 사람, 이를테면 그룹 총수를 뜻한다.

그러면 주주 충실의무를 상법에 반영하면 무엇이 바뀔까. 경영진이 총수의 지분이 높은 회사에 일을 몰아주거나, 특혜를 주거나, 통행세를 내는 등의 행위를 하면 법적인 처벌을 받는다. 일반주주의 이익을 침범하는 모든 행위가 원칙적으로 금지되기 때문이다.

이수만 전 SM엔터테인먼트 회장이 지난 2023년 2월 경영권 분쟁 당시 한 행사에 모습을 드러냈다. [사진=뉴시스]

정준호 의원의 이번 상법 개정안은 몇가지 중요한 내용을 더 담고 있다. 이른바 자사주의 마법을 봉쇄하는 내용도 있다. 기업이 인적분할시 신설회사에 자사주 몫의 신주를 배정하면 이 의결권은 지배주주가 행사하는 것과 같다. 자사주 자체에는 의결권이 없지만, 자사주에 배정된 신주에는 의결권이 있기 때문이다.

개정안은 제530조의 8을 신설해 금융위원회가 최근 자사주에 신주배정을 금지한 것을 뒷받침한다. 주식병합 유지청구권 등을 신설하는 내용도 상법 개정안에 포함돼 있다. 회사가 주식병합을 할 때 목적과 병합 비율을 주주들에게 사전에 통지하고, 주주총회에서도 이를 설명하게 하는 내용이다.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jayhan0903@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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