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문 감독, 이승엽 감독과 감독으로 만났다

강호철 기자 2024. 6. 11.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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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문 감독이 이승엽 감독과 만나 정중하게 악수하고 있다. 두 감독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감독과 선수로 한국대표팀의 전승 금메달을 이끌었다. /정재근 스포츠조선 기자

한화와 두산이 맞붙은 11일 서울 잠실야구장. 오후 3시 반 쯤 김경문(66) 감독이 한화 선수단과 함께 야구장으로 들어서자 이를 본 이승엽(48) 두산 감독이 곧바로 그라운드로 뛰어나와 김 감독에게 인사를 하며 악수를 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좋은 경기 하겠습니다.” 경어체로 인사를 건넨 사람은 나이가 훨씬 많은 김경문 감독. 상대팀 감독에 대한 예우였다. 이 감독도 김 감독 앞에서 허리를 더욱 낮게 숙이며 몇 차례나 김 감독의 복귀를 환영했다.

김경문 감독과 이승엽 감독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전승 금메달을 안긴 주역이다. 김 감독은 당시 대표팀 사령탑이었고, 이 감독은 팀 공격을 이끄는 4번 타자였다. 당시 이승엽 감독은 8강전까지 타율이 1할에도 못 미치는 극심한 부진에 시달렸다. 하지만 김 감독은 “이승엽이 쳐주어야 우리가 이긴다”며 끝까지 4번 타자의 중책을 맡겼다.

이승엽은 결국 일본과의 준결승과 쿠바와의 결승전에서 홈런을 터뜨리며 한국의 우승을 이끌었다. 이 감독은 당시를 돌이켜보며 “김경문 감독이 없었으면 경기에 계속 못 뛰었을 것”이라며 “누군가를 위해 홈런을 쳐보겠다는 생각이 안 들었는데, 그때는 정말 감독님을 위해서라도 홈런을 때려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김경문 감독은 이승엽 감독 뿐 아니라 두산과 인연이 깊다. 1982년 프로 출범 때 두산(당시 OB) 포수로 선수생활을 했고, 2004년 감독 지휘봉을 처음 잡은 곳이다. 김 감독의 지휘 아래 두산은 ‘화수분 야구’ ‘두산 육상부’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며 한국야구의 흐름을 주도했다. 김경문 감독은 이날 이승엽 감독 외에도 김재환, 양의지 등 자신과 함께 했던 옛 제자들의 환영인사를 받았다.

김 감독은 2004년부터 2011년 6월까지 두산을 이끌며 정규시즌 962경기 동안 512승(432패 16무)을 거뒀다. 하지만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했고, 결국 2011년 중도퇴진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그라운드를 떠났다. 김 감독은 그 해 시즌 후 NC의 초대 감독으로 2018년까지 384승을 올렸으나 한국시리즈 우승 염원을 이루지 못한 채 다시 중도 퇴진했다. 2019~2021년 대표팀 감독 이후 야인생활을 했던 그는 지난 4월 한화 유니폼을 입고 다시 그라운드에 돌아왔다.

김 감독은 11일 경기 전까지 통산 999승을 거뒀다. 부임 후 3연승 했지만 이후 2패 1무로 승리를 추가하지 못했다. 그는 “나보다 선수들이 더 의식하는 것 같다”며 오히려 자신의 승리에 초점이 맞춰지는 것을 부담스러워했다. 경기 전 팀 훈련을 지켜보던 김경문 감독은 또 12회 연장 3대3 무승부로 끝났던 지난 9일 경기를 회고하면서 “남들은 우리가 리드를 지키지 못해서 비겼다고 했지만, 동점을 허용하면서도 끝까지 버텨준 투수진들이 잘한 것”이라며 “그렇게 지지 않는 힘이 하나하나 쌓이면 더 좋은 팀 , 더 강한 팀이 되는 것”이라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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