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칼럼] 퇴직연금 디폴트옵션, 차라리 사망선고를

김명수 기자(mskim@mk.co.kr) 2024. 6. 11.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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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증권업계는 2년 전 숙원 사업 중 하나인 퇴직연금 디폴트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을 해결한다.

적립금이 매년 40조원씩 늘어나는 퇴직연금 시장에서 자금 흐름을 증권업계로 돌릴 수 있는 획기적 제도 개편이었다.

그리고 디폴트옵션에서 원리금 보장형 상품을 제외하는 작업에 착수해야 한다.

DC형은 가입자가 운용 사업자는 물론 상품 유형까지 고를 수 있고, 디폴트옵션도 활용할 수 있는 퇴직연금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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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리금 보장 상품에 '몰빵'
노후자금 증식효과 미미
퇴직연금 선택권 늘려줘
은퇴후 경제자유 확대해야

한국 증권업계는 2년 전 숙원 사업 중 하나인 퇴직연금 디폴트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을 해결한다. 적립금이 매년 40조원씩 늘어나는 퇴직연금 시장에서 자금 흐름을 증권업계로 돌릴 수 있는 획기적 제도 개편이었다. 선진국에서 디폴트옵션은 가입자가 운용 상품을 지정하지 않을 경우 사전에 정해놓은 실적배당형 금융상품으로 자동 운용되는 제도다. 우리는 2022년 7월 법이 마련되었고, 1년간 유예기간을 거쳐 지난해 7월부터 운영되는 결실을 맺었다.

그러나 1년 성과는 이 제도 도입 의도와 정반대로 흘러간다. 먼저 디폴트옵션을 통해 들어온 자금 대부분이 원리금 보장형 상품에 쏠린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제도 도입 후 전체 자금 중 89%가 은행 예금이나 보험사 이율보증형보험(GIC)같이 원리금 보장 상품에 몰린 것. 나머지 10% 정도 자금만 펀드 상품처럼 원금 손실 가능성은 있더라도 수익성이 큰 실적배당형 상품에 들어온다. 자산운용업계 실망이 클 수밖에 없다.

그러나 더 큰 실망은 퇴직연금 가입자인 근로자들 몫이다. 수익률을 보자. 노동부의 최근 디폴트옵션 상품별 비교공시 자료를 찾아보니 지난 1년간 손실을 본 실적배당 상품은 없었다. 실적배당형 상품의 최근 1년 수익률은 대개 10% 이상. 최고 22%까지 수익을 냈다. 하지만 원리금 보장상품의 1년 수익률은 정기예금 금리와 비슷한 3%대에 그친다. 결국 디폴트옵션의 도입 취지인 근로자 노후 소득 증대엔 턱없이 부족한 성과를 낸 것이다.

디폴트옵션이란 아주 훌륭한 제도를 도입했지만 설계 자체의 결함 탓이다. 선진국들은 디폴트옵션에서 원리금 보장 상품을 제외한다. 일본만 예외지만 대부분 선진국이 그렇다. 미국 퇴직연금제도인 401K가 대표적이다. 미국 근로자들의 퇴직연금은 이 제도를 통해 자본시장으로 흘러가고, 그 자금이 미국 증시를 떠받치는 원동력 역할을 해왔다. 그 결과 근로자들은 퇴직 후에도 많은 연금소득으로 노후를 즐길 수 있었다. 그 근본 배경은 바로 디폴트옵션이었다. 퇴직연금이 실적배당형 상품 위주로 운영된 덕분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디폴트옵션에 원리금 보장 상품이 포함되다 보니 투자 경험이 없는 대다수 근로자들은 원리금 보장 상품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 사실상 근로자들의 재산 증식 기회를 박탈한 것이다. 근로자들의 실적배당형 상품에 대한 인식 부족도 문제일 수 있지만 선진국과 다르게 짜인 제도 탓에 근로자들은 노후 걱정을 크게 덜지 못하게 된 것이다.

당국은 근로자들의 퇴직연금 재산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현실을 직시하는 게 중요하다. 먼저 기존 디폴트옵션의 파산을 선고하라. 그리고 디폴트옵션에서 원리금 보장형 상품을 제외하는 작업에 착수해야 한다. 그 이후 개인 재산권의 자유를 넓혀주는 확정기여(DC)형 퇴직연금 비중을 늘리는 작업에도 나서야 할 것이다. DC형은 가입자가 운용 사업자는 물론 상품 유형까지 고를 수 있고, 디폴트옵션도 활용할 수 있는 퇴직연금제도다. 일반 퇴직금이나 마찬가지인 확정급여(DB)형의 지난해 말 기준 적립금 규모는 205조원으로 DC형 101조원의 2배를 넘는다. 가입자 입장에선 퇴직금이나 마찬가지인 DB형은 DC형과 달리 사실상 기업이 연금운용 사업자를 선정한다. 기업은 손실 가능성보다는 안정적 운용을 원한다. DB형을 원하는 원인이자 DB형 자금 중 95.3%를 원리금 보장형 상품에 몰빵하는 이유다.

이제 기업도 DC형 가입을 유도하는 한편 개인이 운용 사업자를 선정할 때 더 다양한 사업자를 고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근로자들의 은퇴 후 '경제적 자유'가 확대될 것이다.

[김명수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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