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명] 에너지 백년대계, 정치는 손 떼라
해외자원개발 반세기, 성과는 초라해
정권 따라 춤추는 정책에 기어는 후진
자원의 정치화, 에너지 관료들만 수난
30년 호흡의 청사진, 美中日 본받아야
에너지를 100% 해외에 의존했던 우리에게 1·2차 석유파동의 충격은 컸다. 돈도, 경험도 부족했지만 급기야 해외에서 자원을 직접 개발하겠다고 결정했다. 첫 대상지는 파라과이의 샌안토니오 우라늄 광산. 1977년이었다. 4년 뒤인 1981년에는 인도네시아 서마두라에서 석유도 직접 캐겠다고 나섰다. 기대한 만큼의 성과는 없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동력자원부가 신설되고 해외자원개발촉진법도 제정·공포된다. 본격적인 해외자원개발의 서막이 오른 것이다.
그렇게 5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실적은 보잘것없다. 우리 기업들이 지분을 갖고 있는 니켈·리튬·코발트 등 7대 핵심 광물의 광산은 36개다. 적당해 보이는가. 이웃 일본은 134개, 중국은 1992개에 달한다. 36개 광산에서 생산하는 7대 광종의 생산량도 전체의 1%를 밑돈다. 더욱이 아연·연·리튬의 생산 비중은 0%다. 그러니 해외 의존도는 여전히 막대하다. 예컨대 2차전지에 활용되는 산화리튬·수산화리튬의 중국 의존도는 87.9%나 된다. 석유·가스의 성적표도 신통치 않다. 자원개발률은 2020년 기준 12%다. 2015년 16%까지 오르기도 했지만 계속 후진 기어를 밟고 있다. 2015년 27%로 우리보다 11%포인트 높았던 일본은 2020년에는 41%에 달한다.
낙제의 성적표는 어쩌면 당연했다. 무엇보다도 석유가스·광물의 투자가 급감했다. 2013년에는 535곳의 프로젝트에 투자했지만 2022년에는 394곳에 그쳤다. 신규 투자도 2008년 107건을 정점으로 찍은 후 매년 감소하더니 2020년 5건, 2022년 5건에 불과했다. 정부라고 돈을 썼을까. 석유·광물공사 등에 대한 출자는 매년 줄어갔다. 2012년 6093억 원이던 유전 개발 출자는 2024년 481억 원으로 주저앉았고 2013년 1800억 원이던 광물자원공사 출자는 2019년 이후에는 ‘0’이 됐다.
국내총생산(GDP)만 놓고 보면 세계 13위의 우리나라가 자원 후진국에 머무는 이유는 자명하다. 자원과 에너지가 정치의 영역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30년 이상의 긴 호흡으로 접근해야 할 에너지 정책이 정권에 따라 춤췄다. 심지어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전 정권의 에너지·자원 정책은 ‘적폐청산’의 대상이 돼 감사원과 검찰의 문턱을 닳도록 넘어야 했다. 에너지 백년대계를 그렸던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정책실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털렸다. 해외자원개발을 추진했던 이명박 정부의 에너지실도 그랬고 탈원전·신재생에 가속을 붙였던 문재인 정부도 비슷했다. 담당 관료들은 몇 년에 걸쳐 재판 받고 무죄가 되기를 반복했다. 관료로서 가졌던 자원·에너지 부국의 포부는 사라졌고 정권 교체에 대비해 정책 결정 과정의 증거와 안전장치를 만들고 있다고 한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치권은 또 시끄럽다. 경북 포항 영일만 일대에 최대 140억 배럴의 석유·가스가 매장돼 있다는 발표 여파다. 요란함은 대통령실이 촉발했다. 시추도 성공하지 않은 자원 개발 건을 윤석열 대통령이 예고도 없이 깜짝 발표했다. “우리나라 전체가 천연가스는 최대 29년, 석유는 4년 넘게 쓸 수 있는 양”이라는 설명도 곁들였다. 발언만 놓고 보면 당장 생산에 들어가도 되는 것처럼 보인다. 통상 전문가인 안덕근 산업부 장관은 “140억 배럴 가치는 삼성전자 시가 총액의 5배 수준”이라면서 이슈를 키웠다.
영일만 유전은 성공 가능성이 20%라고 하더라도 1차 시추도 하지 않았다. 에너지 정책을 담당하는 산업부 2차관 정도가 발표했으면 차분하게 진행될 프로젝트였다. 대통령이 불을 지피고 장관이 기름을 끼얹으면서 마치 뭔가 비리라도 있는 것처럼 논란만 증폭되고 있다.
블랙홀처럼 다시 정치의 영역이 빨아들인 영일만 유전 프로젝트는 무탈하게 진행될 수 있을까. 일단 정밀하게 데이터를 판단해 시추해봐야 한다. 논란이 있다면 다시 검증하고 충분히 이해를 구한 뒤 시작해도 늦지 않다. 더불어민주당도 국정감사까지 꺼내면서 압박할 필요는 없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지 아닌지 키워 보기도 전에 내다 버려야 직성이 풀리겠는가. 50년 해외자원개발이 왜 빈손이었는지 이유를 다시 곱씹어 볼 때다. 에너지·자원을 두고 언제까지 냉온탕만 오갈 것인가.
이철균 기자 fusioncj@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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