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년 만의 연극 복귀 전도연 "첫 공연, 무섭고 도망가고 싶기도"
"실수 통해 성장한다 생각…나에 대해 더 알아가는 중"
(서울=연합뉴스) 오보람 기자 = "첫 공연 때 너무 무서워서 도망가고 싶었어요. 이 작품을 선택한 스스로가 원망스럽기도 했고요. 무대에 올라 정신 없이 연기하고 박수를 받으니 그제야 '잘 해냈구나' 생각했습니다."
11일 서울 LG아트센터에서 만난 배우 전도연은 최근 연극 '벚꽃동산' 프리뷰 무대에 섰던 때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이달 4일 개막한 이 작품을 통해 1997년 '리타 길들이기' 이후 27년 만에 연극에 도전했다.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한국을 대표하는 배우로 거듭난 전도연이 연극 무대로 복귀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일찍부터 팬들의 관심이 쏟아졌다. 개막 공연에선 1천300여석의 객석을 가득 채운 관객의 시선이 전도연에게로 향했고 설경구, 황정민 등 동료 배우들도 이 작품을 관람했다.
전도연은 "설경구 씨가 '나는 무대에 못 설 것 같다. 부럽다'고 말했다는 얘기를 나중에 들었다. 다른 배우들도 '무대에서 같이 즐기고 싶다'고 말하더라"라면서 "배우로서 피가 끓어 '벚꽃동산'에 참여하게 됐는데, 우리의 공연이 다른 배우들에게 자극을 준 것 같아 힘이 된다"고 했다.
세계적인 연출가 사이먼 스톤이 안톤 체호프의 희곡을 재해석해 쓴 '벚꽃동산'은 회사의 경영 악화로 저택을 빼앗길 위기에 처한 재벌 3세 일가의 이야기를 그린다.
전도연은 알코올 중독에 빠진 저택의 주인 도영 역을 맡아 극을 이끈다. 현실감각이 떨어지고 보통 사람이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행동을 하지만, 한편으로는 내면에 상처를 지닌 가여운 인물이다. 전도연에게 칸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안긴 '밀양'(2007) 속 신애와 닮은 면이 있다.
전도연은 "대본상으로는 저 역시 이해하기 어려운 캐릭터였다"며 "나도 이해할 수 없는 인물을 어떻게 표현해야 관객을 납득시킬 수 있을지 굉장히 많이 고민했다"고 돌아봤다.
스톤은 불안해하는 전도연에게 "당신이 무대에서 무언가를 하면 캐릭터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말하며 안심시켰다고 한다. 도영 캐릭터에는 실제 전도연의 모습이 투영돼 있기 때문이다.
스톤은 일주일간 워크숍을 열어 배우진의 개인적이고 사소한 이야기를 끊임없이 물은 다음 이를 토대로 '벚꽃동산' 인물을 구상하고 스토리를 써 내려갔다.
첫 대본을 받은 전도연은 "대체 나의 어떤 모습을 보고 송도영이라는 캐릭터를 떠올렸을까"하는 의문이 들었다고 한다.
"저 자신은 모르지만, 제 안의 어떤 한 부분이 도영과 닮은 데가 있나 봐요. 예전에 이창동 감독님께 '밀양'에 왜 저를 캐스팅했냐고 물은 적이 있어요. 감독님께선 모성 본능이 뛰어나 보여서라고 답하셨지요. 그땐 아이도 없고 결혼도 하기 전이었는데도요. 저조차 알 수 없는 부분을 끄집어내 주는 감독이 좋은 감독인 것 같아요. 이 감독님이나 사이먼처럼요."
그러나 전도연은 처음엔 스톤의 독특한 작업 방식으로 인해 당혹스럽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즉흥 연기를 중요하게 여기는 스톤은 일명 '쪽대본'을 써 배우들에게 전달했고, 배우진은 큰 그림을 모른 채로 작품을 받아들여야 했다.
전도연은 "사이먼은 배우들이 불안정 속에서 뭔가를 찾아가며 새로운 것들을 보여주기를 바란 것 같다"며 "받아들이기 쉬운 방식은 아니지만 흥미롭고 저 자신에게 자극이 되기도 한다"고 했다.
'벚꽃동산'은 출연 배우가 많은 데다 누군가가 대사를 할 때 끼어들어 말하거나 여기저기서 한꺼번에 말을 쏟아내기도 해 연기하는 것 자체도 쉽지 않은 작품이다. 이 때문에 스스로를 완벽주의자라고 칭하는 전도연에게 실수에 대한 두려움을 안겨주기도 했다.
전도연은 "내 말이 관객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으면 어쩌나 불안했다"면서도 "하지만 그게 사이먼의 연출 의도기 때문에 한편으론 (실수해도 괜찮다는) 안정감을 주기도 한다"고 했다.
"사람은 실수하면서 성장한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남은 공연에서도 실수하겠지만 그만큼 만회하려고 노력할 거고요. 전 그렇게 성장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렇게 성장하고 싶어요. 두려움을 받아들이면서 저에 대해 점차 더 알아가고 있습니다."
ramb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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