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0년 전 백제 미륵사 금당, 깬 돌과 흙 엇갈려 쌓아 지었다

노형석 기자 2024. 6. 11.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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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옛 절터들 가운데 하나다.

연구소 쪽은 "절터 땅속에서 지하수가 많이 나오는 탓에 흙과 사람 머리통 크기의 큰 돌을 깨어서 섞어 약한 지반을 다지는 특유의 기법으로 기단 등 기초시설을 만들었음을 알 수 있었다"면서 "미륵산 아래 자연지형을 활용한 백제인의 토목기술을 보여주는 자료로 평가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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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백제 건축기법과 차이
12일 조사 성과 설명회
백제 고찰 미륵사의 중심영역이었던 중원금당터의 발굴현장. 기둥자리 아래 땅속을 파낸 단면 부분이다. 사람 머리만 한 큰 돌을 깬 것들과 흙을 번갈아 쌓으면서 다져 기초지반을 만들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 제공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옛 절터들 가운데 하나다. 신라 선화공주와의 연애담 설화로 알려진 백제 무왕이 7세기초 세웠다고 전해진다. 1600여년전 세운 고대 한반도 최고 최대의 석탑이 남아있고, 그 탑 안에서 두겹으로 된 황금빛 사리항아리 걸작이 나와 더욱 유명해졌다.

전북 익산 미륵산(해발 430m) 남쪽 기슭에 있는 백제 고찰 미륵사 터의 내력이다. 삼국시대 절터들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다고 이야기하는 이 사찰유적의 중심시설인 금당터 발굴성과가 최근 나와 학계의 눈길을 끈다.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는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 32-1번지에 자리한 미륵사 중원금당터를 올해 조사한 결과 절 영역을 닦기 이전의 자연지형과 터의 맨 아래 기초부분에서 내부 기단 축조에 이르는 토목 공사의 순차적인 흔적들을 확인했다고 11일 발표했다.

중원금당은 사찰 중앙에 자리 잡은 절의 본당으로 대개 본존불상을 봉안한 핵심건물을 일컫는다. 연구소 쪽 자료를 보면, 중원 금당터 건물 기둥 기초시설은 직경 2.2~2.4m, 깊이는 1.2m에 달했다. 흙과 깬 돌들을 엇갈리게 하는 교차공법으로 기초 부분을 쌓았다. 과거 이 절터의 다른 구역 조사 당시 파악된 백제 사찰 건축기법이 흙다짐만하면서 바닥을 쌓은 특징을 보인 것과 차이가 난다. 흙과 돌을 섞어 교차 쌓기를 한 흔적이 백제 건축물 유적에 나타난 것은 사실상 처음이라고 한다. 중원 금당지 서쪽에도 상당한 면적을 차지하면서 기단부와 기둥의 기초시설이 개축된 양상도 확인됐다.

위에서 내려다본 미륵사 금당터 발굴현장. 일렬로 늘어선 기둥자리와 그 아래 기초 부분의 돌무더기들이 보인다.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 제공

연구소 쪽은 “절터 땅속에서 지하수가 많이 나오는 탓에 흙과 사람 머리통 크기의 큰 돌을 깨어서 섞어 약한 지반을 다지는 특유의 기법으로 기단 등 기초시설을 만들었음을 알 수 있었다”면서 “미륵산 아래 자연지형을 활용한 백제인의 토목기술을 보여주는 자료로 평가된다”고 밝혔다. 12일 오전 10시와 오후 3시 조사 내용을 알리는 현장 설명회가 열린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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