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고 병드니 조카가 재산 노리더라"...상속서비스 찾는 사람들

김도엽 기자 2024. 6. 11.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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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오팔세대, 금융 사용설명서③
[편집자주] 1958년생을 비롯해 베이비부머 세대가 노인의 기준인 '만 65세'에 대거 합류했다. 산업화 시대를 겪으며 자산을 급격히 늘린 이들의 은퇴, 상속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은퇴 없이 활동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은행으로 대표되는 금융회사들의 실버(銀)세대 공략 전략과 실버세대의 은행(銀行) 이용 방법을 알아본다.

서울 강남구 소재 하나은행 리빙트러스트센터. 이재철 하나은행 부행장이 머니투데이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본인이 가진 모든 힘을 쏟아 평생을 바쳐서 일군 돈을 무책임하게 두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재산을 어떻게 활용하고 또 누구에게 어떻게 이전해줄 것인지를 미리 설계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유언대용신탁과 유산정리서비스는 평생 일군 재산을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플랜을 짜는 방법입니다. 건강하실 때, 계약이 유효하게 성립하게 있을 때 빨리 재산관리와 이전을 준비를 시작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재철 하나은행 신탁사업본부 부행장은 상속 서비스를 이렇게 설명했다. 베이비부머 세대에게 한국의 자산이 집중되고 있다. 베이비부머 세대는 곧 65세 이상의 고령층으로 접어든다. 변화를 느낀 하나은행은 2010년 '리빙트러스트 센터'를 중심으로 금융권 최초로 유언대용신탁을 출시했다. 이어 지난 4월에는 유언장의 작성과 보관, 집행까지 맡는 유산정리서비스까지 내놓았다.

하나은행 리빙트러스트의 수탁잔액은 올해 3월말 기준 2조9781억원으로 3년 전(7224억원)에 비해 4배 이상 증가했다. 특히 맞춤형 리빙트러스트 가입손님의 약 50%는 80대 이상이다. 이 부행장은 최근 젊은 고객들도 늘어났다며 더 많은 이들이 더 일찍 재산을 보호할 준비를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하나은행 유언대용신탁 수탁 잔액/그래픽=김다나

-유언대용신탁이란 무엇인가
▶신탁은 내가 가진 재산을 믿을 만한 사람에게 맡기는 거다. 유언대용신탁은 생전에는 재산을 운용·관리해주고 사후에는 미리 지정한 수익자에게 재산이 이전되도록 상속을 돕는 제도다. 고객이 생전에 설계한 대로 그대로 집행하는 방식이다.

-어떤 사람들이 유언대용신탁을 많이 찾나
▶유언대용신탁을 보통 상속과 관련되거나 자산이 많은 고객만 이용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재산을 기부하려는 손님, 치매걸린 부모의 재산 혹은 미성년이나 장애인의 재산을 보호하려는 고객들도 찾는다. 특정한 분들에게 필요한 게 아니라 내 뜻대로 재산이 보호되고 쓰이도록 하는 관리가 필요한 모든 분들에게 필요하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손님이 있나
▶손님 한 분이 소개해 준 70대 초반 A씨의 재산을 못 지켜드려 아쉬움이 남는다. A씨는 배우자가 먼저 사망하고 자녀가 없이 홀로 살았는데 어느 순간 치매가 생기며 의사능력이 감퇴했다. 손님이 이를 알아채고 A씨를 소개했다. 명문대를 나와 전문직으로 살면서 재산도 상당히 많았다. 하지만 우리가 만났을 때는 이미 치매가 많이 진행된 상태여서 의사능력이 없어 신탁 계약을 할 수 없었다. 이후에 들어보니 조카들이 통장관리를 해준다며 통장을 가져갔다고 들었다. 조금만 더 빨리 만났다면 A씨의 재산을 지켜드렸을 것이다.

-독거노인이 늘면서 신탁의 형태도 다양화하고 있다던데
▶기부신탁을 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자식이나 친인척에게 보살핌을 못 받았다고 생각하면 재산을 유족 등에 남기지 않고 병원, 학교 등에 기부하도록 계약을 설정하는 것이다.

80대 초반이던 손님 B씨는 형제·자매가 세상을 떠나고 미혼인 상태로 혼자 살다가 치매가 발병했다. 그는 옆집 사람과 인사는 했으나 잘 아는 사이는 아니었다. 그런데 옆집 지인은 치매 증상을 보이는 B씨가 가족이 없다는 사실을 안 뒤로 적극적으로 B씨를 챙겼다. 고모에게 연락 한 통 없던 조카들도 자신들이 사는 지역으로 내려와 함께 살자고 제안했다. B씨는 조카와 지인이 괘씸해 재산을 남겨주지 않고 기부를 원했다. 그래서 조카들에게 최소한의 법적 유류분만 남기고 나머지 금액을 병원에다가 기부하도록 기부신탁을 체결했다.

-유언대용신탁이 있는데 유산정리서비스까지 출시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신탁을 '이질적'으로 생각하는 손님들이 있다. 재산이 '넘어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신 유언장을 은행에서 써달라는 손님의 요청이 많았다. 작성한 공증 유언장을 은행 금고에 보관하고 집행까지 해드린다. 신뢰도 높은 금융기관이 유언장을 맡아준다는 점에서 찾는 손님들이 늘고 있다.

-신탁과 유언장까지 이처럼 고객의 성격과 사례가 천차만별인데 어떻게 대응하나
▶일일이 맞춤 컨설팅을 한다. 22명의 직원이 1년에 약 3000건의 상담을 진행한다. 직원들의 경쟁력이 필수이기 때문에 일본 미쓰이스미토모 신탁은행, 법무법인 가온·김앤장·율촌 등과 협업한다. 미쓰이스미토모 도쿄 본사에서 직접 선진 신탁을 경험하는 연수를 매년 진행하고 있다. 또 특수한 상황이 발생하면 법무법인의 크로스체킹 과정도 거친다.

-1인 가구나 아이가 없는 부부가 늘어나고 있다. 관련해서 상속 분야에서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는 부분이 있나
▶반려동물 '펫신탁'이다. 일본이나 영국 등 신탁 선진국에서는 펫신탁이 운영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1인 가구나 부부만 같이 사는 손님들이 '자식과 같은' 반려동물 앞으로 재산을 남기겠다고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관련해서 내부적으로는 준비가 돼있으나 실질적으로는 운영이 어렵다. 현재 국내 법적·제도적으로 기관이나 부양자 앞으로 재산을 남기고 반려동물을 보살피는 방식만 가능한데 고객들이 기관을 통하는 방식을 꺼리기 때문이다. 다만 지속적으로 수요가 있기 때문에 반려동물에게 제대로 돈이 쓰이는지 감독할 기관이 부재하다는 제도적 문제 등이 해결되면 시장이 클 수 있다.

-최근에는 젊은 고객도 늘어났다는데
▶얼마 전 40대의 100억원대 자산가가 찾아왔다. 혹여나 자신이 잘못되면 젊은 부인이 중학생 아들 2명을 제대로 보살필 수 있을 지를 걱정했다. 그래서 재산의 일부분만 부인에게 상속하고 남은 재산은 미성년인 아들 2명이 성년이 된 후 받을 수 있도록 신탁을 설계했다.

옛날에는 상속 업무가 아프거나 나이 많은 사람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코인 부자', '상속 부자' 등 젊은 자산가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실제 올해 1분기 가입손님의 약 29%가 50·60대였다. 2021~2023년까지만 해도 15~17%에 그쳤다.

-고객들에게 상속 서비스와 관련해 강조하고 싶은 점이 있다면
▶아픈 사람만 상속 서비스를 찾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건강하실 때, 미리 이용하시라는 뜻이다. 고령화 속도가 매우 빠르고 기대수명이 늘면서 치매가 급증하고 있다. 자신들이 평생을 바쳐 일군 자산과 재산을 활용해보지도 못하고 돌아가시고 고객이 많다. 미리 상담하고 설계한다면 내가 정신이나 육체가 아프더라도 보살핌을 받을 수 있다. 또 자식들 간의 분쟁과 불안도 대부분 해결할 수 있다.

하나은행 리빙트러스트 연령별 가입자 비중/그래픽=김다나


김도엽 기자 usone@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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