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남극해 크릴 조업 취재…'수산대기자' 남달성씨 별세

이충원 2024. 6. 11.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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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년간 일간지와 수산 전문지에서 원양어업 현장을 취재하고 사설을 쓴 남달성(南達成) 전 한국수산신문 부사장이 11일 오전 2시께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유족이 전했다.

1981년 5월 한국수산신보 창간 때부터 사설을 썼고, 1997년 4월부터 4년 10개월간 한국수산신보에서 근무한 뒤 한국수산경제신문 전무 겸 주간, 한국수산신문 주간 겸 부사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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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 제공]

(서울=연합뉴스) 이충원 기자 = 수십년간 일간지와 수산 전문지에서 원양어업 현장을 취재하고 사설을 쓴 남달성(南達成) 전 한국수산신문 부사장이 11일 오전 2시께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유족이 전했다. 향년 83세.

1941년 경남 통영에서 태어난 고인은 통영수산고, 부산수산대학(현 부경대) 증식학과를 나와 1969년 서울신문에 입사했다. 1976년 동아일보로 옮겨 1996년까지 부산 주재 기자 등으로 활약했다. 1981년 5월 한국수산신보 창간 때부터 사설을 썼고, 1997년 4월부터 4년 10개월간 한국수산신보에서 근무한 뒤 한국수산경제신문 전무 겸 주간, 한국수산신문 주간 겸 부사장을 역임했다. 2014년까지 수산 관련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동아일보 재직 중 1975년 수산과학원 소속 태백산호를 타고, 35일간 중서부 태평양 미크로네시아 상어 시험조업 현장을 취재했다. 1978년 말부터 1979년 초까지 91일간 남북수산 소속 남북호에 승선해 국내 최초이자 세계 8번째 남극해 크릴 시험 조업을 동행 취재했다. 또 1988년 30일간 고려원양 개척호에 승선해 북태평양 명태 조업을 취재하는 등 수산 현장을 누볐다. '외진 바다, 외진 사람들'(1991), '대양에 선 개척자들'(1996), '파도가 빚어낸 초상'(2005), '기자 45년, 수산사설 30년'(2014), '수산 대기자 남달성의 회상'(2024) 등 저서를 남겼다.

김재철 동원그룹 명예회장은 고인의 저서 '대양에 선 개척자들' 추천사에서 "바다 사나이들 못지않게 세계의 바다를 두루 돌아다닌 이가 바로 동아일보사의 남달성 기자"라며 "삼대양은 물론 북양의 베링해나 남빙양의 빙산 틈 사이를 헤치면서 은빛 찬란한 아침 바다도 보고 폭풍우 몰아치는 무서운 바다도 경험하면서 정력적으로 바다를 묘사했다"고 적었다. 고인은 같은 책 서문에서 "3D현상의 대표 업종으로 낙인찍힌 원양어업 종사자들에 대한 시각은 차가웠다"며 "아직도 그들의 사회적 경제적 지위가 낮고 봉건시대적 사농공상(士農工商)의 반열에도 끼이지 못한 전시대적 사고의 틀이 있기 때문"이라고 탄식했다.

유족은 부인 함연순씨와 사이에 아들 남건우·남성우씨, 며느리 정성문씨 등. 빈소는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17호실, 발인 13일 오전 7시, 장지 파주 참회와 속죄의 성당. ☎ 02-2227-7500

chungwon@yna.co.kr

※ 부고 게재 문의는 팩스 02-398-3111, 전화 02-398-3000, 카톡 okjebo, 이메일 jebo@yna.co.kr(확인용 유족 연락처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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