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률 제고를 위한 성욕과 교미의 정치경제학 [플랫]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선임연구원이 보고서에다 “여성들은 1년 조기 입학시키는 것도 향후 적령기 남녀가 서로 매력을 더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적은 게 비판을 많이 받았다. 이 매력은 ‘성적 매력’이다. 더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성욕’이다. 테스토스테론이나 프로게스테론 같은 성호르몬 분비에 관한 생리학적 고민을 담은 이 구절을 두고 황당하다는 말이 많이 나왔다. 이 구절은 유명 고전 경제학자 이론에 기댄다. “성욕이 인구 증가를 일으킨다.” 토머스 R 맬서스가 <인구론>(1798)에서 내린 진단이다.
선임연구원 글을 읽어봤다. 여성 조기 입학이나 노인 해외 이민 유출 같은 게 논란을 일으켰지만, 인구밀도와 출생률 관계를 분석한 게 주된 내용이다. 한국의 저출생 문제 접근 방식을 전형적으로 드러낸다는 점에서 더 들여다봐야 한다. 제목은 ‘생산가능인구 비중 감소에 대응하기 위한 재정정책 방향에 대한 제언’. 생산가능인구라는 게 경제활동인구다. 곧 노동인구다.
📌[플랫]“여성 1년 ‘조기 입학’ 시키면 남녀가 매력 느낄 것”…국책연구기관의 황당한 주장
📌“쪼이고” 국민댄조로 ‘출생장려’?…황당하다 비판에 행사 일시 중지
지금 국가가, 권력자가, 자본가가 저출생 문제에 호들갑 떠는 건 미국 유학도 보내고, 강남 아파트도 한 채 마련해주며, 입시 스펙용으로 논문 저자로도 올리고, 특채로 들여보낸 곳에서 ‘세자’로 불릴 ‘인구’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이런 ‘인구’를 떠받칠, 저임금을 받으며 플랫폼 노동하고, 데이터 라벨링 노동하고, 산재 위험이 큰 노동을 하는 이들이 줄어들까봐, 이들의 상품 소비가 감소할까봐 우려한다. 노동인구와 소비인구 감소로 체제를 유지하지 못할까봐 걱정한다. 여러 겹 포장의 한 겹만 벗겨도 한국 사회 저출생 대책의 본질이 자본주의 체제에 충실히 복무할 예비 노동자와 시장 반응형 소비자 양산이라는 게 드러난다.
저급하고 경망스러운 대책들은 체제의 조급증 때문에 나온다. 제언엔 ‘정부의 남녀 만남 주선’도 들어갔다. 지방정부도 미팅을 대책이라고 내놓는다. 여성을 출산 도구로 여기는 대책도 종종 나온다. 서울시의원이 “아기 낳을 때 장점이 있다”며 케겔 운동법 위주로 짠 ‘댄조’(댄스+체조)는 출생 문제에 관한 디스토피아 도래의 징후를 뚜렷이 보여준다. 댄조는 여성 신체를 ‘번식 기계’로 여기는 일이 벌어질 때 곧잘 인용되는 마거릿 애트우드의 소설 <시녀 이야기> 5장 ‘낮잠’ 중 무릎 세우고, 골반 들어 올린 뒤 척추를 늘리는 식의 출산 체조 장면과 이어진다. ‘노동인구’ 감소에 대한 우려에서 나온 경제 동물 양산이라는 한국 사회 저출생 대책은 부려먹고, 잡아먹을 동물을 더 많이 생산하려고, 더 많이 교미 붙이려는 동물농장 주인의 방안과 다를 바 없다.
교미가 지나친 말 같은가. 인간을 무생물 도구로 취급하는 더 잔인한 말도 살아 있다. ‘인적 자원(Human Resource)’이다. 일제와 군사독재정권도 즐겨 썼던 이 말은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거치며 ‘인적자원개발 기본법’으로 법제화됐다.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해 인간을 개발·투자 대상으로 삼는 내용이 골자다. 두 정부의 교육부 이름이 ‘교육인적자원부’였다. 국제노동기구(ILO)가 인간 상품화를 지적하며 인적 자원이란 말에 항의했다. 비슷한 말 ‘인적 자본(human capital)’은 독일 슈피겔이 선정한 ‘최악의 단어’였다. 두 말은 지금도 두루 쓰인다. 한국의 인적자원법 연혁은 20년이 넘었다.
저출생 대책과 인적자원법엔 ‘인구’만 있지 ‘인간’은 없다. 저임금과 무주택, 소수자 혐오와 젠더폭력, 노키즈존과 육아휴직 부재, 일과 가사의 이중 부담에 시달리는 개별 인간에 대한 고려가 없다. 10년 내리 저출생 문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등인 자살률과도 이어진다. 이런 세상에 태어나고 싶은가, 이런 세상이 살 가치가 있느냐는 실존의 물음과 연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성소수자로 태어난 아이가 차별로 고통받는 일 없이, 노동자로 살아갈 아이가 산재와 저임금에 시달리는 일 없이, 엄마·아빠가 되려는 이들이 아이의 불안한 미래를 걱정하는 일 없이 잘 사는 사회로 만들면 될 일인데, 이런 본질적인 노력은 한국 자본주의 체제가 도외시한다.
맬서스는 빈민의 무분별한 성욕이 인구 증가를 일으키고, 인구 증가가 빈곤을 불러온다고 봤다. 빈곤 책임을 빈민의 욕정과 무지 탓으로 돌리며 피임 확대나 빈민 지원 철폐 같은 억제책을 내놓았다. 차별을 없애고, 최저임금도 올리며 탈성장과 인구 감소 사회에 적응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은 채 성욕을 부추기며 “일단 번식하라”고 명령하는 식의 한국 사회 인구론은 증가와 감소라는 방향만이 다를 뿐 인간을 도구화, 비인간화, 대상화한다는 점에서 맬서스 인구론의 데칼코마니일 뿐이다.
▼ 김종목 사회부문장 jomo@khan.kr
플랫팀 기자 fla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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