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군부 발포 명령 거부한 안병하 치안감 유족 손해배상 승소

김용희 기자 2024. 6. 11.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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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포명령을 거부했다가 신군부로부터 고초를 당한 고 안병하(1928∼1988) 치안감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한 정신적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승소했다.

광주지법 제13민사부(재판장 정영호)는 안 치안감의 부인, 아들 3명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고 11일 밝혔다.

재판부는 안 치안감이 신군부의 무력진압을 거부했다가 고문을 받아 후유증으로 숨졌고 이로 인해 가족들도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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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안병하 전라남도 경찰국장(오른쪽)이 기동중대를 방문해 출동태세를 점검하고 있다. 안병하 평전 갈무리

발포명령을 거부했다가 신군부로부터 고초를 당한 고 안병하(1928∼1988) 치안감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한 정신적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승소했다.

광주지법 제13민사부(재판장 정영호)는 안 치안감의 부인, 아들 3명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고 11일 밝혔다. 재판부는 부인과 장남에게 각 7500만원, 나머지 아들에게는 각 5000만원을 지급하라고 주문했다.

재판부는 안 치안감이 신군부의 무력진압을 거부했다가 고문을 받아 후유증으로 숨졌고 이로 인해 가족들도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고 봤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안 치안감은 전라남도 경찰국장(경무관 계급)으로서 평화적인 시위가 이뤄지도록 유도하고 총기 휴대 금지 등 무력 진압을 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그는 1980년 5월26일 시위진압 실패를 이유로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에 강제 연행됐고 다음달 2일까지 8일간 고문 조사를 받다 풀려난 뒤 해임됐다. 이후 안 치안감은 정신적 충격과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1988년 10월 지병이 악화해 세상을 떠났다. 경찰청은 2022년 3월 안 치안감의 해임 처분을 취소하고 치안감으로 추서했다.

안 치안감의 아들 호재씨는 “아버지는 명예를 회복했지만 무력 진압을 거부했던 5·18 당시 다른 경찰 가족들은 여전히 고통 속에 살고 있다”며 “5·18 때 광주시민을 지키려고 노력했던 경찰들을 잊지 말아달라”고 말했다.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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